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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린 사람이 세상 사는 법
글쓴이: 김미진   날짜: 2009.08.15. 01:08:45   조회: 2374   글쓴이IP: 114.207.130.110
지금도 마음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더 강해졌을 거라고 하는데 사실은 자꾸 생각이 나고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눈가를 훔치게 됩니다.

고3때 한 친구로 부터 '마음이 여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별로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나도 못된 마음 있고 욕망도 있고 미워하기도 하는데' 여리다는 것을 착하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여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부드럽고 약하다'입니다.
한 마디로 연약하다는 뜻이겠죠.
제가 '여리다'고 한다면, 진실함과 솔직함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대부분이 그렇듯 '잘 해야지' 당찬 포부를 갖고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좀 하는구나''커리어를 이렇게 쌓는 거구나'할때 쯤
어느 오후 지하철을 바쁘게 이동하다가 숨 막힐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감정이 메마른 것 같은 느낌 아시나요?
완전히 메마르고 아무것도 없는 듯한 텅빈 내면. 당황했습니다.
평소 연락도 잘 하지 않는 멘토님께 전화했더니 '사회 생활 하다보면 그럴 때있다'고만 하시더군요.
이후 난초를 기를까 강아지를 키워볼까 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그동안 저의 모습을 돌아보면,
사회 생활 잘 한답시고 진짜 마음을 숨겼습니다.
체질에 안맞는 여우짓을 했습니다. 영리한 거라고 지혜로운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하는 죄책감이나 불안함을 외면했습니다. 처세술이나 심리학 서적을 숙독하며 프로페셔널한 사회인을 꿈꿨습니다.

실은 '너를 밟아야 내가 산다' 식의 경쟁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으면서, 아니면 적어도 '밀려서는 안된다'는 강박감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겉으로는 동료들에게 호의적인 척, 여유로운 척했습니다.
일은 당연히 잘해야 하고, 인간관계도 무난하게 잘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그 두가지 조건을 어떻게든 만족시키려다 보니 기형적이고 왜곡된 자세가 잡혔습니다. 힘든 것도 모르고 불안한 감각을 유지하며 억지 웃음지었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그게 능숙한 사회인의 모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인 저는 감정의 바닥을 경험하자 그간 연마해온 사회성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수년이 지나고 몇 차례 굴곡을 거쳐 '내 방식대로 살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세상이 어떻든, 남들이 뭐라든 진실하고 솔직하게 살자 했습니다. 일부러 작정한 기억은 없는데 살다보니 어느새 생각과 태도가 그렇게 바뀌었더군요. 위선과 가식을 못견디는 미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회성 없다는 말이 듣기 싫어서 일부러 사교적인 척도 많이 했는데 흔히 말하는 사회성이 결국 위선과 가식이라면 좀 서툴러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맞다고,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최고의 존중이자 환대라 믿고 패스트푸드 점원, 고객센터 안내원부터 직장 동료, 상사까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려 노력했습니다.
고맙게도 운좋게도 제 주변에는 진실의 가치를 알고, 진실된 마음에 진실로 응답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더군요. 여러 예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늘상 얼굴보는 사람빼고 모든 사람을 성의있게 대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령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업무 위주의 기계적인 대화를 나누는게 익숙하고, 일상적이며, 사실 그 편이 훨씬 편리하고 깔끔한 태도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분들도 그런 태도를 더 편안해하시는 것 같고요. 그 이상한 룰을 깨면, 선의였음에도, 오히려 제 마음이 상할 때가 많더라고요.
완전히 사회화된, 견고하게 잘 다듬어지고 날카롭게 숙련된 어떤 사람들 앞에 진실함과 솔직함으로 나선다는 것은 사실상 무방비상태로 마주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합니다. 순진하고 여릴 수 밖에요.
아무리 말해도 절대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더군요. 기계화된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한 기계화된 사람들. 그들은 마음으로 소통할 줄 모릅니다. 많은 경우 그들에게 진실함이란 미성숙함,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상처받을 이유 없다' 쿨하게 밀어둔다고 밀어뒀는데
이상하게 depression해서 마음 밑바닥을 뒤져보면 그 일이 나옵니다.
이렇게 여려서는 안된다고, 이런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겠다고, 혹여 병든 사회일지라도 잘 적응해서 건강하게 기능하고 역할하자고 능숙하게 사회생활하자고 호기롭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능숙이라. 수년전 그 '능숙'과 지금 말하는 '능숙'의 의미는 분명 다르지만 경계심이 듭니다.
남들과 똑같이 기계 얼굴을 갖고 싶지는 않은데, 결국 그렇게 되자고 먼 길을 돌아온 게 아닐텐데.
나의 나됨을 잃지 않고 능숙하기를 바랍니다. 인간됨을 놓지 않고 능숙하기를.
상처받을 것을 각오하고 나서는 건 더이상 여린 게 아니라 강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한 차례 울고 났더니 다시 원점에 선 기분입니다.

사회 생활을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사람이 사물화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잘 생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사회생활하고 계시나요?
진실함과 솔직함, 가식과 위선 사이를 조화롭고 균형있게 넘나들 수 있으신가요?
인간성을 가지고 기계화된 사회를 능숙하게 살아가고 계시나요?

긴 글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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