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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삼아 써 PC에 저장해 두는 잡문 한 편을 여기에 올려 참 좋은 교수님께 드리는 안부에 갈음합니다. ...갈음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문교09 강원 원주 곽희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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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있을 뿐인 우리는 너무 잦아져 일상이 되다시피 한 갖은 부음을 듣습니다.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 사고의 사망 소식을 무덤덤하게 들어 넘기지 않던가요. 노부모의 영면에 애곡하고, 지인의 별세 소식에 마음 아파하지만 이내 멀어진 플랫폼쯤으로 남겨두고 풍진세상으로 돌아와 앞만 보며 오늘을 삽니다. 기억력이 젬병이어서 그런 건지 대한민국을 살아내는 치열함에 치여서 돌아볼 새가 없어 그런 건지 죽음은 그저 멀리 혹은 남의 일인 줄 알기 십상입니다.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 다니는데 말입니다.
어머니~! 한동안 소조했습니다. 제가 그간 화끈하게 죽을 뻔했기 때문입니다. 심장혈관이 막혀 피 공급이 원활치 못하게 되니 흉통을 동반하여 숨이 차는, 이른바 급성심근경색이라는 위급상황을 겪었지 뭡니까. 무디게 살다가 호된 경고를 받은 게지요.
저를 살려놓은 의사가 그러더군요. 이게 병원에 오기도 전에 열에 두엇, 오는 도중 서너 명은 죽는 병이라고 말입니다. 20분만 늦게 왔어도 힘들 뻔 했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실로 혈전용해제를 주사하기 전의 상황이 수십 분 더 지체되었다면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거니 감잡혔습니다. 급성이라는 말 그대로 증세는 갑자기 나타났고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2시간 30분에 이르는 시술을 받았고, 일본에서 와야 한다는 의사를 기다려 일주일 후에 다시 그만큼의 시간에 걸쳐 막힌 데를 마저 뚫었습니다. 주치의가 그러더군요. 그간 사는 데 얼마나 힘들었냐고...
첫 시술이 끝나고 조용한 병실로 돌아와 누웠는데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집 살 돈의 반의반도 없었던 형편이었지만 아무래도 내 집은 있어야 하는 거여서 덜컥 계약해 놓고 월급모아 중도금이며 잔금 치르느라 한눈 팔 새 없었던 젊은 날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내 땅에 지은 화원이어야겠기에 저질러 놓고 본 다음 메워놓느라 전진 앞으로만 달리다보니 어느새 초로가 된 고단한 육신은 쇠하여 사망 일보 직전까지 다다랐던 것입니다. 원인의 지속적인 제공이라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 참다 참다못한 몸이 반격한 것이라 보면 적절하겠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내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실행에 옮긴 거였으되 돌이켜보니 정작 내 몸을 거두기 위한 투자에는 너무 인색했었습니다. 날아가는 새가 깔린 똥이 머리 위에 떨어진 건 재수 없는 일이지만, 내 머리 위에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까도록 내버려 둔 건 명백한 내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사선에 까지 이르렀다 돌아와 보니 마음가짐에 변화가 일고 만사가 새로이 보였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 그러니까 발인일이 될 수도 있었던 날 새벽에 잠이 깬 입원실에서 기와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위한 투자의 밑그림 작업이 개시되었단 얘깁니다. 그래, 주치의가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하니 자빠진 김에 좀 쉬어가자. 카탈로그만 들여다보고 말았던, 그 음향장치가 뛰어나다는 승용차도 콱 사버릴까? 강진 바다가 좋다던데, 날 아껴주고 믿어줬던 노형이 산다는 게도 가보자. 마주볼 만 했던 갓 마흔의 나를 본 다란공항 카페에서가 마지막이었는데 상태불량의 늙수그레해진 나를 기억 하실까? 갚아야할 부채는 아니라 할지라도 고마운 마음은 고마운 마음으로 갚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거늘, 벼르기만 하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던 일들... 덜어내고 살아야지.
