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희(2005-01-23 00:34:36, Hit : 2195, Vote : 418
 퇴계의 시와 철학



移草居於溪西 名曰 寒樓庵 (50세 1550년 작) ;



茅茨移構澗巖中 초가집을 옮겨 시내 바위 사이에 지으니
正値巖花發亂紅 바위 틈의 붉은 꽃은 활짝 피어났어라.
古往今來時已晩 그럭저럭 때는 이미 늦었으나마
朝耕夜讀樂無窮 아침에 갈고 저녁에 읽으니 즐거움 끝없어라.




正月二日 立春, 其二 (52세 1552년 작) ;

黃卷中間對聖賢 누런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여
虛明一室坐超然 반 밝은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문에서 봄소식을 또 보나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야 줄 끊어졌다 한탄을 말라.

柴荊澹無事 아늑한 오막살이 일이 없는데
圖書盈四壁 도서만 네 벽에 가득하도다.
古人不在玆 옛 사람은 여기에 있지 않으나
其言有餘馥 그 말의 남은 향기 그윽도 해라.

歸來舊書室 옛날의 그 서재로 돌아들어와서
靜對香煙浮 고요히 향피우고 앉았노라니
猶堪作山人 산 속의 늙은이는 되었건만은
幸無塵世憂 티끌세상 근심없이 다행이라네.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이 황 -



[ 1] 이런들 엇다하며 뎌런들 엇다하료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러타 엇다하료.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황)을 고텨 므슴하료.

[ 2] 연하(煙霞)로 지블 삼고 풍월(風月)로 버들 사마
태평성대예 병(病)으로 늘거 가뇌
이 듕에 바라는 이른 허므리나 업고쟈.

[ 3] 순풍(淳風)이 죽다 하니 진실로 거즈마리
인성(人性)이 어디다 하니 진실로 올한 마리
천하(天下)에 허다 영재(虛多英才)를 소겨 말솜할까.

[ 4] 유란(幽蘭)이 재곡(在谷)하니 자연(自然)이 듣디 됴해
백운(白雲)이 재산(在山)하니 자연(自然)이 보디 됴해
이 듕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못하얘.

[ 5] 산전(山前)에 유대(有臺)하고 대하(臺下)애 유수(有水)ㅣ로다.
떼 만한 갈며기난 오명가명 하거든
엇더다 교교백구(咬咬白驅)는 머리 마음하는고.

[ 6] 춘풍(春風)에 화만산(花滿山)하고 추야(秋夜)애 월만대(月滿臺)라.
사시가흥(四時佳興)이 사롬과 한가지라
하물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 7]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완락재(玩樂齋) 소쇄(瀟灑)한데
만권생애(萬卷生涯)로 낙사(樂事)ㅣ 무궁(無窮)하얘라.
이 듕에 왕래풍류(往來風流)를 닐어 므슴할고.

[ 8]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야도 농자(聾者)는 몯 듣나니
백일(白日)이 중천(中天)하야도 고자(고者)는 못 보나니
우리는 이목총명(耳目聰明) 남자로 농고(聾고)갇디 마로리.

[ 9]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 몯 뵈
고인(古人)을 몯 봐도 녀던 길 알픠 잇네.
녀던 길 알픠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10] 당시(當時)예 녀든 길흘 몃 해를 바려 두고
어듸 가 단니다가 이졔사 도라온고.
이졔나 도라오나니 년듸 마음 마로리.

[11] 청산(靑山)은 엇뎨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는 엇뎨하야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 호리라.

[12]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몯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낫 듕에 늙는 주를 몰래라.


[현대어 풀이]

[1]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는가? / 시골에만 묻혀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어떠하리오. / 하물며 자연을 끔찍히도 사랑하는 이 병을 고쳐서 무엇하겠는가?

[2]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아 /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 가네 / 이러한 가운데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없고자 한다.

[3] 순풍(순박하고 좋은 풍속)이 죽었다 하는 말이 진실로 거짓말이로구나 / 사람의 성품이 어질다

하는 말이 진실로 옳은 말이로구나 / 천하에 허다한 영재를 속여서 말씀할까.

[4] 그윽한 향기의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자연히 좋구나. / 백운이 산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가 좋구나. / 이러한 가운데에서 저 한 아름다운 분(임금)을 더욱 잊지 못하는구나.

[5] 산 앞에 대(臺)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 / 떼를 지어서 갈매기들은 오락가락 하는데

/ 어찌하여 새하얀 망아지는 멀리 마음을 두는가.

[6] 봄바람에 꽃이 산을 뒤덮고 가을 밤에 달은 누각에 가득차는구나. / 네계절의 아름다운 흥이

사람과 마찬가지라 / 하물며 천지조화의 오묘함이야 어느 끝이 있을까.

[7] 천운대를 돌아서 완락재가 맑고 깨끗한데 / 많은 책을 읽는 인생으로 즐거운 일이 끝이 없구나.

/ 이 중에 오고가는 풍류를 말해 무엇할까.

[8] 벼락이 산을 깨쳐도 귀먹은 자는 못 듣나니 /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어도 장님은 보지 못

하나니 / 우리는 눈도 밝고 귀도 밝은 남자로서 귀먹은자와 장님같지는 말아라(학문을 닦아 도를

깨우치며 살자).

[9] 옛 훌륭한 어른이 지금의 나를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뵙지 못하네 / 고인을 뵙지 못해도 그분

들이 행하시던 길이 앞에 놓여 있으니, / 그 가던 길(진리의 길)이 앞에 있으니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는가?

[10] 그 당시에 학문에 뜻을 두고 실천하던 길을 몇 해나 버려두고 / 어디에 가서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으리라.

[11] 청산은 어찌하여 항상 푸르며, /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칠 줄을 모르는가 / 우리

도 그치지 말아서 오래도록 높고 푸르게 살아가리라.

[12] 어리석은 사람도 알며 실천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 (그러나)성인도 못 다

행하니, 그것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 쉽거나 어렵거나간에 (학문 수양의 생활 속에서)

늙어가는 줄을 모르노라.



