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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날입니다.
그래도 하늘은 참 맑은 날입니다.
푸른뜰선생님이 나현이를 만난 것은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어울려 놀고 있는 놀이터 바로 옆입니다.
일터로 가기 위해 걷고 있던 참에
나현이는 조그마한 몸집에 제 몸만큼이나 큰 배낭을 등에 메고, 손에는 피아노 가방을 든 채
길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를 힐끔힐끔 곁눈으로 쳐다보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현이, 안녕!!"
"전 나현이가 아닌데요? 절 아세요?"
나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도 들지 않은 채, 땅 바닥을 보며 대답했습니다. 나현이가 나현이가 아니란 대답에 선생님이 잠시 주춤합니다.
나현이는 오늘도 시인이 되어 있는 중인가 봅니다.
"당연히 바람 냄새도 알아채는 나현이 시인이지."
바람 냄새도 알아챈다는 말에 나현이 눈빛이 살짝 빛을 냅니다.
"선생님도 바람냄새 맡아봤어요?"
"그럼~ 가을 바람 냄새는 낙엽이 아프게 떨어지니 병원냄새가 나기도 하고, 겨울 바람 냄새는 하얀 눈과 섞일 땐 눈꽃에서 나는 맑은 냄새가 나지."
"아, 그렇구나, 그런데 선생님 지금 어디 가세요?"
"지금 푸른뜰에 가는 길~ 나현이는?"
"전 지금 영어학원 갔다가, 푸른뜰에 갔다가 피아노에 갈 거에요. 있다가 갈게요~"
나현이가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곳은 푸른뜰로 가는 건물 입구 여러 개 중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쪽문입니다.
푸른뜰선생님은 습관처럼 항상 다니는 문을 통해 들어갔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현이를 다시 만납니다.
"선생님은 항상 그 문으로 들어가요?"
"음, 그런 편이지. 나현이는?"
"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문으로 가요."
나현이를 처음 만난 것은 두어 달전 나현이 어머니와 함께 상담을 오셨을 때였습니다.
나현이는 내내 불안한 눈빛으로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있었습니다.
십만 넘어가는 숫자들이 합이 나오면 손가락이 부족해서 답을 다 틀리게 쓴다고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나현이 어머니를 특별히 상담하시면서 수학공부를 더 시키라 하셨다며 이미 수학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또 다시 푸른뜰에 온 나현이였습니다.
'선생님, 나현이가 욕을 했어요. 선생님이 안 볼때마다 우리한테 욕 한단 말에요."
나현이가 저보다 학년 많은 언니들한테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서 지들끼리 통하는 손가락 욕을 한다고 아이들의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나현이가 아직 사회성이 많이 부족해서 너희들과 친하고 지내고 싶은데 아무도 친구를 안해주니까 그렇게 표현하는 거야. 너희들이 지금 조금만 참고 함께 쉬는 시간에 놀아줘 봐...나현이가 외로워서 그래"
"선생님, 나현이 머리에 이 있어요, 하얀 서캐가 얼마나 많다구요."
그럴 때면 아이들 보는 앞에서 나현이 머리를 보면서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 당겨서 머리끝에서 하얀 피부가 딸려 나오는 것이라고 말을 해 주어도 아이들이 믿지 않아서 선생님은 나현이 머리와 함께 머리를 몇 번이고 비벼대곤 했었습니다.
"선생님, 지난 번에 그만 둔 누구 누구가 왜 그만 둘 줄 아세요? 학교에서 그러는데 나현이 그 쬐그만게 자꾸 욕을 해서 화가 나서 그만 둔거래요. 나도 이번에 엄마한테 그만 둔다고 말했어요."
안그래도 푸른뜰선생님은 요즘 자기 공부한다, 뭐한다면서 학생들 모집에 신경을 도통 쓰질 않아서 넓었던 학원을 작년에 줄이더니 이번에 또 줄인 참인데 나현이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은 선생님도 신경이 쓰입니다.
"야, 이녀석아, 나현이가 지금 어딜 가도 다 그렇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데 푸른뜰에선 절대 포기 못해. 나현이가 얼마나 감성이 풍부한 아이인 줄 너희가 아직 몰라서 그래. 걘 어울리고 싶어도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서 지금 그렇게 표현하는 것 뿐이라니까. 이제 친구들이 생기면 나현이가 달라진 모습을 보일거야"
선생님의 주문에 아이들이 나현이와 친하게 지내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나현이를 불러서 함께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적어도 푸른뜰에서는 아이들이 나현이를 돌려세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푸른뜰선생님이 진짜 화가 많이 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교실 밖 상담실에서 많이 부진한 학생을 따로 불러 지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살그머니 귓속으로 파고 든 것입니다.
"나현이한테 일어섰다 앉았다 10번 시켜!"
