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기로 서로의 온기를 나눠야만 삶을 이어가는 인간은 사랑, 혹은 우정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관계의 그물망을 형성해 간다. 그러나 인간은 때때로 타인의 취향을 잊고 살거나, 타인의 취향을 폄훼하므로 관계의 그물망을 꼬이게 만들기도 한다.
너무 편안해서 마치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듯한 친구와도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경우도 있고, 삶의 전환점마다 언제 어느 곳이든 달려와 곁에 있어 줄 귀중한 친구를 둔 이도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가 그려낸 아트(art)는 세 남자의 우정과 갈등을 유쾌한 언어로 풀어낸 심리극이다. 극은 작가가 정말 여자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으로 남자들의 심리 세계를 잘 펼쳐 보여 공연 내내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두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배우들 또한 재치 넘치는 대사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관람 내내 유쾌한 웃음과 강렬한 울림을 선사한다.
사실 극의 등장인물은 겨우 남자 세 명 뿐이다. 등장인물이 단촐하다 못해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세 명의 남자들이 풀어내는 세계야말로 인간 내면에 자리한 모든 갈등과 모순의 축소판이다.
분석적이고 냉소적인 성향을 지닌 내성적인 피부과 의사 수현, 다혈질에 자신의 주관과 고집을 결코 꺽지 않는 공대 교수 규태, 뭐든지 '좋아좋아'파인 우유부단의 전형인 덕수, 그렇듯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세 남자는 수현이 산 고가의 하얀색 그림을 매개로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게 만든 자존심, 열등감, 질투 등 인간 내면에 자리한 모든 감정들을 외줄타기처럼 긴박감 넘치게 풀어낸다.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이 펼치는 빠른 템포의 연기에 빠져 매 순간 스릴 넘치는 긴박감과 유쾌한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수현이 산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색 그림이 상징하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무한하게 열려진 무색 공간에 관객과 배우 모두 자신들의 솔직담백한 감정들을 다 쏟아 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흰색의 상징적인 열린 공간에 자존심, 열등감, 이질감 등 자기안에 고여 있던 더럽고 추악한 모든 상처를 다 배설해 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우정의 무지개를 찬란하게 그려 넣는 일은 오로지 관객 자신들의 선택의 몫으로 남겨진다.
세 남자가 토해내는 언어에 자신들의 억눌렸던 무의식속 묵은 감정들을 모두 담아 남김없이 배설해 버리는 순간, 당신에게도 새로운 시작을 싹 틔울 토양이 마련될 것이고 무한 가능성의 공간을 신나게 질주하는 당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게 될 것이니 당신의 삶은 얼마나 경쾌하고 가벼워 질 것인가!
"내가 나인 것은 내가 나이기 때문이며,
네가 너인 것은 네가 너이기 때문에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반대로, 네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너라면 내가 너이기 때문에
네가 나이고, 고로
나는 내가 아니고 너는 내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나일 뿐, 내가 네가 될 수는 없다. 결코 나 자신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야말로 너와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이고 네가 너일 때, 나다운 나와 너다운 네가 서로 기대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내지 않을까?
심리극은 무겁다, 연극은 지루하다는 일반적 통념을 깨트리고 결코 무겁지 않은 언어들로 내적 갈등과 심리라는 무거운 주제를 잘 표현해 낸 여류작가의 뛰어난 역량,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 무엇보다도 인간 누구나의 내면에 숨겨진 감정들을 솔직, 유쾌하게 드러낸 점 등이 아트(art)라는 극을 장수하게 만드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경쾌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서로 손을 잡고 당장 아트(art)공연 현장으로 달려 가 볼 일이다.
당신들 역시 그놈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나니.
연극: 앵콜 ART
장소: 허밍스 아트홀(혜화역 1번 출구 파리크라상 뒷편)
기간: 2007.02.14 ~ 2007.04.29
그놈들은 진짜 멋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