*초야우생 →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겸손의 표현)

*천석고황 →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연에 묻혀 지내고 싶은 마음의 고질병

*순풍 → 예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 특히 뒷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도의나 윤리를 가리킴

*교교백구 → 현인이나 성자가 타는 새하얀 망아지

*머리 마음하는고? → 멀리 마음을 두는가? 멀리 가려고만 하는가? 여기를 버리고 딴 데 뜻을 지니 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를 지님.

*어약연비 → '고기는 뛰고 솔개는 난다'는 말로 <시경>에 나오는 말. 천지 조화의 묘함을 이름.

*운영천광 → 구름의 그림자와 밝은 햇빛. 만물의 천성을 얻어 조화를 이룬 상태

*만권생애 → 만 권이나 되는 많은 서적을 쌓아 두고 그것을 읽고 연구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일

*이목총명 → 눈도 밝고 귀도 밝음. 여기서는 학문을 닦아 도를 깨달은 상태를 의미함.


퇴계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고 후진 교육을 양성시키고 있을 때, 1565년(명종 20년)에 지은 작품이다.

1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때를 만나고 사물에 접하여 일어나는 감흥을 읊은 전 6수는 "언지(言志)"이고, 학문과 수덕(修德)의자세를 노래한 후 6수는 "언학(言學)"이다. 전후 각 6수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도산 전후 육곡' 또는 '도산 육곡'이라고도 불리는데, 지은이의 친필로 된 목판본이 도산서원에 전해진다.





퇴계의 인간이해와 이원론적 심성

















1. 이기호발의 심성론







2.인심도심의 이원론적 해석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왕(선조)에게 올리면서


- 퇴계 이황 -








판중추부사(判中抽府事) 신(臣) 이황(李滉)은 삼가 재배(再排)하고 아룁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도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낙서(河圖洛書)가 나옴에, 성인이 이것을 근거로 괘효(卦爻)를 지은 뒤로부터 도가 비로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 넓으니 어디서부터 착수하여야 하며, 옛 교훈(古訓)은 천만 가지나 되니 어디서부터 따라 들어가야 하겠습니까?

성학에는 큰 실마리가 있고, 심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지적하여 설(說)을 만들어, 사람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入道之文)과 "덕을 쌓는 기틀(積德之基)"을 보여 주는 것은 역시 후현(後賢)들이 부득이하여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임금된 분의 한 마음(一心)은 온갖 정무(萬幾)가 나오게 되는 자리이며 온갖 책임(百責)이 모이는 곳이며 뭇 욕심이 갈마들며 침공하고, 뭇 간사함이 갈마들며 침해하는 곳입니다. 그 마음이 만일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지면서 방종하여 간다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아서, 그 누구도 이것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옛날의 성스럽고 현명한 황제(聖帝)나 군왕(明王)은 이러한 점을 걱정하여,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삼가 지내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긴 나머지, 스승이 되는 관원(師傳之官)을 세우는 한편 바른 말을 간하는 직책을 두었고, 전후좌우에 의승(疑丞) 보필(補弼)이 있게 하였습니다. 수레를 탈 때는 여분(旅賁)의 규(規)가 있었고, 조회 때에는 관사(官師)의 법이 있었으며, 안석에는 훈송(訓誦)의 간(諫)이 있었습니다. 침실에는 근시(近侍)의 잠언(箴言)이 있었고, 일을 처리할 때는 고사의 인도함이 있었으며, 한가로이 있을 때는 공사(工師)의 송(誦)이 있었습니다. 소반이라든가 밥그룻, 책상, 지팡이, 칼, 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길이 닿는 곳과 몸이 처하는 곳에는 어디나 명(銘)과 계'(戒)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유지하고 몸을 방범(防範)하게끔 하는 것이 이토록 지극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덕이 날로 새롭고 업(業)이 날로 번창하여, 티끌만한 허물도 없게 되고, 나아가 큰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후세의 군주들이란 하늘의 명을 받고 왕위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크고 무겁건만 어떻게 되어서인지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게끔 하는 것은 하나도 이 같이 엄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하면서도 불손한 태도로 스스로 성자인 체 하는가 하면 오만한 태도로 왕공과 수많은 백성들의 위에서 방자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괴멸하게 되는 것이야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남의 신하가 되어 임금을 도에 합당하도록 인도하려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그 마음을 여러 모로 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장구령(長九齡)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 것과 송경(宋璟)이 [무일도](無逸圖)를 드린 것과 이덕유(李德裕)가 [단의육잠]을 바친 것, 진덕수(眞德秀)가 [빈풍칠월도]를 올린 것 등은 모두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금심하여 마지않는 갖은 충정과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드리는 간곡한 뜻이므로, 임금이 마음에 깊이 새겨 경복(敬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추한 몸으로 여러 대의 임금님께 받은 은혜를 저버린 채, 병든 몸으로 농촌에 틀어박혀 초목과 함께 썩어 가길 기약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헛된 이름이 잘못 전하여져 강연(講筵)의 중임(重任)을 주어 부르시니 떨리고 황송하옵니다. 사양하고 피할 길이 없는데다 이미 이 자리를 면하지 못하고 욕되게 한 이상, 성학을 권도(權導)하고 신덕(宸德)을 보양하여 요순 시대의 융성을 이룩하려는 일만은 비록 사양하려 하여도 할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신은 학술이 거칠고 성기며 언변이 서투른데다 질병까지 잇달아 시강(入侍)조차 드물게 하였는데, 겨울철 이후로는 그것마저 완전히 그만두었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신이 엎드려 생각하여 보니, 처음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것들이 이미 전하의 뜻을 감동 분발시킬수 없었으며, 나중에 직접 대하여 여러차례 아뢴 말씀 또한 전하의 슬기에 도움을 드릴수 없었으므로, 보잘 것 없는 신의 정성으로는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을 밝히고 "심법"을 파악하여 "도"와 "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문(入道之門)"과 "덕을 쌓는 기초(積德之基)"를 보여주는 것이 마치 해와 별같이 밝게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이에 감히 이것들을 가지고 나아가 아룀으로써 옛 대왕들의 공송(工誦)과 기명(器銘)이 남긴 뜻에 대신하고자 하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마도 과거를 본받아 장래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옵니다.

