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희(2004-09-04 18:58:03, Hit : 2388, Vote : 466
 예禮와 악樂(시詩란?)




《예기(禮記)》

<樂記第十九>




天高地下, 萬物散殊, 而禮制行矣. 流而不息, 合同而化, 而樂興焉. 春作夏長, 仁也. 秋斂冬藏, 義也. 仁近於樂, 義近於禮. 樂者敦和, 率神而從天. 禮者別宜, 居鬼而從地. 故聖人作樂以應天, 制禮以配地. 禮樂明備, 天地官矣.

天尊地卑, 君臣定矣. 卑高已陳, 貴賤位矣. 動靜有常, 小大殊矣. 方以類聚, 物以 分, 則性命不同矣. 在天成象, 在地成形. 如此則禮者, 天地之別也. 地氣上齊, 天氣下降, 陰陽相摩, 天地相蕩, 鼓之以雷霆, 奮之以風雨, 動之以四時, 煖之以日月, 而百化興焉. 如此則樂者天地之和也. 化不時則不生, 男女無辨則亂升, 天地之情也.

及夫禮樂之極乎天而蟠乎地, 行乎陰陽而通乎鬼神, 窮高極達而測深厚. 樂著大始, 而禮居成物. 著不息者天也, 著不動者地也. 一動一靜者, 天地之間也. 故聖人曰,"禮樂"云.


하늘이 높고 땅이 낮으며, 만물이 성품을 달리해서 예(禮)의 구별이 행하여 진다. 음양의 기가 흘러서 쉬지 않고, 합동하고 조화해서 악(樂)이 일어났다. 봄에 심고 여름에 자라는 것은 천지의 물건을 낳는 인(仁)이다.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감추는 것은 천지의 물건을 성숙시키는 의(義)이다. 인(仁)은 악(樂)에 가깝고 의(義)는 예(禮)에 가깝다. 악(樂)이란 조화를 두텁게 하여 신(神)에 따라 하늘에 따르는 것이고, 예(禮)란 마땅함을 분별하고 귀(鬼)에 있어 땅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이 악(樂)을 만들어서 하늘에 응하고, 예(禮)를 만들어 땅에 따르는 것이다. 예악이 밝게 갖추어져 천지가 생성 화육하는 일을 관장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군신이 정해지고, 높고 낮은 것이 벌어져서 귀천이 자리잡고, 음양의 움직임과 고요함이 정해져 있어, 작은 것과 큰것을 달리하고 , 이치(方은 도道를 의미)는 유(類/닮은 종류)로서 모이고 물건은 무리지움으로써 나뉘어지는 것은 성(性)과 명(命)이 같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천상을 본으로 삼고, 땅의 모양을 이루게 된다. 예(禮)는 천지의 분별이다. 땅의 기운은 위로 오르고 하늘의 기운은 밑으로 내려간다. 음양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고 천지가 서로 움직여서 이것을 울리는 뇌정으로써 하고, 이것을 윤택하게 하되 바람과 비로써 하고, 이것을 움직이되 네 계절로써 하고 , 이것을 따사롭게 하되 해와 달로써 해서 온갖 것의 조화와 생성이 이루어진다. 악(樂)은 천지의 조화이다. 조화와 생성이 그때가 아니면 나지 않고 남녀가 분별이 없으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무릇 예악이 하늘의 조화를 극진히하고 땅의 서(질서)를 망라하여, 음양의 이치에 의해 행해져 귀(땅의 혼/질서)와 신(하늘의 혼/이치)을 느끼고 통함에 의해 높은 것을 지극히 하고 먼것에 닿아 심후(깊고 넓은)를 헤아린다. 악(樂)은 태시를 나타내고 예는 성물에 있다. 나타나서 쉬지않은 것은 하늘이요, 나타나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땅이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멈추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예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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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八佾第三(팔일제삼)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자왈 인이불인 여례하


人而不仁, 如樂何?"
인이불인 여악하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다면 예인들 무엇하리오?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다면 악인들 무엇하리오?"



