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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준다면
[서평] <부부로 산다는 것>을 읽고
이명옥(mmsarah) 기자
부부란 5만 번 환생한 끝에 만난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반대로 부부란 전생의 철천지원수끼리 만나 이생에서 서로 덕을 쌓아 전생의 악업을 풀어버리고 다시는 부부로 만나지 않기 위한 것이란 말도 있다.
어찌됐든 20년 이상 서로 다른 문화적 풍토에서 각자 개성을 키워온 두 인간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서 수십 년 동안 함께 살려면, 무한한 인내심과 양보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부부로 산다는 것>에는 50인의 실제 아내와 남편이 부부로 살며 깨달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주는 배려', '원하는 사람들이 되어주는 기쁨', '끊임없이 서로 재발견하는 열정', '작은 행복을 찾아 나서는 여유', '꿈을 함께 이루어가는 행복'이라는 다섯 부분으로 담겨 있다.
추천사를 쓴 <인간 시장>의 작가 김홍신씨가 고백한 아내에 대한 추억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오랜 투병생활에 지친 아내가 울먹이며 "새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나,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식했는지 뜰에 핀 풀꽃 하나도 뽑지 않는 아내를 보며 김씨도 그 생명의 시간들을 지켜봐주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고개를 떨어뜨리게 된다. 병상을 오랫동안 지켜주거나 아픔과 슬픔의 시간을 가장 많이 나누는 상대가 부부라는 이야기일까?
신의 시각으로 본다면, 인간의 삶이란 태양이 떠오르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은 존재란 말에 저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인간은 대부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제외한다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부부라는 인연으로 묶여 세상을 살아간다. 인간은 원래 양성을 지닌 존재인데 자신의 반쪽을 잃어버렸기에,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야만 비로소 완전한 한 개체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 개체가 또 다른 개체를 만나, 모난 부분을 갈고 닦아 조화를 이루며 함께 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생식 및 종족 보존 본능만 지닌 하등 동물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을 지닌 인간에겐 더욱 그렇다.
인간의 내면엔 커다란 이기심과 권력욕이 있고, 내 품에 무언가를 품은 순간 혹은 내 손에 무언가를 쥔 순간 그 소유욕과 지배욕이 발현되는 것 같다. 상대방이 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시기에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어떻게 하든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던 눈물겨운 노력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남편들이여, 결혼하는 순간 혹은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한 개체로서 정체성의 표상인 이름을 잃어 버리는 아내라는 서글픈 자리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결혼해도 사회생활 구도가 그다지 바뀌지 않는 남자들과 달리, 많은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혹은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사회적 자아의 문을 닫아야 한다. 그 후 대다수 여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누구의 아내, 며느리, 혹은 엄마라는 이름의 정체성만 지닌 채 살아간다.
남편들이여, 알고 있는가? 때로는 아내도 '어이'나 '００엄마'가 아니라 '패, 경, 숙' 같은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그 이름에 담긴 정체성을 되찾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남편들이여,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부부가 대화할 때는 연애 시절처럼 아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시라. 그리하여 아내가 진정한 하나의 의미와 눈짓이 되어 그대들의 가정에 머물게 하시라.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았던 꽃도 이름을 불러주면 의미가 되고 눈짓이 된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내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아내는 별이 되고 우주가 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인생은 본래 미완인 삶을 완성을 향해 차곡차곡 채워가는 과정이자, 부부란 이름으로 나란히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2인3각 경기다. 둘 중 어느 하나가 조급한 마음에 성급하게 한쪽 발을 내딛는다면 상대방은 균형을 잃고 쓰러지거나 힘이 들어 포기할지도 모른다.
때론 아내와 눈길을 마주하고 아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다면, 때론 힘들고 외로워 보이는 어깨를 보듬어 준다면 서로 큰 힘을 얻어 발걸음이 씩씩해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완주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006-08-24 11:41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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