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는 장님들의 코끼리인가?
오래 전에 작고하신 문학평론가 김현씨의 저서에서 유독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있다.
-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말하는 사람, 앞의 사람은 투사이고 뒤의 사람은 종교인, 예술인이다.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자부심 없이는 싸울 수 없고 '나는 항상 잘 못한다'라고 사유하는 사람의 원죄성 없이는 느낄 수 없다.
윗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투사와 종교인(혹은 예술인), 그러니까 전자는 행동을 먼저 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사유하면서 원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나는 그 두 종류의 사람을 행동하는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으로 대입시키고 싶다.
3월 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안이 통과된 뒤로 사람들은 모두 행동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다. 그들은 모두 민주주의 이름으로 깃발을 흔들어대고 있는데 그것까지는 굳이 나무랄 수는 없다. 그들의 행동이 헌재의 결정에 위협을 주는 요인이 있기는 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 즉 침묵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꽃피울 수가 있는 것이다. 정작 노무현 대통령도 방일 도중 일본 공산당과의 만남에서 "공산당이 허용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었다. 이때에 한나랑은 비판의 수위를 높여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했고, 민주당 내에선 대통령을 엄호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비판할 건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공존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비록 그 다양성이 상대방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상에만 국한되어 있다하더라도.
그런데 요즈음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집회, 시위, 토론의 형국을 보노라면 대부분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한술 더 떠서 자기들과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치부하면서 결국은 친노와 반노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더 위험한 것은 헌재에서 탄액안 결정이 승인되는 경우 대대적으로 국민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어느 네티즌의 협박성 발언도 있었다. 국민봉기는 4.15 총선이 연기되거나 할 때 써먹을 일이다. 그러니까 헌재의 결정에는 어떤 압박도 가해서는 안 된다.
참고로 나는 여당 편도 아니고 야당 편도 아니다. 나는 야 3당의 국회의원들을, 저질스럽고 속된 표현이긴 해도 '수구 꼴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열우당 의원들이 그들과 다르다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다. 그들이 다수당이 되었을 때, 권력에 대한 결핍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 권력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이 현재의 야당의원들과 다르지 않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3.12 사태가 있은 후에 방송 3사에서 토론 프로그램을 가졌는데 나는 우연히 MBC와 KBS의 프로를 보게 되었고, SBS의 것은 인터넷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우선 MBC의 프로를 볼 때 기억에 남은 것은 유시민의원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유시민을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 그의 이름을 기억했고, 100분 토론 진행자였을 때만 해도 모종의 '순수성'이 느껴졌었지만 이제 그에게선 타락한 정치인의 냄새가 느껴진다. 토론석상에서 상대의 발언을 들으려하지 않고 꼬투리를 잡고 비아냥거리는 행태가 보여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SBS에서 전여옥과 언쟁(토론이었을까?)이 있었다는데 인터넷 뉴스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니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 사진이다. 내용을 보니 '미숙아', '인큐베이터', 등등의 단어가 인용된 모양인데 전여옥을 향한 그의 표정에서는 '감히 기집X이 어따 대고...'하는 마초근성이 느껴진다. 나는 전여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대화 문구를 보았을 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얘기였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토론자의 생각이었음으로. 그들의 역할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나아가서 설득시키게 되면 좋은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단죄하라는 것은 아니다.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기면 된다. 전여옥의 말에 수긍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고, 유시민의 말에 수긍하는 시청자도 있을 터이니 서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KBS 대담 프로에는 3당 대표와 정치학과 교수, 그리고 법학과 교수가 나왔었는데 한나라당 대표와 민주당 대표는 토론자의 자질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말빨'은 한없이 버벅거리고, 뒷다리 긁고, 또 누군가는 그간 몸에 배었던 권위를 앞세워 깡패 같은 태도를 보이는 우를 범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모 교수의 비웃음 찬 표정과 거만한 자세를 보고 야당 대표로 나온 패널들의 부족함과 실수에 오히려 너그러워지고 싶다. 그 정치학과 교수는 자기 생각만이 지고지순한 '진리'이고 남들의 생각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하는 자기 확신에 팽배해 있는 것도 모자라 공공연하게 상대에게 모멸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날 시청자 게시판에서 올라온 글을 보자니 그 교수의 인기가 솟아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립을 지키며 이성적 사고를 피력한 법대 교수는 '반노노선'이라고 매도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건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친노', '반노' 가 있다면 '이성적인 중립'도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기억해야 될 것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국민을 대표하긴 해도 심정적으로는 국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현 대통령이 36%의 지지를 얻고 상대자가 34%의 지지를 얻었다고 칠 때(수치는 예를 든 것임) 나머지 30%를 지지자의 퍼센트에 추가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아무리 국민이 뽑은 의원이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고작해야 국민의 36%의 지지를 얻은 것이지 반대자만을 뺀 66%의 지지를 얻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소위 국민의 대표자들은 부끄러워하고 겸손해 질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함성에 빠져들어 반짝 스타들이 느끼는 몽환에서 헤어나지 못 할까바 우려가 생긴다.
