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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8.

호모 루덴스, 그리고 人間

글쓴이: 장양우 날짜: 2002.10.05. 01:15:41 조회: 663 글쓴이IP: 218.55.247.170

인천광역시 부평구에서는 9월 30일부터 10월 6일까지 <부평풍물대축제>를 하고있다. 평소 문화행사에 가보지도 못하던 차에 이번에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한 광역시, 그것도 한 구(區)에서 주관하는 행사치고는 규모가 커서(거의 국가적인 규모에 맞먹는다고 한다) 가고픈 마음이 더 간절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추웠지만 주최측에서 나눠준 우의를 입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다.

거리축제에서는 풍물놀이라는 주제에 어울리게 국악공연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인상에 남는 것은, 동서양이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조화와 새로움이 아니었나 싶다. 전체적으로 볼 때, 풍물축제의 부제(副題)가 '어울림'이라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그 어울림은 '아리랑'을 연주하는 데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었다. 양악기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전체의 기조를 보조해주고 있었고 국악기는 리듬과 변화를 주어, 연주 내내 백의민족의 정서('한' 혹은 자유에의 암담한 동경)를 드러내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이 감상은 나만의 해석이니 다른 이가 해석할 때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양악의 순서도 따로 마련되었는데, 사실 실망이 컸다. 연주 규모도 적었고, 청중에 맞추려다 보니 가벼워진 것 같다(아니, 너무 가벼웠다). 나는 클래식도 자주 듣는 편인데 바로 내 앞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치고는 기대에 못미쳤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국악의 장단은 나름의 흥과 가슴벅찬 그 무엇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한국적 정서에 익숙해서일까. 그런 분위기라면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흔들고 춤사위를 하면서 같이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적어도 옛날의 농악과 풍물축제라면 그랬을 것이다. 악기의 소리(기악)와 노래(성악)와 춤(무용)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벌이는 축제에서는 늘 함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가무(歌舞)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옛적의 놀이 문화에서는 구성원간의 어울림이 다같은 참여로 표현되었는데, 현대에 들어설수록 그같은 면이 상실된 느낌이다. 이것을'관람문화'라고 일컬어도 좋을 것이다. 응원하는 야구팬은 있는데, 실제로 야구경기를 하면서 그 운동을 즐기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스포츠는 '관람용'일 뿐이지 한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실전용'이 되지 못할 뿐더러 성원간의 관계도모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치는 또 어떤가. 매체를 통해서 중요현안이 이슈화되어 보도되고 무슨 바람(風)입네 스캔들입내 알려지고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 같지만 국민의 정치참여도는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느낌이다. 하물며 연예계(특히 가요계)랴. 그 큰 공연장에서 극소수의 사람이 무대에서 노래하며 춤추지만 '관람객'과는 크게 어우러지지는 못한다. 무대/가수와 관중(석) 간에 가로놓인 벽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과거의 선조들은 계급간의 간격은 있을지언정 같은 계급끼리는 서로 어울리며 놀이를 즐겼다. 소리꾼이 선창하면 좌중에 있는 이들이 후창하고, 어느 한 사람이 흥에 겨워 춤을 추면 한사람씩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 장면 자체가 하나의 삶이었고 희극이었고, 그 한바탕의 참여로 서로 가까워지며 지나간 인생의 질곡을 잊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도시의 놀이문화는 어떤가. 모든 것이 상업성과 관계되고, 말 그대로의 인간(人間, 사람 '사이'에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잊혀져 가고 있다. 그래서 스타가 탄생한다. 아니, 권력의 조작으로 스타로 길들여진다. 그 문화에서는 참여라는 관계맺음의 통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번 <부평풍물대축제>, 그곳에 동양과 서양의 '어울림'은 있었다. 그러나 부평구민의 '어울림'은 없었다. 사회가 점점 현대화되면서 서로간의 관계가 파편화되어 가는 마당에 '관계'의 성격을 갖는 인간으로 되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은 구식적 발상일까? 그러나 나의 내면에, 그리고 암암리의 모든 사람에게 관계나 '어울림'을 갈구하는 본래적인 심성이 있지 않을까? 내 고향의 이맘때면 서로 집을 바꿔가면서, 소박하나마 막걸리를 대접하면서, '진도아리랑'을 부르던 내 부모님과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생각난다. 아마 거기에서는 나도 내 친구들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맞잡고 어색하게 몸을 가누면서 어깨춤을 덩실거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