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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Ann)이 앤(Anne)을 고집하는 이유?
<뿌리 깊은 인명이야기>
이명옥(mmsarah) 기자
이전에 아마도 ‘예솔아’ 라는 동요를 들은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예."
하고 달려가면
"너 말구 네 아범."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예."
하고 달려가면
너 아니고 네 엄마. "
아버지를
어머니를
"예솔아"
하고 부르는 건
내 이름 어디에
엄마와 아빠가
들어계시기 때문일 거야.
-'예솔아' 전문.
저 노래는 동시 작가의 동시라고 한다. 노래 가사 중 아버지를 어머니를 “예솔아”하고 부르는 건 내 이름 어딘가에 엄마와 아빠가 들어계시기 때문일거야,라는 끝맺음은 가계와 혈통 즉, 뿌리에 대해 아이다운 수준의 천진난만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노래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름’과 ‘성’에는 조상의 혈통과 기에 대한 자부심, 부모의 바람과 기대, 더불어 한 인간을 60억 인구 중 유일한 개체이게 하는 변별력과 정체감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나 뿌리 의식이 깊은 한국인들은 통성명이 끝나면, 본관이나 파를 묻고 더 나아가면 몇 대 자손인지를 묻는 일까지 종종 생겨나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의 정신과 얼은 조상들의 기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온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서양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한 <뿌리 깊은 인명이야기>는 성서와 신화가 낳은 인명으로 읽는 유럽 문화사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책은 유럽인의 이름의 어원이나 유래를 더듬어봄으로써 유럽인들의 가치관, 사회관, 존재 양식을 살펴보고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조상들의 직업이나 혈통, 지역, 기질,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서양인 이름이 갖는 풍부한 세계를 시작으로 ★구세주가 임재하는 유럽인의 이름 ★순교성인들에 숨어있는 그리스 신화의 신과 영웅 ★동방의 빛을 받아들인 지배자 로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되살아난 게르만 정신 ★현대에 살아있는 켈트의 로망 ★북유럽과 비잔틴을 잇는 러시아 등 총 6장에 걸쳐 이름에 얽힌 역사와 의미들을 재미있게 집어내고 있다.
책은 고아 출신의 빨강머리 앤(Ann) 이 자기 이름 앤(Ann)을 꼭 E자가 붙은 앤(Anne)으로 불러주기를 고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앤(Ann)은 우리 이름의 영자나 순이처럼 너무나 흔한 서민들이 대표적으로 붙이는 이름이지만 앤(Anne)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로 여겨지는 안나(Anna:은혜)에서 비롯되고 앤 여왕(Anne, 재위 1702~1714) 이후 왕후 귀족에게 전통적으로 인기 있던 고귀한 이미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주근깨 빨강머리에 고아 소녀였던 앤(Ann)은 자신의 이름 앤(Ann)을 E자가 붙은 앤(Anne)으로 고집함으로 자신이 기품 있고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상상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서양이 이름들은 대체로 신화나 성서의 신들이나 영웅, 선지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서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인 요한은 세례 요한에서 유래한 것인데, 영어 이름은 존(John)이며 프랑스식 발음은 장(Jean)이고 스코틀랜드식 표기는 숀(Sean), 아일랜드식 발음은 션, 잉글랜드에서는 세인(Shane)이라는 철자로 씌여진다.
같은 이름이지만 발음이나 철자만으로도 출신 지역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숀 코넬리가 '숀'을 고집하는 것에서 그가 스코틀랜드 혼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 독자들은 느끼는가?
지역만 아니라 조상이 귀족이었는지, 농부였는지, 대장장이였는지, 방앗간을 했는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성격이 급한지 느긋한지를 이름이나 성만으로 쉽게 가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미스는 방앗간, 독일어의 폰(von), 네덜란드어의 반(van), 프랑스어의 드(de)는 귀족 출신을 나타내고, 영국의 스탠리(Stanley)나, 독일의 힌덴부르크(Hindenburg)는 토지를 의미하는 어미가 붙어 있어 자영농이나 장원주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등이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인 모리스(Morris)는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의 별명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거나, 스미스(Smith:대장장이), 테일러(Taylor:양복장이), 밀러(Miller:방앗간), 태너(Tanner:무두질장이) 등과 같이 직업에서 유래하거나 노튼(Norton), 셸비(shelby)처럼 지역에서 유래한 성, 스트롱(Strong)처럼 별명에서 유래한 성도 있다.
그렇게 서양도 동양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낳는 순간 얼과 뿌리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가장 이상적으로 여겨왔던 조상의 이름을 붙여줌으로 아이의 장래에 대한 바람을 가시화하고 사회적 자아로서의 정체성을 다져가게 하고 소속감과 결속을 다지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이유는 독자들 자신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했던 알렉스 헤일리의 몸부림이나 일제 식민지배시 일본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창씨개명을 하려했고, 처절하게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이름과 성 바꾸는 것을 거부했는지를 나름대로 절실하게 느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름과 성에 들어있는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뿌리 깊은 인명이야기/우메다 오사무 지음. 위성훈 옮김/파피에/1만원
2006-09-2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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