이에 옛것 중에서 삼가 더욱더 두드러진 것을 가려 뽑은 것이 일곱 가지 도(圖)입니다. 그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씨도"를 토대로 신이 만든 두 가지 작은 도(小圖)를 덧붙인 것입니다. 그밖에 세 개의 도는 비록 신이 만들었지만, 그 글(文)과 뜻(志)의 조목과 규획은 한결같이 옛 성현들께서 한 것이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합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로 만들었는데, 각 그림 밑에는 외람되나마 저의 설을 붙여 보았습니다. 삼가 정서하여 사람 편에 올리옵니다.





하온대 신이 추위와 질병에 묶인 채 몸소 이것을 하려 하니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 글씨가 단정하지 못하며 글의 줄과 글 크기가 모두 규격에 맞지 않습니다. 다행히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경연관(經筵官)에게 내리시어 바로잡을 논의를 더 많이 하게 하는 동시에 틀린 곳을 고치고 보충하게 하신 다음,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정본(正本)을 정사(精寫)토록 하시기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그 정본을 해당관서에 의뢰하여 병풍 한 벌을 만드셔서 평소 한가롭게 지내시는 곳에 펼쳐 두시도록 하거나 또는 따로 조그마한 수첩을 하나 만들어 항상 궤안에 놓아 두고 기거 동작하실 때 언제나 보고 살피셔서 경계하신다면 충성을 바치려 하는 신의 뜻은 다행스럽기 이를 데 없겠습니다. 그리고 그 뜻 중에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을 신이 지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찍이 듣건데 맹자는 "마음의 기능(心官)은 생각(思)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이해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할 때에도, "생각하는 것을 예(睿)라 하는데, 예는 성인을 이룩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마음이란 방촌(方寸)에 있는데 지극히 허(虛)하고 영(靈)한 것입니다. 이(理)야말로, 도서(圖書)에 드러나 있지만, 지극히 허령한 마음으로 지극히 확실하고 알찬 이(理)를 구하면 틀림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면 이해되고", "예(睿)가 성인을 이룩한다"는 것이 어찌 오늘날이라 하여 증명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영묘한 마음이라 해도 만일 마음의 주재하는 능력이 없으면 일을 앞에 당하여 놓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이(理)의 드러남이 확실하더라도 만일 찾아서 처리하려는 생각이 없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도해를 토대로 생각하는 것도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듣건대,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면서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배움(學)이란 그 일들을 익혀(習事) 참되게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큰 학문(聖門之學)이란 마음을 떠나서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점에까지 통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고서도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로워 불안하므로 반드시 배워가지고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생각(思)과 배움(學)은 서로 계발(相發)하고 서로 도움(相益)을 주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이 이치를 깊이 살피시고, 모름지기 먼저 뜻(志)을 세워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我)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이 순과 같이 되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분발하여 생각과 배움의 두 가지 공부에 힘을 쓰셔야겠습니다. 그런데 "지경"(持敬), 즉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란 곧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동과 정을 일관하고 안(마음)과 밖(행동)을 합치시키고, 드러난 것(顯)과 숨겨진 것(微)을 한 가지 되게 하는 도리입니다.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반드시 이 마음을 제장정일(齊莊靜一)한 속에서 보존하고, 이에 대한 이치를 학문사변(學問思辨)하는 사이에 궁리하며, 남이 보지도 듣지도 않는 곳에서 "계구", 즉 자신을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엄숙하고 공경스럽게 하며, 혼자만 있는 은밀한 곳(隱微幽獨之處)에서는 "성찰",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더욱더 정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도해(圖)에 입각하여 생각할 때에는 그 도해에만 집중적으로 전념하여 마치 다른 도해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듯이 하여야 하며, 어느 한 일을 익힐 때는 그 일에만 전념하여 마치 다른 일이 있는 것은 모르는 듯이 해야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변함없이 그렇게 하여야 하고 오늘과 내일 매일매일 계속하여야 합니다. 혹은 새벽녘 정신이 맑을 때(夜氣淸明時)에 되풀이하여 그 뜻을 음미하여 보기도 하고, 혹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응대할 경우에도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키워가셔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처음에는 혹 부자유스럽고 모순되는 난점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때로는 극히 고통스럽고 불쾌한 일들도 없지 않겠으나, 이러한 것은 바로 옛 사람들의 이른바 "장차 크게 나아갈 기미(大進之幾)"이며 또한 "좋은 소식의 징조(好消息之端)"이니, 절대로 이로 인하여 그만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더욱더 자신을 가지고 힘을 기울이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이(理)가 서로 영향을 미쳐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환히 꿰뚫 듯 이해하게 되고, 익히는 것(習)과 그 익혀진 일이 서로 익숙하여져서 점차로 순탄하고 순조롭게 행하여지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각 그 한가지에만 전념하던 것이 끝내는 모두 일치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맹자가 말한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자기에게) 깨닫는 경지(深造自得之境)"이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만두지 못할 경험입니다. 또 이에 따라서 부지런히 힘써 나의 재능(吾才)을 다하면 안자(顔子)의 인을 어기지 않는 마음과 나라를 위하는 사업(爲邦之業)이 다 그 속에 있게 될 것이며, 증자(曾子)의 일관된 충서(忠恕)와 전도의 책임이 그 몸 자신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외경(畏敬)"의 태도가 일상생활 중에서 떠나지 않으면 "중화(中和)"에 의한 만물의 "위육(位育)"의 공(功)을 이룩할 수 있으며, "덕행"이 이륜(人倫)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천인 합일"의 묘한 경지도 마침내 이룰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라 하여 만들고 설이라 하여 지은 것이 겨우 열폭의 종이에 늘어놓은 데 불과하며, 생각하시고 익히시는 것이 단지 평소 한가로운 곳(燕處)에서 하는 공부에 지나지 않지만 도(道)를 깨달아 성인을 이루는 요체와 근본을 바로잡아 정치를 베푸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전하께서 이에 시종 유의하시어 하찮다고 소홀히 하신다거나 귀찮고 번거롭다고 치워 버리지 않으신다면, 나라(宗社)의 다행이며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신이 초야에 묻힌 야인으로서 근폭(芹曝)을 올리는 정성으로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는 것임을 무릅쓰고 바치나이다.

