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터

2024. 04. 16.

길

글쓴이: 가로등 날짜: 2002.06.15. 09:40:32 조회: 890 글쓴이IP: 218.148.21.85

길

장석주

내가 가지 못한 길을

한사코 마음만이 분주히 간다.

내가 가는 길에 마음이 없고

마음 가는 길에 내가 없으니

저녁답 가던 길을 버리고 말다.

내가 살고싶은 상상 속의 그곳에는 바람과 어울린 풍경소리가 매일 매일 은은하다.

인사동에 갈 일이 있을 때면 훗날 내 집 처마에 달고싶은 풍경을 찾아
몇 몇 리어카와 가게들을 기웃거린다.
장식이 없어 그것을 바라보는 나 역시 허풍 같은 장식이 없는 담백한
사람이 될 수 있을법한 그런 풍경을 찾아본다.
그렇지만 내가 매료되는 풍경은 너무 비싸고 내가 살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언제나 시시하다. ^.^
더 시시해지기 싫어 시시한 풍경 하나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핸드백 안에서 작은 금빛의 풍경을 꺼내들고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시시하다 시시하다 생각해서 시시한 소리만 울릴 것 같은 그것에서
예상외의 맑은 소리가 울려나와 깜짝 놀랬다.
그리고 너무 미안했다.

장석주 시인의 시가 바람 부는 날 풍경소리처럼 나를 흔들어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