<해설> -도올
이장은 공자의 생각의 철학적 구조를 잘 나타내는 심오한 표현으로 해석한다. 악(樂)은 하늘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요, 예(禮)란 땅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악(樂)은 인간의 허령한 상초적 상상력에 속하는 것이요, 예(禮)란 인간의 구체적인 하초적 질서감에 속하는 것이다. 악(樂)은 신(神)을 거느리고 天을 따르고, 예(禮)는 귀(鬼)를 거느리고 지(地)를 따른다. 악(樂)은 신(神)의 세계요, 예(禮)는 귀(鬼)의 세계다.악(樂)은 혼(魂)의 세계요, 예(禮)는 백(魄)의 세계다. 악(樂)은 부드러운 정감의 소산이요 예(禮)는 딱딱한 이지의 소산이다. 따라서 악(樂)은 친화를 위해있는 것이요, 예(禮)는 변별을 위해 있는 것이다.

악(樂)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요, 예(禮)는 인간의 외면으로부터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樂)은 고요한 것이요, 예(禮)는 질서 정연한 것이다. 악은 천지지화(天地之和)요 예는 천지지별(天地之別)이다. 예는 우리에게 질서의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악은 우리에게 생명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예악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궁극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 최종적인 인성론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인(仁)'이라고 공자는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예와 악은 예와 악다웁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이요, 인간을 인간다웁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仁)이다. 그렇다면 인(仁)이란 무엇인가?

'불인(不仁)'이라는 말은, 의가(醫家)에서 '무감각'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느낄 수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인의 뜻에서 인(仁)의 의미를 역출해 낼 수 있다. 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느낄 줄 아는 상태'이다. 인(仁)은 인자함의 규범적 윤리덕성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이전의 느낌이다. 그것은 심미적 세계를 느낄 줄 아는 감수성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심미적 감수성이다. 심미적 감수성은 원초적인 것이며 상황적인 것이며 포섭적인 것이며 유동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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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毛 詩 ≫

◈ 底本 : ≪毛詩正義≫(阮元校刻, ≪十三經注疏≫本)

<國風>


<周南·關雎>

○ 關雎, 后妃之德也. 風之始也, 所以風天下而正夫婦也. 故用之鄕人焉, 用之邦國焉. 風, 風也敎也, 風人之, 敎以化之.


詩者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情動於中而形於言, 言之不足,

故嗟歎之, 嗟歎之不足,

故永歌之, 永歌之不足,

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也.


시라는 것은 마음 속의 뜻이요 이를 말하면 시가 된다.

감정이 속에서 움직여서 말로 나타나고 ,

말로 해도 부족하여 차탄하니(탄성이 나오고 이내 모자라고 아쉬어)

차탄해도 부족하여 노래로 읊고

노래로 읊어도 부족하여

자기도 모르게 손짓 발짓으로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주희의 <시집전>의 서에는....

人性而靜 天地性也....感於物而動 性之欲也

사람이 태어나면서 조용함은 천성이요,
사물에 촉발되어 감동함은 천성의 욕구이다.

夫旣有欲矣, 則不能無思
旣有思矣 則不能無言
旣有言矣  則言之所不能盡 ..
而發於차嗟영嘆之餘者

욕구가 있으면 생각이 없을 수 없고
생각이 있으면 말이 없을 수 없고
말이 있으면 말로는 다할 수 없어
차탄하고 영탄하고도 남는 것은

必有自然之音響節奏 而不能已言
此詩之所以作也
반드시 자연음향절주 (자연의 소리에 반향되어 어울어져 울리고 절도에 맞아 연주한다)가 있어
끝이 없게 마련인데,
이것이 시를 짓게 되는 까닭이다.