황송하옵고 송구하올 뿐입니다.
















인간의 주체적 진실성의 구현과 경사상





1. 진적력구의 성장성숙론






▶ 경재잠 설명


의관을 바르게 하고, 눈매를 존엄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있기를 마치 상제를 대하듯 하라. 발가짐(足容)은 반드시 무겁게 할 것이며, 손가짐(手容)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여야 하니, 땅은 가려서 밟아, 개미집 두덩까지도 (밟지 말고)돌아서 가라.

문을 나설 때는 손님을 뵙듯 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조심조심하여, 혹시라도 안이하게 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고, 잡념 막기를 성곽과 같이 하여, 성실하고 진실하여 조금도 경솔히 함이 없도록 하라.

동쪽을 가지고 서쪽 가지 말고, 북쪽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지 말며, 일을 당하여서는 그 일에만 마음을 두어, 그 마음씀을 딴데로 가지 않도록 하라.

두 가지, 세 가지 일로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피도록 하라. 이러한 것을 그치지 않고 일삼아 하는 것을 곧 "경을 유지함", 즉 "지경(持敬)"이라 하니, 동할 때나 정할 때나 어그러짐이 없고, 겉과 속이 서로 바로잡아 주도록 하라.

잠시라도 틈이 벌어지면 사욕이 만 가지나 일어나 불꽃도 없이 뜨거워지고 얼음 없이 차가워지느니라.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자리를 바꾸고 삼강(三綱)이 멸하여지고 구법(九法) 또한 못 쓰게 될 것이다. 아! 아이들이여! 깊이 마음에 새겨 두고 공경할지어다. 먹을 갈아 경계하는 글을 씀으로써 감히 영대(靈臺)에 고하노라.

주자는 말하였다. "주선(周旋)이 규(規)에 맞는다고 함은 회전처가 그 둥긂이 규에 맞는 것처럼 되길 바란다는 것이고, 절선(折旋)이 구(矩)에 맞는다 함은 횡전처가 그 모남이 구에 맞는 것처럼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의봉(蟻封)이란 의질(蟻질)이다. 옛말에 "말을 타고 의봉 사이로 굽어서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것은 의봉 사이의 길이 꼬부라지고 좁아서, 말을 타고 그 사이를 절도를 잃지 않으며 꼬불꼬불 달려 돌아간다는 것이 바로 어려운 일을 해내는 소이(所以)임을 말한 것이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한다는 것은 말을 망령되게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고, 잡념 막기를 성과 같이 한다는 것은 사악한 것이 들어옴을 막는다는 것이다. 또 "경"이 모름지기 "주일"하는 것임을 말하였다. 본래 한 개의 일이 있던 데에 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고, 원래 한 개 있던 데에 두 개를 더하면 곧 세 개를 이룬다. 잠깐 사이란 때로 말함이고, 터럭 끝만큼의 차이란 일로 말함이다.

임천 오씨는 말하였다. "이 잠(箴)은 대략 10장으로 되었는데, 한 장은 4구씩이다. 첫째 장은 정할 때에 어김이 없을 것을 말한 것이며, 둘째 장은 동할 때에 어김이 없을 것을 말한 것이다. 셋째 장은 겉의 바름을 , 넷째 장은 속의 바름을 말한 것이다. 다섯째 장은 마음이 바로잡혀 일에 통달될 것을 말하였으며, 여섯째 장은 일에 주일, 즉 집중하되 마음에 근본할 것을 말하였다. 일곱째 장은 앞의 여섯 장을 총괄한 것이며, 여덟째 장은 마음이 흩어지지 않을 수 없는 병폐를 말한 것이다. 아홉째 장은 일에 집중되지 못하는 병폐를 말한 것이며, 열째 장은 이 한 편을 총괄적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서산 진씨는 말하기를, "경에 대한 뜻은 여기에서 더 이상 남김이 없게 되었다. 성학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것을 잘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위의 잠의 제목 아래에 주자는 자서하여 말하길, "장경부(張敬夫)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 남은 뜻을 주워 모아 경재잠을 지어, 서재의 벽에 써 붙이고 스스로 경계한다"고 하였으며, 또 이 "잠은 경의 조목인데 설에서는 많은 '지두'가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지두의 설은 공부하는 데 좋은 근거가 될 것이라 하겠는데, 금화의 왕노재가 지두를 배열하여 이 도(圖)를 만듦으로써, 명백히 정동되고 모두 단락지어짐이 또한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생각하고 눈에 띌 때마다 항상 몸소 체험, 음미하시고 경계삼아 반성하시어 깨닫는 것이 있으셔야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경이 성학을 하는 데 시종이 됨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2. 존천리 알인욕의 존재성찰론




3. 동정일관의 경공부







▶ 숙흥야매잠 설명

닭이 울어 잠을 깨면, 이러저러한 생각이 점차로 일어나게 된다.

어찌 그 동안에 조용히 마음을 정돈하지 않겠는가! 혹은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기도 하고, 혹은 새로 깨달은 것을 생각해 내어, 차례로 조리를 세우며 분명하게 이해하여 두자.

근본이 세워졌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을 갖추고, 단정히 앉아 안색을 가다듬은 다음, 이 마음 이끌기를 마치 솟아오르는 해와 같이 밝게 한다.

엄숙히 정제하고, 마음의 상태를 허명정일(虛明靜一)하게 가질 것이다. 이때 책을 펼쳐 성현들을 대하게 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자와 증자가 앞뒤에 계실 것이다.