내가 죽었다면 영정바구니라도 보냈을 게 분명한 지인들도 찾아봐야지. 그래야지. 첫 날에는 청주와 대전에 들렀다가 광주로 가 저녁을 먹고 나서 강진으로 가면 되겠다. 밥은 내가 사야지. 예까지 와서 손님이 돈 내는 법이 어디 있냐고 하면, 고마워서 그래... 해야지. 이건 또 뭔 소리냐고 하면, 당신은 몰라도 돼 하며 빙긋 웃어야지. 어찌어찌 소식을 듣고선 쾌유를 비는 꽃을 보내준 고마운 이들도 찾아가 꽃에 실어 전해준 마음 잘 받았다고, 그렇게 염려해 준 덕분에 이렇듯 쾌유했다고 활짝 웃어야지.
살짝 실성한 사람마냥 빙긋 혼자 웃음을 지어가며 작업하던 기와집 짓기는 내친 김에 해외로 진출해 이스탄불을 둘러보고 프랑스 도빌의 노르망디 호텔에 가 노트북을 펼치는 장면에서 일단 멈칫했습니다. 채혈을 하러온 간호사에게 팔뚝을 내밀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펼쳐진 노트북에는 [유럽관견기]란 제목, 그리고 여행기마다의 말미에는 “여기는 0000입니다.”식으로 마감하겠다는 큰 틀을 잡았습니다. 이제 현장에 가서 눈에 잡혀오는 대로, 가슴에 이르는 대로 본문을 채워 넣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제가 세계사와 명인열전 공부를 다시 시작한 이유도 실인즉 여행을 위한 사전작업이랍니다. 박정희와 박태준을 몰라도 포항제철 견학을 하는 데에 큰 지장이야 없겠으나 그건 그 분들에게 결례를 범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쿠바 여행을 가려는 이가 체 게바라를, 베트남을 둘러보겠다며 호치민을 몰라서는 예가 아니라 하겠습니다.
어머니~
왼쪽으로 가면 영안실이고 우회전을 하면 집으로 가는 병원 출구에 서서 퇴원하는 날 데리러 올 차를 기다렸습니다. 시선을 왼편으로 고정하다가 십년 전 이맘때 청단풍 그늘아래 평상에서 마주했던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제 차에 실어 주시려고 열무를 다듬던 그 날 오후의 어머니를 말입니다. “애비가 제일 고생이 많았어.” “후회하지 않아요 어머니~”“미안해서 그러지...”“하이고~ 어머니 지난 일은 이제 잊으세요. 우리 옛날에 이거 다듬어 묶어서 문막에 가 팔던 거 기억하세요. 다섯 단에 천원...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요?” “좋긴 뭘 좋아, 때가 되면 뭐 변변한 찬거리라고는 없어서...” 끝없이 내려주시고도 모자라 더 줄게 없어 갈급 난 손결 끝에 매달린 사랑. 그런 사랑, 저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살아가는 힘이라 믿습니다.
운 나쁘게도 혹은 운 좋게도 영구차에 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할지라도 좋은 자리 맡아 놓고 기다려 주실 분 또한 어머니이실 테지요. “애비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좀 즐기기도 하고 편하게 살면서 손자도 안아보고 손녀 재롱도 받아보다 오지 않고선... 아마도 그러실테지요. 아마도 과식 끝에 체해서 죽어 왔어도 저 좋아하는 반찬 챙겨 한 상 차려 내어 놓으시며 먼 길 오느라 허기졌겠다. 많이 먹어라 하실 테고요. 예... 어머닌 그러실 테지요. 늘 제 편이셨던 어머니는 게서도 따뜻하게 맞아주시며 손잡아 주실 테지요. 죽을 뻔 해보니 어머니가 더 귀히 여겨지고 그 사랑이 더 보고 싶습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안에 있던 무엇이 훌럭 빠져나간 듯 한 기분도 들고 무엇인가로 채워진 느낌도 듭니다. 아무튼 발전지향적인 방향으로의 정돈된 마음가짐을 품게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퇴장명령은 아닌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겠습니다. 기와집 완성보고는 추후에 다시 드리겠습니다. 이 기와집이란 게 대개들 지었다 헐었다를 반복하다가선 결국 초가삼간 툇마루에 퍼질러 앉아 두 다리 쭈욱 뻗는 것으로 자족하는 경우가 일반이어서 입주상량이 제대로 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입니다. 평안하셔요.
막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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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보낸 편지 -3-
다 아시는 글이지만 한 번 더 소개 하고 싶은 셰익스피어의 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