情發於聲, 聲成文, 謂之音. 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 故正得失動天地感鬼神, 莫近於詩. 先王, 以是經夫婦, 成孝敬, 厚人倫, 美敎化, 移風俗. 故詩有六義焉, 一曰風, 二曰賦, 三曰比, 四曰興, 五曰雅, 六曰頌. 上以風化下, 下以風刺上, 主文而譎諫, 言之者無罪, 聞之者足以戒. 故曰風. 至于王道衰, 禮義廢政敎失, 國異政, 家殊俗, 而變風變雅作矣. 國史明乎得失之迹, 傷人倫之廢, 哀刑政之苛, 吟詠情性, 以風其上. 達於事變而懷其舊俗者也. 故變風, 發乎情, 止乎禮義, 發乎情, 民之性也, 止乎禮義, 先王之澤也. 是以, 一國之事繫一人之本, 謂之風, 言天下之事, 形四方之風, 謂之雅. 雅者, 正也, 言王政之所由廢興也. 政有小大, 故有小雅焉, 有大雅焉. 頌者, 美盛德之形容, 以其成功告於神明者也. 是謂四始, 詩之至也. 然則關雎麟趾之化, 王者之風, 故繫之周公, 南, 言化自北而南也. 鵲巢騶虞之德, 諸侯之風也, 先王之所以敎. 故繫之召公. 周南召南, 正始之道, 王化之基. 是以, 關雎, 樂得淑女以配君子, 愛在進賢, 不淫其色, 哀窈窕, 思賢才, 而無傷善之心焉, 是關雎之義也.






『시경』 최고最古의 판본인 『모시毛詩』는 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란 뜻이 향하여 가는 바이다. 마음에 있어 뜻이 되어 말로 발하면 시가 된다. 정情이 안에서 움직여 말로 형용하게 되는데 말로써도 충분하지 못하므로 탄성을 내게 되며, 탄성을 내어도 충분하지 못하므로 차탄한다. 차탄하여도 부족하므로 길게 노래한다. 길게 노래하여도 부족하면 부지중에 손으로 춤추고 발장단을 밟게 된다.'

또한 주희朱熹는 그의 『시집전詩集傳』서에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조용함은 천성이요 사물에 감동함은 천성의 욕구이다. 이미 욕구가 있으니 생각이 있고 생각이 있으니, 말이 있고 말이 있으나 곧 말로 다할 수은 없어 차탄嗟歎하고 영탄詠嘆하며 남은 것은 반드시 자연의 음향절주音響節奏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시를 짓게 되는 까닭이다.' 라고 했다.


『모시』와 『시집전』의 생각을 요약하면 시가詩歌는 사람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외부로 표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경』의 「위풍」에서는 '마음에 시름하니 내가 노래하고 또 흥얼거린다'고 하였다. (園有桃)

아마도 이러한 시의 시작은 인간이 제일 처음 외계外界를 인식하고 내뱉은 탄성일 것이다. 처음으로 하늘과 땅, 해와 달을 인식한 인간은 놀라움과 기쁨 두려움등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아직 언어가 아닌 탄성을 질렀을 것인데 그것이 바로 시와 노래의 시작인 것이다. 사물에 대한 평소와는 다른 감정의 표현! 이것이 바로 시의 시작이다. 어느 문화에서나 문학발생과정에서 운문은 산문에 앞서 생겨난다. 즉 짐승이 인간이 된 처음 내밷은 말이 곧 시이고 또한 언어의 시작이다. 즉 인간의 언어와 고유한 감정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시인 것이다.  



