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터

2024. 05. 06.

그저 쳐다보기만 했어요...

글쓴이: 서진희 날짜: 2007.11.24. 01:13:38 조회: 443 글쓴이IP: 125.142.134.93

/그저 쳐다보기만 했어요.../

당신을 본 것은
차가운 겨울
아직 사람들 왕래가 많지 않던 이른 시간
시장입구 육교 밑이였어요.

얼핏 보아도
상품가치 없어져 전날 상인들이 내다버린
농산물시장 야채더미들 속에서
살을 에는 찬 새벽
누가 볼세라 주섬주섬 골라낸 듯
겉이 시든 대파를
조심스럽게 한꺼풀 한꺼풀 벗긴
속 노란 대파들을
가지런히 늘어놓고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눈을 쳐다보고 계셨지요.

비닐로 둘둘 싼 스치로풀이
당신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상태로
이리저리 고무줄로 엮고 또 엮은
그 위에 당신은 찬 바람 속 저린 가슴 싸매고 앉아 계셨어요.

줄이 쩍쩍 가 있는 굽은 손톱 사이사이엔
시꺼멓게 삶의 때들이 깊숙이 박여 있고,
거친 손등 울퉁불퉁 솟아난 검은색 핏줄기는
고단했던 당신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고 남음이였는데도
전 당신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있었지요.

자녀분들은 없으세요?

있지, 왜 없어.

함께 살지 않으세요?

다들 지들 살기 바쁜데...뭐.

거리정화를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트럭에 마구잡이로
리어카에 실린 물건들을 집어
트럭에 던질 때에
당신은 황급히 주섬주섬 다 해어진 보자기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싸셨지요.

전 돌아서는 당신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어요...

당신이 돌아가 다리를 뻗고
앉아 쉴 공간은
따뜻한 온기라도 있으신가요...

전 돌아서는 당신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