안그래도 며칠 전 나현이 어머니가 나현이가 언니들이 자길 괴롭힌다고 했다는 소릴 듣고는 절대 그럴리 없을 거라
상담을 한 참이였는데 녀석들이 선생님 안보는 곳에서 나현이를 은근히 괴롭히고 있었나봅니다.
(계속)
선생님은 먼저 그렇게 말한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을 불러 일으켜 세웁니다.
"다시 한번 말해봐.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면 나현이한테 앉았다 일어섰다 10번을 시키라고? 누구한테 지금 시킨 거야?"
평상시에 목소리가 아닌 아주 화가 잔뜩 난 선생님의 목소리에 이미 겁에 질린 녀석은 우물쭈물 대답을 못합니다.
옆에 있던 4학년 규민이가 대답을 합니다.
" 저한테 오빠가 시켰어요, 그런데 우리만 나현이한테 그런 게 아니에요"
녀석들은 많이 혼날 것에 겁이 질린 채 다른 아이들까지 함께 물고 가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이 나현이는 아직 사회성이 부족해서 자기 표현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했지. 그런데 선생님 앞에서는 같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하고 없을 때 저렇게 약한 아이한테 그런 짓을 했다고? 이거 얼마나 비겁한 행동인 줄 알아 몰라?."
시킨 녀석이 벌벌 떨면서 말합니다.
"채연이는 쉬는 시간에 복도 계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현이한테 그런 거 많이 시켰어요.그리고 성적표도 자기네 반으로 가지고 오라고 시켰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의 화가 더 납니다.
"뭐? 넌 오빠가 되어서 동생들이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걸 보고도 그냥 있었단 말이지?"
녀석은 순간 괜히 말을 했구나싶은 얼굴로 더욱 안절부절 못합니다.
선생님은 매를 찾기 시작합니다.
"넌 동생들이 잘못하는 걸 보고도 모른 척 했고, 게다가 동생들이 하는 나쁜 행동을 그대로 동생한테 시켰으니 더욱 비겁하고 나쁜 행동을 했어. 선생님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엉덩이 대!!"
따악 따악 따악
선생님의 매가 매섭게 엉덩이를 내리칩니다.
맞을 때마다 녀석은 엉덩이를 내렸다 돌렸다하며 울면서 고함을 치지만 선생님은 매질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매섭게 10대나 맞은 녀석이 자기만 맞은 것이 억울한 듯 더욱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맞은 것이 억울한 거야? 당장 그치지 않으면 더 맞을 줄 알아!!"
서릿발같은 선생님의 목소리에 끄억끄억 속으로 울음을 참느라 녀석이 목을 앞으로 계속 끄덕입니다.
선생님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전화기를 집어듭니다.
"따르릉 따르릉" 수화기 저쪽에서 빨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선생님은 다시 계단에서 시킨 녀석들 중 다른 녀석에게 전화를 겁니다.
"딩동딩동 딩동 딩동댕~~~댕댕댕댕~~" 경쾌한 엘리제를 위하여가 몇 번 들리자 도서관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녀석이 대답합니다.
"샘~ 무슨 일이세요?"
최대한 목소리를 곱게 가라앉힌 선생님이 말합니다.
"어, 급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빨리 학원으로 와라~~그리고, 소정이와 효선이에게도 연락해서 빨리 와~~"
아직 맞은 엉덩이가 아픈지 손으로 계속 문질려대는 소리만 들린 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시간들이 이어집니다. 화를 식히고 있던 선생님이 말합니다.
" 또 다른 일은 뭐가 있었니? 자세히 말해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다른 녀석도 자기가 본 모습을 이젠 서슴없이 말합니다.
"전에는요~ 계단에서요, 우리를 밖으로 나가있게 하고 들어가면 나현이가 고개를 계속 숙이면서 우리한테 인사를 하게 했구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녀석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눈에 다 들어옵니다.
화를 좀 식히던 선생님은 조금 있으면 올 아이들 생각을 하며 후회를 하기 시작합니다.
'다 매로 다스릴 수 없는 걸... 화를 삭히지 않고 또 먼저 손을 댔구나...난 왜 늘 이렇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한 구석에서 고개를 숙였다 다시 힐끔 들었다 주위 아이들 눈치를 보는 나현이를 선생님이 쳐다봅니다.
'나현아, 두려워 말고 고개를 들렴...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란다..여기서 네가 이젠 스스로 일어나야해'
한번도 수업시간 외에 전화를 해서 불러본 적이 없던 터라 의아한 얼굴로 아이들이 들어옵니다.
"샘, 무슨 일이세요? 우리 왜 부르셨어요?"
이미 들어오자마자 한 쪽에선 아직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는 오빠, 이젠 큰일났다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 표정을 읽은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아주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선생님이 말합니다.