시경 詩經 (병)Shi Jing (웨)Shih Ching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 고대 성인 공자가 편집했다고 하는데 그는 이를 문학적 표현의 정형이라 일컬었다. 많은 주제를 포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재가 줄곧 "즐겁되 음탕하지 않고 슬프되 상심하지 않기"(樂而不淫 哀而不傷) 때문이다. 주(周)나라 초기(BC 11세기)부터 춘추시대 중기(BC 6세기)까지의 시가 305편을 모았다. 크게 풍(風)·아(雅)·송(頌)으로 분류되며 모두 노래로 부를 수 있다. 풍은 민간에서 채집한 노래로 모두 160여편이다. 여러 나라의 노래가 수집되어 있다고 하여 국풍(國風)이라고도 하는데, 주남(周南)·소남(召南)·패(패)·용(용)·위(衛)·왕(王)·정(鄭)·제(齊)·위(魏)·당(唐)·진(秦)·진(陳)·회(檜)·조(曹)·빈(빈)의 15개국 노래로 분류된다. 대부분이 서정시로서 남녀간의 사랑이 내용의 주류를 이룬다. 아는 소아(小雅) 74편과 대아(大雅)31편으로 구성되며 궁중에서 쓰이던 작품이 대부분이다. 형식적·교훈적으로 서사적인 작품들도 있다. 송은 주송(周頌) 31편, 노송(魯頌) 4편, 상송(商頌) 5편으로 구성되는데, 신과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악곡을 모은 것이다. 주송은 대체로 주나라 초기, 즉 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소왕(昭王) 때의 작품으로 보인다. 노송은 노나라 희공(僖公)때의 시이다. 상송은 『시경』중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여겨져 왔으나, 청대 위원(魏源)이 후대의 작품이라는 증거를 제시했다. 『시경』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여 통치자의 전쟁·사냥, 귀족계층의 부패상, 백성들의 애정·일상생활 등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4언(四言)을 위주로 하며 부(賦)·비(比)·흥(興)의 표현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부는 자세한 묘사, 비는 비유, 흥은 사물을 빌려 전체 시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수법은 후대 시인들이 계승하여 몇 천년 동안 전통적인 예술적 기교로 자리잡았다. 대대로 『시경』에 대한 연구는 활발했으며 한대에 유가경전에 편입되었다. 판본으로는 『노시(魯詩)』·『제시(齊詩)』·『한시(韓詩)』·『모시(毛詩)』가 시경 해석과 연구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중 현존하는 판본은 모장(毛장)의 『모시』인데, 정현(鄭玄:127-200)의 전(箋)과 공영달(孔潁達:574-648)의 소(疏)가 포함되어 있다. 남송 때 주희(朱熹)가 쓴 『시집전(詩集傳)』은 영향력이 큰 주석본이다. 청대의 『시경』에 대한 연구는 후대 학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브리태니커세계백과사전에서)




시의 원형은 마음속에 있는 뜻이 사(글),조(노래), 용(춤)으로 드러나 한데 어우러져 혼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징경이 우네<關雎>


어여쁜 처녀를 잠 못 이루며 짝사랑하다 드디어는 그 사내는 그리던 여인과 짝이 되어 가얏고거문고 합주가 되고 즐겁고 신나고 정겹게 노닌다는... 상상 혹은 꿈 ..아니..진실을 노래한... 화생하는 봄에 피어오르는 나물을 캐는 아리다운 처녀를 사모하는 사내의 연정과 애욕의 서정^^*을 노래한 참으로 오래된 가요인 셈이다.(악보가 없어서 아쉽지만...)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參差荇菜, 左右芼之. 窈窕淑女, 鍾鼓樂之.

구-욱 구-욱 징경이 (섬가에 사는 새-사내/君)
강가의 섬에서 우네(강가에 연모하는 그녀를 기다리며 속삭이네)
아리따운 아가씨(아름다운 여인이여)
사내의 좋은 짝이네(당신은 사랑스런 나의 님이라네)

올망졸망 조아기풀
이리저리 찾고
아리따운 아가씨
자나깨나 그리네
그리워도 만나지 못해
자나깨나 그녀 생각
아아, 끝없는 그리움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올망졸망 조아기풀
이리저리 캐고
아리따운 아가씨
금슬을 타며 벗하니
올망졸망 조아기풀
이리저리 고르고
아리따운 아가씨
종치고 북치며 즐기네














ㅇ 풍은 각 지방의 서민들의 노래(가요) 로 음악적 요소가 강하며 서정적이고 남여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ㅇ아는 연회나 향연 또는 모임(조정이나 관청의 행사)때 쓰인 나라의 악가인데, 정제된 문식의 언어적 요소가 강하고 계몽과 군주의 덕이나 공덕을 노래한 서사적인 형태가 두드러진다.

