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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한 살에 새로운 생의 대지에 서다
<내 생애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
이명옥(mmsarah) 기자
마흔 살 이후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불같은 열정을 지닌 청춘의 시기를 지나 생의 오르막 한 고비를 넘어온 사람들이 내리막 삶을 담담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흔 한 살 생일을 맞은 작가 베스 켐하트는 바쁜 일상 속에 무심히 지나쳐 다니던 챈티클리어 정원(Chanticleer Garden)을 홀로 찾게 된다.
두 아이의 어머니, 중견 작가, 21년의 결혼 생활로 모든 것이 타성화되고 짜증스러운 의무감으로 다가와 자의로 선택한 글쓰기마저 늘 마감의 압박으로 그녀를 옭아매 위기감을 더하던 때였다.
일상의 의무를 접고 시간의 긴장감에서 해방된 순간, 그녀는 비로소 유년의 딸기밭과 나무 그늘 아래서 끄적이던 사심 없는 글쓰기에 대한 추억을 건져 올린다. 이제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와 대결이 아닌 기쁜 만남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날 이후 2년 동안 끊임없이 정원을 드나들며 자연의 순환과 정원사로부터 수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청춘과 닮은 꽃은 만개한 그 순간부터 이별의 날을 준비하며 즐겁게 자신을 벌과 새와 다른 곤충들에게 내어주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본다.
정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소리 없는 변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화려한 봄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황량한 겨울로부터 차근히 준비되어 온다는 놀라운 진실을 깨닫고 작가는 기꺼이 놓아 보내는 법, 그대로 두는 법, 자신과의 내적인 싸움을 멈추고 느린 호흡으로 시간을 껴안는 법을 배운다.
숨가쁘게 청춘의 시절을 달려와 계절 끝자락에 선 중년의 생을 작가는 이제 축복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한다. 중년은 속도감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뒤엉킨 것이 아닌, 거울처럼 투명한 시선으로 멈춤 속의 고요한 움직임을 간파하는 혜안을 지닌 나이인 것이다.
어느새 그녀보다 훌쩍 키가 커버린 아들아이를 굽 높은 신발을 신은 그녀가 올려다 봐야하고, 다른 관심사, 다른 열정으로 그녀의 날개 그늘을 자연스럽게 벗어나지만 이제 아들을 담담하게 놓아 보낼 줄도 안다.
친정어머니와 대화 없이 조용히 정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언어가 주는 의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고 어머니를 전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남편과의 일상도 겨울을 지나 새잎을 틔우는 봄처럼 싱그러운 관계로 변한다.
그 모든 변화를 작가는 이런 말로 대신한다.
'우리는 때론 지금까지 걸어 온 길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그때 걸음을 늦추면 한결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당신이 인생의 중년에 접어들었다면 이제 황급히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내적 충만함을 채울 수 있는 곳으로 돌릴 일이다.
어린왕자의 충고처럼 조금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휴식이 시작된다는 진실을 믿어보라.
진정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면 하늘에 떠 있는 낮달을, 길가의 가로수 그늘에 수줍게 핀 민들레의 미소를 마주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 주어라.
당신이 걸음만 멈춘다면 사계절이 다 지나도록 발견하지 못했던 보석 같은 유년의 추억, 자연의 숨소리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하모니, 그 자연과 더불어 살기에 익숙한 온갖 풀과 새와 꽃들의 합창이 들려주는 경이로운 세계를 통해 당신이 이 땅에 호흡하는 시간들이 진정한 축복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생일날 이후 2년간 찾은 챈티클리어 정원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중년 여성의 자아 정체성, 나이듦, 포기와 나눔처럼 자연스럽게 주변의 인연을 떠나보내는 지혜 등을 소박한 흑백사진과 함께 담담하지만 설득력 있는 언어로 아름답게 풀어낸다.
그녀는 비전을 지니고 아름답고 소박한 챈티클리어 정원을 흙의 진가를 아는 정원사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준 아돌프 주니어를 추억하는 것으로 사색을 마감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며 시간과 싸우는 중년이라면 조용히 이 책을 집어 들고 호젓한 나무그늘 아래 당신만의 비밀의 정원을 찾으라.
책을 읽다가 마음에 울림이 일거든, 그 울림이 전하는 메시지에 겸손한 마음으로 조용히 귀를 기울이라. 그 순간 당신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아름다운 생을 준비하는 중년으로.
포용력은 흙의 기본 미덕이다
그것은 공간을 만들고 베풀며, 독을 없앤다.
그래서 치유한다. 흙의 가르침은 이렇다.
기억되려면 자신을 내어 주어라
-윌리엄 브라이언트 로건의 '흙, 대지의 황홀한 살갗'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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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 켑하트와 윌리엄 설릿은...
첫작품 <기우는 해- 어린이이 용기>로 미국 문학상 중 하나인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는 예일 대학 출신의 건축가,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인 남편, 아들 제레미와 챈티클리어 정원 근처 필라델피아 교외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처녀작은 Salon.com의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그녀의 마흔 한 살 생일 이후 2년간 챈티클리어 정원을 찾으며 정리한 아름다운 수필집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남편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베스 켑하트 글. 윌리엄 설릿 사진 공경희 옮김/
디앤씨미디어/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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