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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힘들죠… 가족을 떠올리면 새 힘이 나요!
콩고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떼르망스
남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아요
콩고에서 온 청년 떼르망스. 그의 조국 아프리카는 다산의 풍습이 남아 있어 형제나 가족이 유난히 많다. 가족은 60여 명, 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직계 혈통 형제만 12명에 이른다. 직장이 없는 부모님과 누이, 조카들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2000년 그는 한국을 찾았다.
현실은 몹시 가혹했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그의 실력은 피부색 앞에서 깡그리 무너졌다. 아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흑인이었을 뿐이다. 식당 한구석으로 쫓겨나 눈물 밥을 먹어야 했고, 음식을 안 판다며 거침없이 밀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힘겹게 철강을 다루는 공장에 취직했다. 임금은 두세 달씩 밀렸고, 심한 소음 때문에 귀가 먹먹했으며, 잦은 야근으로 몸은 이내 녹초가 되곤 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있었으니, 바로 부양해야 할 가족과 가난한 조국의 현실이었다.
“서글픈 마음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도 내게 주어진 몫이니 기쁘게 받아들여야죠. 내가 힘든 만큼 가족들이 웃을 수 있잖아요.”
그는 얼마 전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공장으로 옮겼고, 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다. 성실함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닐까.
이제 조금은 여유를 즐기며 쉬어도 좋으련만, 떼르망스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나와 있는 다른 콩고 형제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여기저기 열심히 일자리를 부탁하러 다니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운영되는 쉼터 등을 소개하느라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남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힘이 솟아요. 나만을 위해서였다면 한두 달도 못 참고 조국으로 돌아갔을 거예요. 하지만 가족들 얼굴이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만일 지금 한국에 있는 콩고 형제들을 돕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나태해졌을 겁니다. 그들 덕분에 나는 활기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신문배달·식당 일 마다않는 안병우
수다 떠는 시간이 제일 아까워요
이른 새벽 전철역에 나와 무가지 신문을 돌리고, 그 일이 끝나면 은행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출근해 직원들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일주일에 3일은 다른 식당에 출장을 나가는 그. 틈틈이 생기는 모든 일거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잠은 하루 3시간밖에 자지 못한다. 하지만 얼굴 어디에서도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항상 남들보다 빨리 나와 신문을 정돈하고, 보온병 한가득 냉커피와 미숫가루를 담아와 힘들게 일하는 동료들을 격려한다. 날도 덥고 일도 힘든데 어떻게 이런 여유가 나올까.
“실은 제 다리 정상이 아니에요. 교통사고로 잃어버렸지요. 철심을 박은 거랍니다. 그래도 쓸 만해요. 이렇게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끄떡없어요. 하하.”
1997년은 사모님 소리 들으며 별 부족함 없이 살았던 그녀를 몹시 힘들게 했다. 남편 사업은 부도가 났고, 카드깡 하는 사람들 농간에 말려 사기를 당한 데다 신체적 위해까지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집에는 강도가 들었고, 그녀는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의사는 120도 이상 구부릴 수 없으며 꾸준히 재활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를 악물고 산행을 시작했다. 걷는 게 힘들 때면 뿌리 하나로 온몸을 지탱하는 나무를 보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런데 늘 자기 사업만을 해오던 남편은 밖으로 나가는 걸 부끄러워했다. 점점 생계 문제는 급박해져오고…. 결국 그녀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이 몸으로 일해야 하나 싶어 억울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일하다 보니 괴로운 생각들은 다 잊혀지대요. 얼마 전엔 시 동호회에서 탈퇴했어요.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면 적어도 한두 시간씩은 허비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아서…. 역시 몸으로 바쁜 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몸이 말을 듣는 그 순간까지 일하고 싶어요.”
하루를 25시간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그녀. 얘기를 나누다 말고 저 멀리 뛰어간다.
“수다 떠는 사람들 보면 ‘차라리 날 주지. 보람 있게 쓸 텐데 말이야’ 속으로 말한답니다. 수다 떠는 시간이 제일 아까워요. 하하!”
평생 리어카 장사하며 홀로 두 아들 키운 정희 할머니
구부러진 어깨, 펴드릴 날 있겠죠!
