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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된장녀 고추장남 일까?
명품 중 명품이 된장 고추장이거늘...
이명옥(mmsarah) 기자
며칠 전 두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용건은 요즘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기 시작한 ‘된장녀와 명품열풍’에 관한 것이었다.
한 사람은 KBS ‘주부 세상을 말하자’ 방송작가였는데 사기까지 부르는 명품 열풍이 20대에서 10대까지 연령이 낮아지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주변에서 명품족을 봤는지, 내 자신의 생각은 어떤지를 물은 후 녹화방송에 패널로 나와 달라는 용건이었다.
한 사람은 방송대에 적을 둔 50대 중반의 피아노 학원 원장으로 군사 독재 시절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실직과 많은 형제들의 맏이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배움에의 한을 품고 있다가 서른이 넘어 검정고시를 거쳐 백석예술대, 방송대 국문과, 올해는 영문과 편입생으로 열정적으로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분이다.
작가는 젊은이답지 않게 지갑이나 벨트쯤이 아닌 몸에 걸치고 신는 것 모두를 명품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은 이해도 안되고 자신과는 거리가 있다는 보통의 상식을 지닌 시민이었다.
그러나 젊은지라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어 이미 특정 사실을 지칭하는 유행어가 된 된장녀, 된장남, 고추장남이란 용어에 별 거부감이나 특별한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해방과 전쟁과 가난을 모두 겪은 피아노 원장은 달랐다. 전화로 “요즘 유행하는 된장녀, 고추장남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 왜 하필이면 우리의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먹을거리인 된장과 고추장을 비아냥이나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사실 장맛이 모든 음식 맛을 좌우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각 집안마다 손끝 맛인 장맛이 다르고 장맛이야말로 그 집안의 전통이요 자랑이 되어 왔던 것이다.
어찌보면 발효식품 중 가장 까다롭고 완성도가 높은 진짜 명품 중 명품이 된장과 고추장일 것이다.
그런 된장과 고추장이 바람직하지 않은 세태를 풍자하는 유행어가 돼버린 것이 안타깝다. 그런 우리것에 대한 비하가 지금의 사태를 부른것이 아니냐는 피아노 원장의 이야기가 가슴에 오래 남았다.
부끄러운 에피소드 한 편
년 전에 방송대 강의 녹화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30분짜리 녹화인데 20여명이 방청객으로 앉아 있어야 하며 만 몇 천원의 출연료도 나온다고 했다.
백수에 가까운 나의 신조는 “도둑질, 무언가 물건을 파는 세일즈 빼고는 다 한다고 공짜는 양잿물도 챙겨서 세탁에 보태 쓴다“여서 그곳을 줄레줄레 갔다.
녹화가 끝나고 유명세를 타는 교수와 방청객인 학생들 간의 만남의 시간이 있다기에 마침 그 교수를 취재하고 싶었던차라 뒷풀이에도 쫄래쫄래 따라갔다.
아뿔사! 하필 그날 모인 아줌마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 여유로운 이들로 방송대에 입학해서 그 교수와 동서유럽, 지중해 기행등을 다닌 팀들이었다.
그들에게 만 몇 천원은 껌값인지라 돈 때문이 아니라 항공편 때문에 취소된 여행 대신 가까운 일본이라도 다녀오자고 일을 꾸미러 나온 사람들이라 예약된 저녁을 먹는 것으로 출연료를 대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기치 못한 불쾌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더욱 불쾌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으며 내가 기고하는 소책자의 내 글을 본 여자가 이렇게 물었다.
“학보사 기자 뽑던데, 나도 학보사 기자 응모해서 아르바이트로 용돈 좀 벌어
볼까 하는데 그거 나이 제한 있어요?“
방송대라 없을까? 당연히 나이제한 있다 그것도 20대로.
전문직이 아닌 이상 오십이 내일, 모레인 사람들은 설거지 외에 할 일이 별로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배알이 꼴린 나는 속으로 그랬다. “학보사 기자하고 싶다며 공지도 안 읽어 봤나?”
잠시 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엔 또 다른 여자가 자기 일행에게 말을 건다.