"너희들이 나현이한테 했던 행동들 말해봐"
예상치 못한 말이였는지 아이들은 설레발을 칩니다.
"그냥 공기놀이 하고 잘 놀았는데요?"
"저기 상우는 나현이한테 한 나쁜 행동때문에 이미 선생님한테 많이 맞은 상태다. 다시 한번 묻는데 지금 이 순간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아, 그리고 선생님은 이미 다 알고 있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말에 안절부절 자기들이 어떻게 했는지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에 선생님 앞에서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내어 공기놀이를 함께 하던 모습과는 다른 말들을 늘어내어놓습니다. 잘못했다고 두 손을 앞에 모우고 앞으론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미리 녀석들은 말합니다.
선생님은 그 말들을 다 듣고나서 말합니다.
"너희들이 지금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또 다시 저 매를 들어 오빠가 맞은 것처럼 너희들을 때려주려고 했는데, 솔직하게 말했고, 스스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럼 지켜볼 거야.선생님은 오늘 화가 아주 많이 났어. 너희들이 이 작은 곳에서도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공간들 속에서도 나쁜 행동을 할 수가 있게 돼...앞으로 자신을 속이는 행동을 하나 지켜볼거야..그리고 잊지마, 선생님은 귀신이라는 거."
자기들이 맞지 않게 된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며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후 맞은 녀석이 잔뜩 억울한 듯 말합니다.
"왜 쟤네들은 계속 복도계단에서 나현이를 괴롭혔는데 때리지 않고 나만 때려요?"
"네가 맞은 건 선생님이 네가 나쁜 행동하는 걸 눈으로 확인한 상태였잖아, 선생님은 다른 사람 말 듣고 직접 눈으로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선 안 때려. 그리고 걔네들은 이제 잘못했다고 스스로 말을 했잖아, 넌 너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돼. 다른 사람까지 맞는 걸 봐야 좋겠어? 아직 덜 맞았나본데? 다른 사람도 맞길 원하는 거보니..."
선생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이 말합니다.
"아니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나현이와 선생님만 남습니다. 창문밖을 보니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흰 눈이 내리는 창가로 다가가 눈 오는 모습을 보며
나현이가 묻습니다.
"선생님, 진짜 귀신이에요? 진짜 나쁜 행동하는 거 다 알 수 있어요?"
"그러엄...다 알 수 있어. 나현이 마음도 선생님 알고 있잖아..그렇지 않아?"
"네~~"
"엇! 나현아, 눈발이 바람에 날려서 위로 막 날아가"
바람에 눈발들은 사방으로 요동을 치며 흩날립니다. 위로 솟구쳐 날았다 다시 옆으로 갔다 또 다시 밑으로 내립니다.
"나현아, 저 바람에 날리는 눈발처럼 앞으로 살다보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을 맞을 거야...그래도 나현이가 이제 스스로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해. 그리고 이젠 스스로 널 표현할 줄 알아야 해..아이들이 시켜도 네가 하기 싫다고 말해야 해..알았지?"
그날 밤 컴컴한 어둠속에서 선생님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아이야, 걸어나오렴/
아이야,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속에서 홀로 울지 마렴.
깜깜한 어둠속에서
온 몸을 감싸는 추위를 참지 말고 걸어 나오렴.
네가 스스로 걸어나오는 순간
하늘에 여여히 떠 있는 태양이 널 맞이할 것이니,
그 햇살이 너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안을 것이니.
아이야,
어둠 속에서 홀로 외로워하지 마렴.
그 안에서 스스로 걸어나오렴.
네가 빛으로 나오는 그 순간
너를 숨어 지켜보는 그를
만날 수 있을 터이니..
네 속에 숨어 있는 그를 만나게
그 안에서 네가 걸어나오렴.
아이야,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울지 말고 걸어나오렴.
홀로 외로워 말고 걸어나오렴.
그저 작은 빛이라도 늘
너와 함께 하는 그를 만날 수 있으려니...
그 안에서 네가
뚜벅뚜벅 걸어나오렴.
다음 날 선생님이 나현이에게 그걸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널 위해 썼어...이젠 어둠 속에서 혼자 울지 마~~그리고 빛으로 네가 뚜벅뚜벅 걸어나와야 해."
나현이가 정말 선생님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날 이후 아이들은 눈에 띄게 나현이한테 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 모습이 진짜 마음일까 가끔 생각도 해보지만 아이들을 믿기로 합니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바로 나현이입니다. 나현이가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같은 학년 승헌이는 수학을 아주 잘하고, 잘 생긴 남자아이입니다.
나현이가 승헌이 옆에 살그머니 앉아서 뭔가 쪽지를 줍니다.
승헌이가 보고서 휙 던져버립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그걸 주워 선생님께 가져옵니다.
"승헌야, 사랑해~우리 커플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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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나현이.
교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