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터

2024. 05. 17.

모퉁이 돌...

글쓴이: 서진희 날짜: 2007.11.19. 11:08:41 조회: 439 글쓴이IP: 125.142.134.171

/모퉁이 돌/

저는요
매섭던 바람과 함께 펑펑 쏟아져 내린
눈보라 속에 서 있을 때에도
몰랐어요.

그저 이 시기가 지나면
옆에서 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산새들이 새 봄을 노래하는
지저귐들만 있을 줄 알았어요.

따뜻한 봄기운에
나른해진 내 몸이 어느 순간
덜컥 떨어져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요

날카롭게
떨어져 나온 나를
살그머니
하나 둘씩 밟고 지나가는 발걸음이
그저 아프기만 했다니까요

날 밟는 그 발길에
어느 날에는
톡톡히 되돌려 주기도 했다니까요
제 날카로운 모서리에 다친 이도 많을 걸요

하얀 백발을 하신 분이
토닥토닥 날 건드려보시고
흔들리고 있나 확인하시고
세 개의 발걸음으로
날 다시 살그머니 밟고 갈 때에도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니까요

젊은 날
아름다던 모습 한 켠에 숨겨두고
쪼글쪼글 거친 손으로
오이 깎아 한 짐 가득히 들고 올라가시는
그 할머니의 발밑에 있을 때에도
아직 몰랐다니까요

혹여 넘어질까
손을 떼지 못하던 아이가
지 힘으로 걷겠다고, 산정상 올라 보겠다고
성큼 제 몸을 밟는 순간
또 흔들하지 뭐에요

제 몸 위로 아이가
넘어졌을 때
그때서야 마음이 덜컥했어요

앗, 내 모서리

다행이지 뭐에요
이 사람 저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서
많이 둥글어져 날카로움이 좀 없어졌나봐요

넘어진 김에
내 모서리 귀퉁이에 앉아 쉬고 싶다고 하잖아요.

내 귀퉁이에 쉬어 가고 싶다는 이도 생기다니
참 신기하죠?
하지만 내 마음속에 갈고 있던 것들이
아이한테 보일까봐 걱정이 되요

나중에 지팡이 든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그땐 미안하다 해야겠어요.

아,
혹여 오이팔던 할머니가
다시금 지나게 되시다가
제 몸 위에 잠시 앉아
삶의 무게에 지치신 몸을 잠시 쉬시면서
옛 추억의 꽃잎을 하나씩 또옥똑
따시는 날

그 때에는
제 몸 위에도
햇살 한 줌이 반짝 했으면 좋겠어요.

(어제 관악산을 오르면서 잠시 생각했던 것들을 옮겨 본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