아주 오래전 장학퀴즈 프로그램을 보며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눈빛이 유독 역력한 한 학생이
결국 주장원을 놓치고서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거의 노골적으로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서
아주 마음이 답답하고 속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더더욱 가슴이 탁 막히고 슬펐던 것은
그 학생은 물론이고 그곳에 나온 학생들 모두가
자신의 장래 소망을 판검사 아니면 의사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요즈음 머리 좋은 학생들 대부분이 그런 소망을
가졌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음에도 그 날 따라
그렇게 답답했었던 것은 아마 그 장원을 놓친 학생의
분에 가득한 눈빛과 장차 정말 판검사가 될 지도 모를
그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불현듯 느껴지는
일종의 두려움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아이는 그 후 엄청난 사교육비와 지독한 입시지옥을
모두 다 감당하고 이겨내면서 명문대학에 갔을 것이고
또 그곳에서 지성인으로서의 교양을 익힐 겨를도 없이
1학년부터 오직 육법전서를 달달 외워가며 고시공부에만
밤새워 매달린 끝에 지금은 그가 원했던 대로
판검사가 되어서 여러 사람들의 삶을 심판하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을 보면서
혈기 왕성한 평검사들의 의기와 자기혁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 썩은 기득권을 지켜내려고 조직이기주의 주구가 되어
발버둥치는 행태를 보고 저는 웬일인지 그 아이가 떠오르면서
텔레비젼에 나온 그 평검사들들 중에 분명 그 아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분에게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
훌륭한 자제분을 키워내시리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고전을 읽는 것이 가치있는 삶의 모든 것은 물론 아니지만
고전에 닥아서고자 하는 그 마음, 그리고 그것을 자식과 함께
공유하고 가르치고자 하시는 그 의식에는 이미 인간다운 삶,
가치있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그대로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re: 격려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