제발 시위를 자제하고 총선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할 일이다. 가뜩이나 갈라진 영토에서 또다시 분열된 이데올로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 공포심이 느껴진다. 우리 국민이 시위를 해야 한다면 대외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때나 모욕을 당할 때에 해야 마땅하다. 위안부 문제나 독도문제, 해외 파병 문제,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 여중생 사망사건 문제, 서해교전 문제, 이런 문제들에서나 거족적으로 지속적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공연히 외국인들에게 '노사모의 히스테리'로 매도당하지 말고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 총선을 기다리는 것이 국가나 개인에게 유익한 일일 것이다.
감상적이거나 감정적인 민주주의는 장님들이 더듬는 코끼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국민과 민주주의를 앞세우지 말고 하루빨리 이성의 눈을 떠서 멀리, 가까이,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성숙된 민주주의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
<첨부하는 글 1.>
[탄핵] 탄핵파문 이모저모 기사목록
노사모 집회서 '추미애 XX년' 네티즌논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의 탄핵 반대 집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민주당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을 지칭해 “씨팔년"이라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전해지며 네티즌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추미애 의원은 당초 민주당의 탄핵 추진 당론을 반대했으나 11일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 사과를 거부하자 탄핵 지지로 돌아섰었다.
네티즌 ‘이금희’씨는 지난 11일 ‘진보누리(jinbonuri.com)’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공중집회에서 '씨팔년'을 연호할 수 있어요?’라는 글에서 “오늘 노사모 간부라는 분이 국회 앞 모임에서 '추미애 씨팔년' 구호를 외쳤습니다”라며 “상당수의 노사모들이 같이 외치더군요. 몇몇 점잖은 분은 차마 따라하진 못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개혁 노빠’를 자처하는 다른 네티즌은 진보누리 사이트에 떠있는 글에서 “공공 장소에서 친노 정치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씨팔년을 합창하다니, 이건 개혁 노빠로서 참으로 온당치 못한 일”이라며 “평소 여성의 언어, 여성성 표현 같은데 관심이 많은 노혜경과 김정란, 그리고 이런 일 생기면 누구보다 입에 게거품 물고 항의해온 고은광순에게 오늘의 이 난동을 어떻게 해석하며 또한 대책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일단 군중을 선동하여 이런 반여성적 구호를 유도한 작자는 당장에 중징계에 처해야 할 것이며 구호에 동참한 노빠들에게도 처절한 자기반성을 이행, 그 결과를 서면으로 제출하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유시민의 조개 타령은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런 난동은 결코 넘어갈 수가 없다”고 밝혔다.
노사모 회원이 추미애 의원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공공집회에서 한 것으로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이게 사실인가”, “답답하다”는 반응과 함께 “성폭력 사건으로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네티즌 김모씨는 “이것이 정말 노사모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면 노사모 내에서 성폭력 사건으로 공론화가 되어야 마땅하다”며 “그렇게, 저들의 더러운 싸움 와중에서도 '여성' 정치인은 또 한번 성별화된다”고 말했다. 진보누리 사이트에서 아이디가 ‘음…’인 한 네티즌은 ‘노빠들아, 씨팔년만큼은 안된다’는 글에서 “같이 해놓고도 여성은 더 욕먹는 것이 한국사회이고 소위 개혁을 말한다는 노빠들마저 그런 반여성적 정서를 여과 없이 노출시킨다면 자기 모순”이라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개혁인데 씨팔년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해야하냐”고 말했다.
(김재은 기자 2ruth@chosun.com )
-------------------------------------------------
<첨부하는 글 2>
나, 盧지지자 아니오. 공짜 촛불은 싫어요”
탄핵 논란, 네티즌 의견 보기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노인은 주최측이 나눠주는 양초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노인은 가까운 노점에서 양초를 사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촛불집회 참석자 중 ‘집회참석자는 노무현 지지자’라는 시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특정세력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권에 항의표시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탄핵정국이 ‘친노’와 ‘반노’의 대결구도로 치닫는 상황을 경계했다.
15일 집회에 참석한 회사원 천영진씨(45)는 “난 노사모도, 친노성향도 아니다”며 “다만 힘겹게 쌓아온 민주주의 전통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왔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는 김모씨(30)는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탄핵 결의를 했다는 데 화가 났을 뿐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마음은 없다”고 못박았다.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는 ‘탄핵무효 범국민행동’도 촛불집회는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운동이 아니라 ‘힘을 앞세운 야당의 폭거’에 대한 저항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이라크 파병 등 현정부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전국민중연대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민주노총도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 국민행동은 노사모나 국민의힘 등 친노단체와 정당 관계자의 가입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국민행동의 김제남 준비위원은“처음엔 노대통령 지지집회로 보일까 걱정했었다”며 “하지만 집회를 계속하면서 탄핵반대는 노무현 지지자의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정서라는 점을 알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김동은기자 dek@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4-03-16 19:33:
|
|
민주주의는 장님들의 코끼리인가?
다 아시는 글이지만 한 번 더 소개 하고 싶은 셰익스피어의 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