“어휴, 말도 말아요. 전에는 노점상 단속이 얼마나 심했는지 무거운 리어카를 혼자 밀 수도 없는데 쫓겨다니느라 온몸이 쑤시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가슴이 다 녹아내릴 지경이었어요.”
핫도그, 호떡, 떡볶이, 과일장사…. 리어카 끌고 정처 없이 길거리를 내달리면서 어머니는 줄곧 두 아들만 떠올렸다. 목욕탕 때밀이에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져도, 누가 욕설을 퍼부으며 손가락질해도 “네, 네, 알았습니다” 비굴하게 고개를 주억거렸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무거운 짐들을 거뜬히 들어 옮겼다.
지금 어머니 옆에는 큰아들 정훈 씨가 나란히 서 있다. 부지런히 오뎅을 꼬치에 꽂고 토스트를 노릇노릇 구워내며 어머니 일손을 거들고 있는 것. 하지만 이렇게 착실한 그도 잠시 방황한 적이 있었다. 친구를 때려 태권도장에서 쫓겨났고, 사춘기 시절에는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겠노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가난한 삶, 부조리한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일까.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늘 하던 대로 리어카를 끌고 대문을 나섰고, 이른 새벽에야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셨지요.”
아들은 우연히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무수한 세상풍파에 부딪히고 닳아진 어머니의 어깨는 너무도 작았다. ‘아, 어머니!’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머니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늘 성실하고 한결같은 어머니를 곁에 둔 덕에 학교와 사회가 줄 수 없었던 참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게 어머니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어요.”
묵묵히 쓰레기통을 걸레질하는 환경미화원
힘들이지 않고 밥 먹기가 어디 쉬운가요?
길을 지나치는데 담뱃재며 가래가 시커멓게 엉겨붙은 쓰레기통을 걸레를 두 번씩이나 바꿔가면서 닦아내는 이를 만났다.
“아니, 쓰레기통을 왜 닦으세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말이에요.”
“이렇게 닦아놔도 금세 지저분해지는걸요. 자주 닦지 않으면 나중엔 잘 닦아지지도 않아요.”
그는 얘기 도중에도 쓰레기통을 뒤집어 깡통과 종이 등 재활용되는 것과 일반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다.
이마 위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가 못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몰래 갖다 버리는 가정용 쓰레기나 노점상에서 나오는 수많은 쓰레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울컥하기도 한다. 또 때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삶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만큼 살아온 것도 다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 덕이었다.
“그래도 이 일로 가족 걱정시키지 않고 밥 먹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내 맡은 일을 싫어한 적 없고, 대충 해본 적도 없어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인데 떳떳한 직장 있으니 그래도 감사하지요. 이 정도 힘들이지 않고 밥 먹기가 어디 쉬운가요?”
새벽 5시까지 김밥 싸는 스무 살 이난희
PC방 갔다가 30분도 안돼 돌아와요
전철역 앞 24시간 우동가게. 다섯 명의 아주머니들 틈에서 바지런히 김밥을 싸고 있는 젊은이가 보인다. 스무 살 이난희 씨. 그녀는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일을 한다. 밤샘일이 힘에 부칠 법도 한데 “어서오세요” 반가운 인사소리가 쩌렁쩌렁 명랑하게 울린다. 알고 보니 그 집 주인 딸이고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
“그 나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한창 놀고 싶을 텐데, 힘들지 않아요?”
“솔직히 저도 놀고 싶어요. 일이요? 안 할 수 있으면 더 좋지요. 친구들이랑 놀러도 다니지 못하고, 컴퓨터도 못하고 불편한 게 많아요. 하지만 제가 안 하면 엄마 혼자 너무 힘드시거든요. 친구나 제 감정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더 중요해요. 그래서 컴퓨터를 하려고 몰래 PC방에 갔다가 30분도 안돼 되돌아오곤 해요.”
그녀는 옆에서 졸고 있는 엄마의 어깨를 흔들면서 어서 들어가 주무시라고 채근하기에 바쁘다. 내가 있을 테니 염려 말라면서. 밤은 새벽으로 넘어가고 모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건만, 김밥을 싸고 있는 그녀의 손길은 더욱 씩씩해진다.
진행 | 이명옥(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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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힘들죠… 가족을 떠올리면 새 힘이 나요! (해피데이스 9월호)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