ㅇ 송은 종묘에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한 송가이다.이 송은 동작의 요소가 두드러져 극시의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기법으로는

*<賦>는 직접 감정을 토로하거나 이야기를 서술하는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표현방법이다.
*<比>는 비유법을 말한다.
*<興>은 먼저 다른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本題를 끄집어내는 방법이다.
흥은 감탄이나 찬탄이나 도입어구로... 주제의 서술에 앞서 흥을 돋우는 기법인데.
주희에 의하면 흥이란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여 읊으려는 말을 끌어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시를  편집한 최초의 판본인 모씨 즉 모공에 대한 기록(조나라 사람인지 노나라사람인지)이 이설이 분분해서 명확치 않다. 물론 한서 예문지에 <모시>와 <모시고훈전 >이 기록되어있는데, 이를 <모공소전>이라 했는데 이 중 <모시고훈전>이 우리가 보고있는 <시경>이다.

이 시경은 3천년경이나 2500년경... 주나라 건국 초기부터 동주중엽에 이르는 약 오백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시경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주나라거 은나라를 정벌하는 사실이 많은 시기(기원전 천백이십삼년전)의 주송으로 보여지고 가장 늦은 작품은 국풍중에 서주말엽(기원전 850년 전후부터 춘추 말엽인 공자가 태어날 무렵인 기원전 552년경) 에 이른다.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편에서는 옛부터 삼천여편이 있었는데 공자에 이르러 중복된 것을 버리고 예의에 맞추어 쓸만한 것을 택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공자가 예날부터 수집해오던 삼쳔여편의 시를 선별했다는 공자의 산시설은 여전히 논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 많은 시를 공자가 (모시... 시경에는 대략 삼백여편이 남아있다) 그삼천여 편 시에서 취한 것보다 버린것이 구할일진데.... 나아가 설사 공자가 산시했다고 해도 사마천의 말대로 예의에 맞추어 쓸만한 것을 택했다 한다면 정풍이나 위풍에 수록된 소위 연애시나 가요등...취사에 곤란이 있었을 것이고 한편으로 어떤 시들은 예의나 도덕에 벗어나지 않는 데 제외시킨 것등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구..... 여러 논란이 있다.


물론 공자가 시 삼백편이라 말한 것이 <논어>에 여러번 등장하고 <순자>나<묵자><장자>에도 이 말이 자연스레 사용되었고

결국 공자가 전적으로 그 많은  시들을 산시(선별하고)하고 산수(가다듬었다)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현재의 시경에 수록된 시들 중 많은 부분은 공자의 손길이 닿은 것으로 보여진다.


<논어> 자한편에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후에야
음악이 바로잡혔고 아와 송이 각기 제 자리를 얻었다" 고 한 것으로 보아 공자가 지금의 시경의 체계를 잡았다고 여겨진다.

노나라에서 주로 활동했던 공자는 <예기> 단궁편에서 자신은 (실은) 은나라 사람이다고 말했던 사실로 보아 노라라의 시인 노송과 은나라의 후예인 송나라 시인 상송을 송에 편입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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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과 초사>




시경은
황하유역을 중심 으로 한 북방지 주로 漢族(한족)평민의 작자명이 밝혀지지 않은 작품이 많다.
일반평민,귀족등 각계각층

초사는
양자강 중부를 중심으로 한 남방지역에서 戰國시대의 산물로 한족이 아닌 荊蠻(형만) 귀족시인의 작자명이 적혀진 작품이 많다. 屈原(굴원),宋玉(송옥),景差(경차)등


유 래

시경은 五經가운데 하나로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詩集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詩를 정치자료로 삼았기 때문에 시를 중요시 했고, 民情을 알기위해서 시를 수집하였다.
이를 음률에 맞춰 노래하게 했는데 3000여 편 이던 古詩를 孔子가 선정해 305편으로 편집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詩經이다. 서주 초기(기원 전 11세기)로부터 춘추 중엽(기원 전 6세기)에 이르는 약 500년간에 걸쳐 창작된 시가 305편(제목만 있고 가사가 없는 생시-笙時-6편을 합치면 모두 311편)이 『시경』에 수록되어 있다.
*시경에는 2500~3000여 년 전의 황하,장강,한수 유역이 망라된 광범위한 지역에서 창작된 시가들이 수록되었다.