성현의 말씀을 친절히 경청하고, 제자들의 문변(問辯)을 반복하여 참고하고 바로 잡아라. 일이 생겨 곧 응하게 되면, 실천으로 시험하여 보라. 천명은 밝고 밝은 것, 항상 여기에 눈을 두어야 한다. 일에 응하고 난 다음에는 나는 곧 예전의 나대로 되어야 한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신을 모으며 잡념을 버려야 할 것이다. 동과 정이 순환하는 중에도 마음만은 이것을 볼 것이다.

고요할 때는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야 하지만, 마음이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려서는 안 된다. 독서하고 남은 틈에는 틈틈이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성정을 길러야 한다.

날이 저물고 사람이 권태로워지면 흐린 기운이 엄습하기 쉬우니 장중히 가다듬어 밝은 정신을 떨쳐야 한다. 밤이 늦어지면 잠자리에 들되,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으라. 잡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심신이 돌아와 쉬게 하라.

야기(夜氣)로써 길러 나가라. 이미 정이면 원에 돌아오느니라.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여기에 마음을 두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라.



위의 잠(箴)은 남당 진무경(陳茂卿)이 지어 스스로 경계한 것입니다. 금화 왕노재(王魯齋)가 일직이 태주의 상채(上蔡) 서원에서 교육을 맡았을 때, 오로지 이 잠만을 가르쳐, 배우는 사람들마다 모두 외고 익혀서 실행하게 하였습니다.

신이 지금 삼가 노재의 경재잠도를 본떠 이 도를 만들어 그의 도와 상대가 되게 하였습니다. 원래 경재잠에는 공부해야 할 영역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영역에 따라 배열하여 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도에는 공부해야 할 때가 많이 적혀 있으므로, 그 때에 따라 배열하여 도를 만들었습니다.

무릇 도의 유행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한 자리도 이가 없는 곳이 없으니, 어느 곳에서 공부를 그만 둘 수 있겠습니까? 잠깐 사이라도 정지되는 일이 없으므로 한 순간도 이가 없을 때가 없으니, 어느 때인들 공부를 그만두어서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사자(子思子)는 이르기를, "道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삼가 조심하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고 하였고, 또 "은밀한 곳보다 잘 드러나는 곳이 없고, 세미(細微)한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생활에 있어, 장소와 때를 막론하고 존양(存養)하고 성찰하여 그 공부를 힘쓰게 하는 법입니다. 과연 이와 같이 할 수 있으면, 어느 영역에서나 털끝만큼의 과오마저 없게 될 것이며, 어느 때나 순간의 끊임마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병진해야 합니다. 성인이 되는 요결, 그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상의 다섯 도는 심성에 근원을 둔 것인데, 요점은 일상생활에 힘쓰고 경외의 태도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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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론적 이기론








▶ 태극도설 설명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데, 동의 상태가 지극하면 정(靜)하여지고,정하여지면 "음(陰)" 을 낳는다.

정의 상태가 지극하면 다시 동하게 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 가 맞선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를 낳는데, 이 다섯 가지 기(五氣)가 순차로 퍼지어 네 계절(四時)이 돌아가게 된다.

"오행" 은 하나의 "음양" 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 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 이다.

오행의 생성시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가져서, "무극의 진(眞)과 이(二), 오(五)의 정(精)"이 묘하게 합하여 응결되면 "건도(乾道)"는 남성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을 이룬다. 두 가지 기(二氣)가 서로 감화하여 만물을 낳고, 만물이 계속 생성함으로써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 형체(形)가 이미 생기자 정신(神)이 지(知)를 발하고, 오성(五性)이 감동하매 "선악"이 나뉘고 "만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에 성인이 "중정(中正)"과 "인의(人義)"로써 이것을 정하고, 정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을 세웠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聖人)"은 그 덕성이 천지와 합치하고, 그 밝음이 일월과 합치하며, 그 질서가 네 계절과 합치하고, 그 길흉이 귀신과 합치한다. 군자는 이것을 닦으므로 길하게 되고, 소인은 이것을 어기므로 흉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를 세워 인과 의라 한다"고 하며, 또 이르기를 "원시반종(原始反終)하면 사생(死生)의 설(說)을 안다"고 한 것이니, 위대하도다 '역(易)'이여! 이것이야말로 그 지극한 것이로다.

주자가 말했습니다.
도설(圖說)의 머리 부분에서는 음양에 의한 변화의 근원을 말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곧 인간의 타고난 것을 밝혔다. 여기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특하다" 한 것은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성(性)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태극이다.

"형체가 생기자 정신이 발하였다"는 것은 음이 동하고 음이 정하여 이루는 것이다.

"다섯 가지 성(五性)이 감동한다" 함은 양과 음이 변하고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의 성을 낳는 것을 말한다.

"선악이 나누인다"는 것은 만물이 화생하는 상(象)이다.

"성인이 중정(中正), 인의(仁義)로 정(靜)하고, 정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을 세웠다" 한 것에 이르러서는, 태극의 전체를 얻어서 천지와 더불어 간격없게 합치토록 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아래 글에서 다시 천지, 일월, 사시, 귀신이라는 네 가지와 합치되지 않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주자는 또 말하였다.
성인은 힘써 닦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여 몸을 닦는 것은 곧 군자가 길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도리를 거스르는 것은 소인이 흉하게 되는 까닭이다.

닦는 것과 거스르는 것은 역시 "경(敬)"과 "사(肆)"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경의 태도를 가지면 욕심이 적어지고 사리는 밝아진다. 욕심을 적게 하고 또 적게 하여 아예 없게 하면, 정할 때에는 허하고 동할 때에는 곧게 나아가게 되어 성인을 배울 수 있다.




위의 것은 염계 주자가 스스로 만든 '도'와 '설'입니다.

평암(平巖)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이 그림은 [계사(繫辭)]에서 '역(易)에 태극이 있었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았다'고 한 뜻을 미루어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역]에서는 괘효(卦爻)를 가지고 말하였는데, 이 그림에서는 조화(造化)를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도리의 큰 두뇌가 되는 것이며 백세 도술의 연원이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이 그림을 머리에 내세우는 것은 역시 [근사록(近思錄)]에서 이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첫머리에 둔 의도와 같은 것입니다.


