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용인 이씨 사맹공파 여성들의 종중회원 인정 관련 대법원 판결을 보고
이명옥(mmsarah) 기자
"결혼한 딸들도 종중원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당연한 권리주장에 대해 '딸들의 반란' 이라는 불경한 제목을 붙여 매도한 매스컴이 이번 대법원 판결을 놓고는 "이른바 딸들의 반란이 성공했다"고 표현했다.
용인 이씨 사맹공파 여성들이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47년 만에 판례를 바꾸었다. 대법원은 지난 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 핵가족화로 제사 등 어른을 모시는데 아들과 딸의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사실 실제로는 당연히 아들과 딸의 차이 없이 어른 모시기, 제사 모시기가 진행되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딸만 있는 집일 경우 가 아니더라도 고려 시대는 딸이 제사를 모시기도 했으며 지차들도 돌아가며 제사를 모시기도 했는데 이를 윤회봉사라고 했다고 한다.
장자권에 대해 대한민국 못지않은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이스라엘에서조차 딸들의 상속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딸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그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음을 모세의 법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백 년 이상을 시대를 역행해 온 이조시대 남성들의 그릇된 권력 굳히기를 마치 남성들의 당연한 권리를 여성들이 침탈하여 빼앗아 간다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자체부터 은근한 남성우월주의와 권위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법의 울타리 안에서 최소한의 법적인 보장이 이루어진 셈이지만 정작 시작은 이제부터이다.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마저도 어찌하든 피해가며 이른바 대를 잇는 아들에게 재산 물려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가부장의 산실인 아버지만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여성의 의식이 사실 더 중요하다.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더 길기에 대체로 여성들의 손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식은 전근대에 몸은 현대에 살고 있는 현 기성세대 대부분은 여성은 출가를 하면 많은 부분의 권리에서 제외시키거나 권한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딸들의 반쪽 언덕인 어머니들마저 "그래도 아들이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딸들의 그것도 출가한 딸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는 아직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는 친정의 일을 자신의 딸이 아닌 사위라도 남성과 의논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남성권력 사회가 세뇌시킨 정신의 실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그 법을 따르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딸들의 정당한 권리 찾기는 아주 먼 시간이 흐른 후거나 여전히 '그림의 떡'이거나 '남의 이야기에 불과 할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주춧돌을 놓았으니 그 위에 차곡차곡 목표를 향한 실체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딸, 그대들의 몫인 것이다.
딸아! 결코 다 이룬 것이 아니다. 이제 겨우 첫 발걸음을 위태하게 내딛었을 뿐이다. 아마도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몇 번이고 넘어지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앞만 보고 나아가라. 한 걸음 한 걸음 딛고 나아갈 때 비로소 발걸음이 안정되어 확실하게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딸아, 이제 시작일 뿐이다(오마이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