초사는 戰國時代(B.C 4C후반~B.C 3C)송나라 黃伯思(황백사)가 그의 翼騷序(익소서)에서 굴원과 송옥의 여려 소는 모두 초국의 말을 썼고 초나라 곡조를 내었으며 초나라 땅을 기록했고 초나라 물건 이름을 붙였으므로 초사라고 추정되지만 『초사』는 『시경』이 나온 이후 '굴원'을 대표로 한 전국 시기 초나라 사람들에 의하여 창작된 새로운 시체(詩體)이다. 사실 『초사』란 말이 언제부터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사기』의『혹리열전(酷吏列傳)』의 장탕(張湯)전에 『초사』란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한조 초기에는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시경은 4언위주의 短詩에 短句疊字(단구첩자),
音調重疊(음조중첩), 反覆詠嘆(반복영탄)이 많다.
곡조에 따라 크게 風(풍),雅(아),頌(송)으로 나뉜다.

초사는 6언위주의 長時에 長句騈語(장구병어)가 많고
음조중첩이 거의 없으며 직접적인 진술이 많다. 屈原의 대표적 작품인 離騷,九歌,
天問,九章등의 작품과 宋玉의 九辯(구변) 이외에 송옥의 자작이 아니라는 다수의 작품이 있다.



風은각지역의 평민민요로서 당시 현실생활과 정감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雅는 小雅,大雅로 구분되며 궁중의 음악으로 세련된 맛이 있고, 토의와 정치에 기울어진 면이 강하다. 귀족들의 풍유시와 오랜 옛날의 민족사시가 대부분이다.
頌은 제사와 잔치에 쓰이던 시로써 조상의 공덕을 노래하고 神에게 풍년 및 감사를 기원하는내용이다. 즉 실제 생활을 중심으로 한 평민적인 내용이 많다.


구속없이 자유스럽게 표현된 낭만적인 문학이다. 구속없이 신화,전설을 중심으로 玄虛 (현허)한일에 관해 귀족적이고 적극,열렬한 내용이 많다.



중국의 시가와 문학은 시경에서 비롯해 발전되었다. 유가에서는 다른 어떤 경전들 보다도
시경을 중시 하였으며 민중을 교화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여 윤리도덕의 지침서로 삼고 정치교본으로 삼았다. 또한 시경은 중국뿐만 아니라 동양사가의 기원을 이룩했다고 할수 있으며 동양의 문학 또는 문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시경』의 형식은 우선 그 자수(字數)로 보아서 3·4·5·6·7언(言)까지 있어서 각종 시체(詩體)를 모두 구비하고 있고 또 각종 작법(作法)을 모두 채용하고 있으므로 한마디로 그 형식을 규정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말해서 『시경』305편의 형식은 사언시(四言詩)가 그 기준이 되어 있고, 그밖의 것은 곧 예외라고 쳐서 『시경』을 사언시라고 말하는 것이 그런대로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시경』이 거의 4언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마 당시의 주 민족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부르기에 4언이 가장 적합하였는지도 모르겠다.**시경은 음악적 성질에 따라 풍, 아, 송으로 나뉘고 서술방법에 따라 부, 비, 흥으로 나뉜다.*<風>은 15개 국에서 수집해온 지방음악을 말한다.*<雅>는 주 왕조가 집접 통치하는 지역의 음악으로 正聲이란 뜻을 내포하며 大雅와 小雅로 나뉜다.雅시중에서 민요는 몇 수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다 귀족 문인들의 작품이다.*<頌>은 宗廟 제사에 쓰이는 무용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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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風은 교화 또는 풍자의 뜻으로 주남으로부터 빈풍에 이르기까지의 열다섯 나라의 민풍, 민정을 노래한 것으로 이것을 국풍이라 한다. 여기에 정풍이라 함은 시인이 거룩한 임금 및 어진이의 덕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백성으로 하여금 널리 노래부르게 하여 그들을 교화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곧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풍화하는 것이요 변풍이라 함은 윗사람의 부정, 음행을 풍자하는 것으로 군왕이 부정이 있을 때는 시인이 시를 지어 사람마다 읊게 하여 이 소리를 군왕이 듣고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불러 일으켜 그 잘못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니 곧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풍자하는 시이다.