무릇 성인을 배우는 사람은 근본을 여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 [소학], [대학] 등에 힘을 기울이다가 그 보람을 거두는 때에 이르러 하나의 근원을 끝가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것이 이른바 "이(理)를 궁구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른다"는 것이고, 이른바 "신묘(神)를 다하고 조화를 알아서 덕이 성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귀기천의 가치체계





퇴계의 이기론은 이론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주자의 이기설을 따른다.


이理와 기氣에 대하여 일찍이 주자는
기는 능히 응결하고 조작하나
이는 정의와 조작이 없다하여 스스로의 작용을 인정하지 안았다.
그러나 퇴계는 이를 순수한 추상적 개념적 형식적 무위적인 것으로만 보지 안핬다.
퇴계는 정의情意(감정과 의지)와 조작이 없는 것은 이의 본연한 체體이며 경우에 따라 발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이의 지신한 용用이다고 하여 이의 무위한 체와 지신한 용을 아울러 말하였다.


태극은 궁극적인 존재요, 태극지리에 동정이 있기 때문에 태극은 양의(음양)를 생할 수 있다고 퇴계는 생각하였다.
무정의, 무조작은 이의 본체體요, 능생, 능발은 이의 지묘한 작용用이다.
이와 같은 이의 체용설은 퇴계의 이발 이도설의 근거가 된다.

퇴계는 이기심성을 말할 때 기발氣發만이 아니라 이발理發을 말하였으며
더 나아가 이동理動 이도理到를 주장하였다.즉 이는 인심의 이르는 바를 따라서 이른다고 하였다.
이는 주희와 다른 점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퇴계의 이기론이 심성론의 차원 혹은 인간학적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독창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퇴계의 이理(이치)는 단순히 객관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 진실성에 비중을 둔 것인데, 심득궁행(마음 깊이 체득(진성궁리)하여 몸으로 실천하는데 다함이 없다)을 통해 노정되는 정의적 사실로서의 측은지심(仁-사랑)을 이발(순수한 마음의 이理에서 발한 것이다)이라 하고 있다.




퇴계가 말하는 이理는 물아도 없고, 내외도 없고, 분단도 없고 방체도 없다.

바야흐로 고요해서는 혼연히 전체를 갖추고 있으나 , 이것이 일본(하나의 근본)이며,
마음에 있다거나 사물에 있다거나 하는 구분이 없다.
그것이 움직여 일에 대응하고 사물에 접함에 이르러서 사사물물의 이는 곧 내 마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이理니, 다만 마음이 주재가 되어 각각 그 법칙을 따라 대응할 뿐이요,
내 마음으로부터 미루어 나가기를 기다린 후에 사물의 이치가 되는 것은 것은 아니라고 퇴계는 말한다.

이러한 이는 마음에 있거나 사물에 있거나 본래 두 가지가 아님을 분명히 투철하게 알아야만 비로소 참으로 이치理를 안 것이요, 그렇지 않고서 함부로 하나의 이理라고 한다면,
이것은 일본(하나의 본)과 만수(다양하게 분화된 온갖 것)에 있어서 아직도 밝지 못한 바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퇴계는 매번 '이理'자가 알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퇴계는 사사물물의 이는 곧 내 마음의 이라고 하였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일리(하나의 이치)이다. 심의 이에 대한 관계는 주객을 관철하면서 포월하는 일리에 대한 관계이다. 심은 내면적 주관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사물에 대하여 개방적 연관성을 갖는다.



소강절(소옹)이 심위 태극 (마음이 태극이다) 이라 한데 대하여 퇴계는 그것을 이른바 인극이라 하였던 바, 인간 주체를 떠나서 진리자체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이를 극존무대한 것으로.. 그런데......

즉 지극히 허하되 지극히 실하고, 지극히 무하되 지극히 유하고, 동하되 동함이 없고, 정하되 정함이 없는 것으로 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여하튼

아...(이건 형식적인 모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이고 모르겠다..계속 적어보면....) 이거 양명학인데...어찌될일까????/..............



또 '충막무짐沖漠無朕한 것은 건곤에 있어서는 따로 태극의 체가 되어 만상이 다 갖추어져 있고.....
인심에 있어서는 지허지정한 만용이 갖추어져 있고
사물에 있어서는 발현유행하는 용이 되어 때와 곳을 따라 있지 않음이 없는 것 ' 이라 하였다.


"도道-진리-이치는 가까이 있는데 단지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못할 뿐이다.
어찌 생활 속의 사물을 떠나서 별달리 특별한 어떤 도리(이치)가 있겠는가"

라고 퇴계는 말하였다.



주자는 이기를 논함에 있어서 소이연과 소연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본(本, 道)과 구 (具, 器)로 규정하기도 하며, 천리와 인욕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는데. 소이연과 본은 형이상자,
소연과 구는 형이하자로서, 이둘은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물을 이루는 관계이다.


반면에 천리와 인욕은 인간의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퇴계는 구인성성에 학문적 목표를 두었다.
군자와 소인이 대립 갈등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천리와 인욕을 준별함으로서 인도를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이기심성론에 있어서 도덕적 가치론의 입장에서
이귀 기천 (이는 높이고 기는 천시하는)의 이원론적 사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기불상리(이와 기는 떨어져 있지 않다--사실적 관계)
이기불상잡(이와 기는 섞여 있지 않다-- 논리적관계)


이理와 도道는 형이상
기氣와 기器는 형이하

그러나 퇴계의 이기이원론은 주희의 우주론적인 해석이라기 보다는
이기불상잡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인간학적 혹은 도덕적 관점에서 (인간심성과 나아가 사실과 가치체계의 구분)
이기를 구분하고 설명하고 있다.