“아니, 비행기표 진짜 없는 거야? 그럼 가까운 일본이라도 어떻게 좀 해봐.
난 사백이나 미리 보냈어, 어쩌구 저쩌구…"
또 잠시 후 “아유, 교수님이랑 여행 다니는 게 여행이야, 고문이지. 트렁크도 내가 들어야지 맨 모르는 사람들 무덤이나 찾아다니지, 남편이랑 가면 남편이 트렁크 다 들어주는데. 그리고 이젠 내 돈 내고 여행 다니는 것 좀 아깝더라.“
나를 쳐다보며 “영어 좀 할 줄 알면 공짜로 여행 다닐 기회가 있어요. 영어 좀 할 줄 알아요?“ 기가 막혀서 그럼 자기나 공짜로 여행 다녀 보시지.
그날 나는 저녁 먹은 칠천원도 아까웠고, 그런 인간들 틈에서 자존심이 구겨진 것은 더 기분이 나빴다.
만일 기쁘고 행복한 자리였다면 그보다 더 비싼 저녁도 기꺼이 먹을 수도 있고, 내가 다른 이의 저녁값을 낼 수도 있다. 자기들 남편 잘 만나 호강하며 사는 것 자랑하러 왔나?
나도 나름대로 정신적 사치는 남아 있어 영화도 연극도 그리워해서 리포터 해가며
이벤트 응모해가며 잡글을 끼적여 가며 공짜표 생기는 일이라면 물불 안가리고 해가며 목마름을 해소시켜왔다.
그런데 이런 일 앞에선 늘 화가 안다. 쥐꼬리만한 자존심이 살아있어 그 쥐꼬랑이만한 자존심이 꿈틀거리는 순간마다 날 아프게 한다. 인터뷰 하려고 따라갔던 자리인데 정작 교수는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진행자가 나를 배웅 나와서는 슬그머니 칠천원을 도로 내준다.
“이명옥님 저녁값은 제가 낼께요. ” 난 그 돈을 받았다.
돌아오면서 내내 기분이 언짢아서 소개해준 분께 전화를 했다. 그 분이 말하길 “ 몇몇은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푸느라 오버가 심하니 신경 쓰지 말란다. 그 그룹 대부분이 그 교수의 6번의 해외문학 기행을 다 따라 다닌 사람들이고 여행 경비로 일억을 쓰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개해 준 분이" 뭘, 이 선생은 남들 바락바락 돈벌고 힘들게 애 키우며 살 때 문화원 다니고, 일년에 영화를 70여 편씩 보고 살았잖아.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야"며 깔깔 웃는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인지 다음날 아침 휴대폰 배터리가 아웃된 바람에 알람이 울리지 않아 6시에 일어난 나는 거금 6900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신문 아르바이트를 갔다.
일당 만원짜리 알바가 택시비로 , 전철비로 오늘의 일당 다 날리고 추위에 떨며 신문을 돌리고 나니, 길거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쁜 일진의 연속인가, 머피의 법칙인가? 아마도 그 7천원이 내 돈이 아니었던 가보다.
이럴 때마다 어디서 돈뭉치나 뚝하고 떨어졌으면 싶다. 이참에 단 한번도 안 산 로또 나도 한 번 사봐?
기드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는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것이다. 예쁘고 허영심 많지만 가난한 하급관리의 아내였던 마틸드는 장관댁 파티 초대장 하나로 인생이 바뀌고 만다. 허영심 많은 마틸드는 무리해서 해 입은 옷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자 친구에게 값 비싸게 보이는 목걸이를 빌어왔다가 잃어버리고 만다.