아雅는 바르다正는 뜻으로 조정에서 조회, 향연의 예를 행할 때 사용하던 정악이다. 정사에 대소사 있으므로 소아 대아라 하고, 또 정사에는 정, 부정이 있으므로 정소아, 변소아, 정대아, 변대아라 하여, 정소아는 주로 주나라 왕이 제후들을 빈객으로 하여 향연을 베풀 때의 악가요, 정대아는 제후가 천자께 조회할 때, 또는 제사지낼 때 노래한 것으로, 군신 사이의 정을 두터이 하고, 주나라의 선조로부터 문왕, 무왕에 이르기까지의 역대의 덕을 높이 찬양하여 항상 공경을 다하고, 내 몸에 덕을 잃지 않도록 서로 경계하여 읊은 노래이다. 변소아, 변대아는 당시의 임금 및 위정자들의 부정을 들어 풍자하기도 하며, 혹은 백성들의 가난한 생활을 탄식하여 부른 노래로 정악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나, 연석에서 음율에 맞추어 노래불러 여러 가지 사정을 알려서 널리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송頌은 천자가 종묘에 제사지낼 때 쓰인 악가로서 역대 조상의 위대한 덕업을 형용하여 찬미한 노래로 이것을 신명에게 고하는 것이다.




초서는 시경에 비해 구법이나 표현에서 발전된 형태를 보이며,4언체의 격식을 뛰어넘어
구어체 언어의 詩化(시화)에 성공함으로써 개성있고 복잡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시가 형태가 되었다. 초서의 형식 특성은 후대 賦(부)문학의 모대가 되었으며,
낭만주의적 내용 특성은 당.송의 낭만 시풍에 큰 영향을 주었다.

『초사』의 형식은 대체로 6언(言)이 많은데, 6언은 3언(三言은 춤의 리듬을 반영한 것이다)을 거듭한 것이며 이 6언을 또 거듭하여 1련(聯)으로 삼아 장구(長句)와 연어(聯語)로써 이어 나간다. 그러나, 왕왕히 참차(參差)되어 고르지 못한 곳도 많으며 또 6언의 예(例)를 벗어나서 5언이나 칠언(七言)이 간간이 있기도 하므로 역시 초사의 형식도 한 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하겟다. 그런데, 한 연의 중간에 혜(兮)자를 두는 것은 초사 형식의 특색이라고 하겠다.
『초사』는 『시경』에 비하여 그 조구면(造句面)에 있어서 훨씬 자유롭다.** 초사의 대표적 작품인 이소(離騷)는 굴원이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회왕(懷王)에게 추방당한 뒤에 자신의 깊은 시름과 우국의 정을 노래한 작품이다.<이소>가 지닌 그 풍부한 상상과 아름다운 문채는 시경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중국문학사상 열어 놓은 것이라 평가받는다.** <구가>는 옛 남방 민가의 색채를 가장 순수하게 지닌 작품으로 특히 아름다운 연가(戀歌)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많으며 전체적인 문장이 아름다우면서도 생기가 발랄하다.


초사는 특정한 체계가 없이 초나라 지방에서 유행하던 사辭 형식의 노래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 중에는 굴원처럼 초인楚人의 것도 있고 후대의 유향이나 왕일의 작품도 있다. 초사에는 모두 17편의 노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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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3차 분담 [5]
月下獨酌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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