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사람들이 우리들을 공순이라고 불렀니?
우리는 덜 했는데, 우리보다 두어 시간 늦게 학교에 오던 산업체 애들한테
사람들이 공순이라고 불렀었지...
걔네들은 직장을 그만 두면 학교도 다닐 수 없었어.
너도 가끔 학교에 지각했잖아?
어,그래, 서무과에서 학교 갈 시간 다 되어 갈 때
은행 심부름 시킬 때엔 지각을 했었어....
내내 생명이 있는 것들의 몸을 칭칭 감아돌던 가을 햇살이
그날따라 구름에 가려 냉기가 온 몸을 감싸왔어도
동구릉산책을 나섰던 친구들의 발길을
잡지는 못했다.
넌 편지봉투에 든 쌀 사봤니?
어...그럼.
너도 그랬어?
어...그때 우리들은 다 그랬지 않니?
연탄 한 장 사올 때는 구멍 가운데 줄을 꿰어서 들고 왔잖아..
맞아 맞아...그랬어.
난 내일이라는 시간이 오는 것이 무서웠어.
그냥 내일내일이 없이 늙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
너도 그랬구나.
그래도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니...
당장 내일 쌀 걱정을 하지 않잖아? 안그래?
그것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 거니...
내일에는 또 다른 내일이 있다는 사실이 전혀 무섭지 않으니 얼마나 행복한 거니.
동구릉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