퇴계에 의하면 이는 무성무취하지만 진실무망한 진실한 실재로서
지극히 허하면서도 실한 것이요,
음양오행 만물만사의 근본이 되면서도 그 가운데 구속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와 섞여서 일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기는 생극 순미 승강 왕복 내거 합벽 왕쇠 유만부제한 것으로
불선으로의 타락가능성이 상존한다.
형태가 이루어진 뒤에 문득 이의 터전이 되고 재료 도구가 된다.
기가 천한것은 유욕때문이다.



이는 극존무대로서, 명령자로서 위일 위상 위편하여
음양오행과 만물만사의 근본이 된다.
이가 귀한 것은 무위로서 근본이 되기 대문이다.







퇴계가 음양과 도 이와 기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천리와 인욕의 혼동을 경계하는 것이다.











▶ 동규후서 설명

희(熹)가 가만히 살펴보니, 옛날의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뜻은 어느 것이나 다 의리를 강명(講明)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닦은 다음에 그것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게 하려는 것이지, 한갓 낡은 것을 외는 데 힘쓰고 문장을 일삼음으로써 명성이나 구하고 이록(利祿)이나 취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와 반대된다.

그러나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치던 법은 경전에 갖추어져 있다.
뜻있는 선비는 마땅히 숙독(熟讀)하고 깊이 생각하여 묻고 변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의 당연함을 알아가지고 자신을 책하여 반드시 이에 따르게 한다면, 준칙과 금방(禁防)을 어찌 다른 사람들이 마련하여 준 뒤에 지켜지길 기다리겠는가.

근세 학교에는 규약이 있지만, 학자를 대함이 이미 천박하고, 그 법이 또한 결코 옛 사람들의 뜻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학당에서는 그것을 되풀이하여 시행하지 않겠으며, 특히 성현들이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큰 근본을 취하여 위와 같이 조목을 지어 처마 현판에 게시한다.

제군이 이것을 서로 강명하고 준수하여 몸소 실행하도록 한다면, 사려·언행에서 그 계근공구(械謹恐懼)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저 규범보다 더 엄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혹 규칙 밖으로 벗어나는 점이 있다면, 저 이른바 규약이란 반드시 취하여야 할 것이지 참으로 생략할 수 없는 것이다. 제군은 그것을 명심하도록 하라.





위의 규는 주자가 지어 백록동(白鹿洞) 서원의 학도에게 게시한 것입니다.
이 백록동은 남강군 북쪽, 광려산 남쪽에 있는데, 당의 이발이 여기에 은거하여 흰 사슴을 기르며 지냈으므로, 백록이라는 것이 그 동의 이름으로 되었습니다. 남당 때에 서원을 세워 국상이라 하였는데, 학도가 항상 수백 명씩 되었습니다.

송태종이 서적을 나누어 주는 한편, 동주에게 관직도 주며 아끼고 권장하였습니다. 중간에 황폐된 일도 있었으나, 주자가 지남강군사로 왔을 때 조정에 청하여 중건하고 학도를 모아 규를 만들어 도학을 앞장서 밝히자 서원의 가르침이 마침내 천하에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이제 삼가 규문의 본 조목에 의하여 이 그림을 만드어 보고, 살피시기에 편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원래 당우 시대의 가르침은 오품(五品)에 있었고, 삼대의 학문은 모두 인륜을 밝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왕의 학문은 그 준칙과 금지의 조목이 비록 일반 학문과 서로 다 같지 않지만, 이륜(彛倫)에 근본을 두고서 궁리를 하고 역행하면서 저 심법의 절실히 요긴한 점을 구하는 것은 같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 도도 함께 바쳐, 아침 저녁으로 아뢰는 설어(說御)의 잠언에 보태는 것입니다.

이상 다섯 도는 천도에 근본한 것인데, 그 공은 인륜을 밝히고 덕업을 힘쓰는 데 있습니다.
























주기론적 이기일물설 비판




사단칠정론












-서화담에 대해서






-나정암에 대해서







-양명학과 불교에 대하여







-기대승에 대하여





-율곡에 대하여














▶ 대학경 설명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新民)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경지(至善)에서 머무는 데(止) 있다 .

머무를 데를 안 뒤에야 정함이 있고, 정한 뒤에야 동요되지 않을 수 있으며(靜), 동요되지 않은 뒤에야 편안할(安) 수 있다.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廉), 생각한 뒤에야 얻을(得) 수 있다.

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초와 종결이 있으니,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워질 것이다.

옛날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바로 잡았고, 그 집안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았고, 그 몸을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참되게 했고, 그 뜻을 참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앎을 투철히 했으니, 앎을 투철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는 데 있다.

사물의 이치가 구명된 뒤에라야 앎이 투철하여지고, 앎이 투철하여진 뒤에라야 뜻이 진실하여지고, 뜻이 진실하여진 뒤에라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라야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라야 집안이 바로 잡히고, 집안이 바로 잡히고 난 뒤에라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라야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 몸을 닦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는다.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 말단이 다스려지는 법이 없으며, 후하게 해야 할 데에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해야 할 데에 후하게 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경이란 어떻게 힘써야 하는 것인가?" 하였더니, 주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정자는 일찍이 '주일무적', 즉 정신을 통일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또 '정제엄숙', 즉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엄숙히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문인인 사씨의 설로는 이른바 "항상 경계하여 깨달으려는 방법"이며, 윤씨의 설로는 "그 마음을 단속하여 한 가지의 잡념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라 운운하였다.

경이란 한 마음의 주재이며, 만사의 근본인 것이다. 그 힘쓰는 방법을 알면 [소학]이 이것에 의지하고서야 시작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소학]이 이것에 의지하고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면 [대학]이 이것에 의지하여야만 끝 맺을 수 있는 것도 일관하여 의심하지 않게 된다.

원래 이 마음이 이미 있게 되면, 이 경에 의하여 사물을 밝히고, 앎을 투철히 하여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하면, 이것이 이른바 덕성을 놓이고 학문을 일삼는 것이다. 경에 의하여 뜻을 진실히 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자신의 몸을 닦으면, 이것이 이른바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에 의하면 집안을 바로잡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에까지 미치면, 이것이 이른바 "자기 자신을 닦아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고, "공손한 태도를 독실히 하여 천하가 화평하여 진다"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것이 다 하루라도 "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경이라는 한 글자가 성학의 시작과 끝맺음에 걸친 일관된 요건이 아니겠는가!



