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민(2008-01-30 19:38:55, Hit : 1442, Vote : 116
 <메넥세노스> 오마이뉴스 서평

...을 이명옥 기자님이 쓰셨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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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자의 나팔수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메넥세노스>

                            이명옥 (mmsarah)  



전몰자를 위한 추도문이라면 아마 누구나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헌납하는 것이라는 링컨의 명연설인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저서 <메넥세노스>에 따르면 전몰자를 위한 추도연설은 오래 전 아테네에서는 이미 관례적인 것이었으며 해마다 전몰자들을 위한 추도 연설이 행해져서 몇 개의 유명한  연설문이 반복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페리클레스의 연설, 데모스테네스 연설이 링컨이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전사한 전몰자들을 추도하기 위해 행한  ‘게티즈버그  연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추도연설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크게 전몰자에 대한 칭송과 유족에 대한 위로 부분으로 이루어졌있다. 전몰자 자신에 대해서는 출생과 양육, 업적에 대해, 유족에 대한 위로 부분에서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용기를 고양시키는 말과 전몰자 가족이 된 데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사실 추모연설이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죽은 자들의 공적을 등에 업고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비열한 산자들의 정치놀음에 이용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씁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당대의 비판가였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역시 추모 연설에 상당한 반감을 가졌을 법 하다.



<메넥세노스>는 소크라테스가 그의 스승 아스파시아로부터 들은 추모 연설을 메넥세노스라는 청년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소크라테스는 전몰자들의 장례식에 읽혀지는 추도 연설에 대해 이렇게 비꼰다.



음, 메넥세노스, 정말 여러 가지 점에서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것은 훌륭한 일인 듯하이. 왜냐하면 설령 가난한 자가 전사했을지라도 훌륭하고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또 설령 모자란 사람일지라도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때문이지. 더욱이 그들은 대충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연설을 준비해서 칭송하니까 말이야. 그들은 이런 식으로 근사하게 칭송을 하거든.



즉 전사자 각각에 대해 그가 세운 무공이건 아니건 다 들먹이며, 그것들을 가능한 한 온갖 미사여구로 최대한 수식해 우리들의 넋을 빼놓지. 그들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나라를 찬양하고 또 전쟁에서 죽은 자를 찬양하고 그리고 또 그 옛날 우리들의 선조 모두와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 자신들도 칭송하는데, 메넥세노스여, 그 결과 나도 그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아주 고귀해지는 것 같다네. 그래서 그럴 때마다 귀 기울여 듣다가 매료돼 딴 사람이 돼 버리곤 하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메넥세노스에게 들려주는 추도 연설 역시 당시 아테네에서 성행하던 연설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아테네 사람들의 태생, 좋은 국토, 먹을거리, 교육과 정치제도, 아테네인들이 전쟁을 통해 이룩한 업적에 대한 칭송과 유족에게 덕과 실천을 당부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평생 문답법을 통해 소피스트들의 궤변이 지닌 허구성을 논파하려 했던, 그래서 독배를 마시면서까지 당대 기득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소피스트들에 대해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을 서슴지 않던 소크라테스가 당대 추도 연설의 형식을 훌륭하게 갖춘 기득권의 나팔수들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추도 연설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당대 아테네 민주정치와 기득권의 대표로 상징되는 페리클레스를 찬양한 투퀴디데스가 지닌 제국주의적 국가의 관점에 반하는 플라톤 자신의 국가적 이상과 관점을 드러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의도적인  풍자적 장치였다고 설명을 한다.



즉 국가와 당대 기득권자로 갖는 권력에 대한 사랑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며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용기 있는 행위라는 투퀴디데스적인 펠리클레스의  제국적 관점에 대해, 소크라테스적 덕에 바탕을 둔 참된 용기와 도덕적 통합이라는 플라톤 자신의 이상적인 국가관과 개인 관을 대비시키려는 안티테제의 의도가 이면에 깊숙히 숨겨진 글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플라톤은 <메넥세노스>를 통해 당시 아테네인들이 지녔던 사고를 엿볼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당대 정치 현안과 체제에 대해 플라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아테네 당대 정치의 현실로 대변되는 페리클레스적 입장에  반하여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플라톤 자신의 이상정치인 철학에 바탕을 둔 평화공존의 사회를 대안으로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과거는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자 미래의 이상을 가꾸어 갈 뿌리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당대 추도연설의 형식을 통해 플라톤 자신이 지녔던 이상을 풍자적으로 드러내 보이려했던 <메넥세노스>야말로 바른 깨우침을 얻어야 할 기득권의 나팔수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닌가 싶다.




메넥세노스와 아스파시아는?


*메넥세노스(Menexenos):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로 <파이돈>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이하던 자리에 함께 있던 파이돈의 동료로 등장한다. <뤼시스>에서는 크테십포스와 함게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어린 소년으로 나오며 소크라테스에게 논박을 당하면서도 토론을 즐기는 "논쟁에 능한" 소년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메넥세노스>라는 대화편에서는 명문가 자제로 철학과 교양공부를 마치고 좀 더 큰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 18세 가량의 젊은 정치 지망생으로 그려진다.



*아스파시아( Aspasia): 밀레토스 출신. 아테네의 기녀로서 페라클레스의 애인이 되어 그의 자식을 낳았다. 당대의 작가들에 의하면 미모와 재능을 갖춘 그녀의 집은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정객들의 사교 장소였으며 소크라테스도 그녀와 교우를 나누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메넥세노스/ 이정호 옮김/이제이북스/8,000원

2008.01.28 10:2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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