가진 모든 것을 팔고 빚을 얻어 목걸이를 사서 되돌려 준 뒤, 그녀는 최하층 생활을 하며 10년간 빚을 다 갚은 후 우연히 길에서 만난 친구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그 목걸이가 사실은 500프랑 밖에 안 나가는 가짜였음을 알게된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지나간 10년의 세월을 되돌릴 수도, 젊음을 되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명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역시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고 한다. 외적인 것을 모방함으로 황실이나 재벌가의 진짜 부유한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러나 아무리 외모를 치장한다해도 아무리 동일시하며 망상에 젖는다해도 그녀 혹은 그의 신분이 상승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인생관과 가치관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더 큰 불행을 막는 현명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상술이나 메체에 현혹되어 자신의 현실을 망각한다면 누구나 마틸다처럼 현재의 삶을 순간의 허영에 저당잡히는 꼴이 될 것이다. 시가 6만원짜리가 수천만원 혹은, 억대가 넘는 물건으로 둔갑되어 인터넷 홈쇼핑을 통해 버젓이 팔리고, 무분별한 유행어의 남발과 확산이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우리가 감히 접할 수 없는 상류 계층의 삶의 단편을 드라마 같은 매체를 통해 접할 때 중심을 잡고 인간의 잠재의식에 내재한 욕망을 자극하는 부정적 요소들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자기 자신이 진정한 명품임을 자각한다면...
유럽에서 명품을 애용하는 사람들은 1% 정도라고 한다. 진짜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상류층과 중장년들이 명품을 사용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피아노 학원 원장은 나이로 또 주변의 지인들로 보면 명품과 보석과 해외여행에 열광하는 세대라고 봐야 한다.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자식 키우고, 쥐꼬리만한 월급 쪼개서 곗돈 부으며 틈틈이 곁눈질로 투기까지 해서 재산을 모은 나이들이라 그만큼 아껴 살았으니 이젠 쓸만하다라던가, 이제 할 일 다했다, 혹은 내가 이만큼 재산을 일궈주지 않았느냐는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그 나이의 어떤 이들은 1년에 6개월은 해외여행을 한다. 물론 명목은 고상하게 종교활동을 위한 비전트립이나 어머니 합창단 친선 공연, 방송대 해외 문화기행 등 등의 이름을 붙이지만 결국 패키지 투어가 끝나면 현지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 보석, 영양제, 모피, 양주, 화장품 등을 바리바리 사들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알음알음으로 되팔면 다음번 항공료는 손쉽게 떨어지더라는 이야기도 들어보며 입맛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내적 가치를 높이는 일에 골몰하며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은 결코 아까워하지 않는 피아노 원장을 보며 또 다른 멋진 사람이 떠올랐다
보석상을 하다가 불경기를 맞아 마흔이 넘어 사이버 대학을 다녀 마흔 다섯인 올해 지방에 있는 특수대학원에 입학을 했다는 오미라라는 커리어 컨설턴트가 보여 준 한 장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장사를 하면서 든 비용은 늘 억대가 넘었지만 자신의 내적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대학 4년 동안 사용한 총 비용은 2천만 원이 채 안되더라며 보여 준 상세 내역서였다.
수억짜리 보석이나 수천짜리 시계를 착용한 사람만 명품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1/60억인 값지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외적인 자산은 언제든 물거품이 될 수 있는 허망한 것이지만 내적 자산은 나눠도 나눠도 그대로인 마법의 항아리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퍼쓰고 나눠도 나눠도 줄어들지 않는 내적 자산을 사기 위해 시간도 물질도 투자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외적 자산과 내적 자산의 가치를 평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몫일 것이다. 게다가 명품 열풍을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와 개인의 취향이다”까지 들먹인다면 더 이상 할말이 없다.
하지만 그 거대한 부의 축적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대한민국 시민들의 피를 빨아 축적한 재화가 아니던가? 사회 지도층이나 소수의 리더 그룹이 그 돈을 멋있게 또 바람직한 일로 사회에 환원을 못할 망정 망국적 소비 풍조로 위화감을 조성 한대서야.
공동체적 삶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된 부자. 서민들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사회 지도층 우글거리는 사회라면 무슨 희망이 있을까? 많은 주부들이 돈이 있다면 또 자신의 분수를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니면 비록 짝퉁이라 할지라도 명품을 지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창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이나 학부모 회의에서 명품으로 치장한 이들과 비교되며 초라해지는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라고 한다. 명품 중의 명품인 ‘사람’이 외적인 요소로 평가 받는 세상이 더이상 지속되어선 안 되지 않을런지.
2006-08-2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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