위의 글은 공자가 남긴 첫 장입니다.
국초의 신하 권근이 근래에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장 아래에 인용한 [혹문]의 [대학]과 [소학]을 통론한 설은 [소학도] 아래서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만 이 두 설만 통하여 볼 것이 아니라, 상하의 여덟 그림도 모두 마땅히 이 두 그림과 통하여서 보아야 합니다.

대저 위의 두 그림은 실마리를 구하여 확충하고, 하늘을 본받아 도를 다하는 극치점으로 [소학]과 [대학]의 포준 및 본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래의 여섯 그림은 선을 밝히고 자신을 참되게 하며, 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히며, 힘을 기울여야 할 점으로 [소학], [대학]의 근거이자 공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이란 상하에 다 통하는 것으로서, 공부를 착수하는 데서나 그 공부의 효과를 거두는 데서나 항상 실천하여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이 위와 같았으며, 이제 이 [십도]도 모두 경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태극설]에서는 정만 말하고 경은 말하지 않았는데, 주자가 주해하는 가운데서 경을 말하여 보충하였습니다.








▶ 소학제사 설명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은 천도의 상, 즉 하늘의 불변의 법칙이고, 인(仁), 의(義), 예(禮), 지(智)는 인성의 강(綱) 즉, 인간의 벼리가 되는 본성이다.

이 인간의 본성들은 원래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네 가지 단서인 "사단"이 풍성히 감동됨에 따라 드러난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히 대하는 바로 이것이 "병이(秉彛)"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순리적으로 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인만이 그 본성이 자연적으로 실현되어 하늘과 같이 넓어서, 털끝 만큼의 힘으로 더하지 않아도 "온갖 선함(萬善)"이 다 갖추어진다.

일반 사람들은 어리석어 물욕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그 도리를 무너뜨리고 서슴없이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진다. 성인이 이것을 가엾게 여긴 나머지 학문을 만들고 스승을 두고 가르치어 그 본성의 뿌리를 북돋는 한편 그 가지를 뻗게 하였다.

[소학]의 방법은 쇄소(灑掃)하고 응대(應對)하며, 집안에서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남에게 공경하여 행동이 조금도 법도를 어김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완전히 행하고 난 다음에 힘이 남으면 시를 외고, 글을 읽고, 노래를 읊조리고, 춤을 추며 모든 생각이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이 법의 궁구와 깊이 생각하여 몸을 닦음이 이 학문의 큰 뜻이며 목적이다.

밝은 명(明命)은 환하여 안팎이 없다.
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혀야 곧 본래의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이 옛날에 부족하지 않았다고 하여 오늘날 어찌 넉넉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세월이 멀리 흘러왔고, 어진 사람들이 돌아갔는데다 경전들은 피폐되고 교육마저 해이해져, 어린이의 양육이 바르지 못하매, 자란 뒤에는 더욱 부박하고 사치스러워진다.

마을에는 좋은 풍습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어진 인재가 없으며, 사리 사욕으로 뒤얽혀 싸우고 이단의 말들이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병이는 하늘에 표준을 둔 것이어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옛날에 들어온 말들을 주워 모아 뒷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하노라.

애달프다! 소년들이여! 삼가 이 글을 배우도록 하라. 이것은 늙은 나의 노망한 소리를 적은 것이 아니라 오직 성인의 가르침이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대가 사람에게 [대학]의 도를 말하려 하면서도 또 [소학]의 글을 참고하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었다.

주자는 그말을 듣고 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배움의 크고 작음은 확실히 같지 않으나 '도'가 되는 점에 있어서는 한 가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릴 때에 [소학]에서 익히는 것이 없으면, 그 방심을 거두고 덕성을 길러서 [대학]의 기본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커서 [대학]을 더 배우지 않는다면 의리를 살피고 그것을 사업에 시행함으로써 [소학]의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린 학도로 하여금, 반드시 먼저 쇄소응대하든가 진퇴하는 가운데,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학습들에 스스로 진력함으로써, 자라난 뒤에는 '명덕'과 '신민'하는 일에 나아가 '지극히 선한 경지'에 까지 가서 머물게 하려는, 이것이야 말로 순서상 당연한 것이니, 어찌 불가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또 "만일 나이가 이미 자랐는데 공부가 이렇게 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라고 하자, 그에 답하여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이미 지나간 것은 물론 뒤따라 갈 수 없지만, 공부의 차례나 조목은 어찌 다시 보충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듣기로는, '경'이라는 한 글자는 성학의 시초와 종국을 성립시켜 주는 것이라 한다. [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것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참으로 본원을 함양하여 쇄소·응대·진퇴에 관한 법도 및 육예의 가르침에 마음을 쓰지 못하게 된다. [대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것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역시 총명을 개발하여 덕을 닦고 학업을 익히어 '명덕', '신민'의 공을 가져오지 못한다. 불행히도 때가 이미 지난 뒤에라도 배우는 사람들이 참으로 이것에 힘을 기울여 큰 것을 닦아 나아가게 되는 동시에 그 작은 것을 겸하여 보충할 수 있다면, 그 나아가게 하는 소이로서는 장차 근본이 없어서 스스로 도달하지 못 할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위의 [소학]은 옛날에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신이 삼가 본서의 목록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서 대학의 그림과 대조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자가 [대학혹문]에서 [대학], [소학]에 대하여 통론한 것을 인용하여 양자의 공부하는 대강을 나타내었습니다.

원래 [소학]과 [대학]은 서로 상대적으로 기다리면서 성립합니다. 이것들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혹문]에서는 그것들을 통론할 수 있었고, 이 두 그림에서도 겸수상비하여 말할 수 있었습니다.





dvhbmhkx (2018-01-25 17: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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