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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교수님께 꾸벅~
한참 만에 왔는데도 글을 읽다보니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교재 때문에 바쁘실 텐데도 여전히 자상하시군요. ^^*
어쩜 다음 달에 찾아뵐지도 몰라요. ㅋㅋㅋ
아래 y님이 -안개 속의 풍경- 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문득 예전에 영화를 보고 끄적였던 글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음악을 잘 들었다는 답례로 여기에 그 글을 올립니다.
훔쳐온 하늘도 잘 봤고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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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풍경]
감독: 테오 앙겔로폴로스(그리스 대표적 감독, 1989년作)
주연: 미칼레스 제케(미칼리스 제크)
타니야 제케볼로크(타냐 팔라이올로그)
전형적인 로드 무비다. 그러나 끊임없는 메타포(영화에서도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로 인해 몽환적인 화면 속에 허리우드 영화와는
격이 다른 사실성이 처절하게 녹아 있다. 마치 샤갈의 그림 속에서
고흐를 보는 것 같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잠시 어두운 화면 속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부터 들린다. 곧이어 나이 어린 남매의 얼굴이 나타나고, 11세 소
녀는 아직 아기 티가 가시지 않은 남동생, 알렉산더에게 묻는다.
- 무섭니?
- 아니, 무섭지 않아.
그것은 삶의 秘意를 찾아 떠나는 어린 영혼들의 자기확인이다. 아
버지가 독일에 있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
아 독일 행 기차를 타려고 무수히 결심했으면서도 매번 망설였던 두
려움의 실체이기도 하다. 있지도 않은 아버지,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
지는 어쩌면 신이란 존재의 또 다른 대명사는 아니었는지...
무단승차한 아이들이 역무원에게 발각되어 인계된 것은 아이들의
외삼촌이었는데, 외삼촌은 아이들을 맡을 수 없다며 사실을 얘기한다.
"아버지를 찾아 독일에 간다구요? 애들 아버지는 독일에 없어요. 애
비가 누군지 조차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독일에 있다는 말입니까. 애
들 에미가 사실을 말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둘러댄 거겠지요."
소녀는 삼촌이 한 말을 엿듣게 되었지만 사실을 부인한다. 삼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따라서 아버지는 분명 독일에 있는 것이 된다.
그리해서 그들의 기나긴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아이들이 만나는 세
상은 빛과 어둠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대부분 어둠 속에서이다. 결
혼식장을 뛰쳐나와 울음을 터뜨리는 신부, 그 신부가 섰던 길에서 죽
어 가는 말, 목에서 밧줄이 미끄러졌다고 중얼거리는 미친 여자, 등
등. 그러나 날이 밝고 낯선 산길을 걷는 두 남매에게 또 다른 만남도
있었다. 고장난 버스를 손보고 있던 청년 오레스테스는 그들의 떠남
을 이해한다. 어쩌면 오레스테스와 대화가 이 영화의 주제 같기도 하
다.
- 너희는 이상한 애들이야. 시간 같은 것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
애. 급히 떠나려고 하면서도 갈 곳은 없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어딘
가를 향해 계속 가고 있어. 목적지는 알고있니?
- 아저씨도 이상한 사람 같아요.
- 난 허무한 삶을 사는 하찮은 달팽이야. 목적도 몰라. 안다고도
생각했지, 그런데 난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확실히 안는 건 며칠
후에 군대를 간다는 것 뿐이야.
그리고 오레스테스는 빗물이 괴어 있는 길바닥에서 끊겨진 필름 조
각을 주워 불빛에 비추어 본다. 꼬마 알렌산더가 따라 본다.
- 아무 것도 안 보여요.
- 자세히 봐. 안개 뒤 멀리에 나무가 있는 게 안 보이니?
- 네
- 나도 안 보여, 농담한 거야.
- 저 주실래요?
- 그래.
알렉산더는 아무 것도 찍히지 않은 네 칸 짜리 찢겨진 필름을 받는
다. 공허한 인생, 그러나 그 때문에 꿈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의 지독
한 은유로 느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만남들...
바닷가,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옛날 연극만 고집하는 늙은
배우들과 만남, 비오는 저녁 아이들을 태워주고 소녀를 강간한 트럭
운전사. 다시 만난 오레스테스와 카페의 젊은이들, 오레스테스와의 신
경전, 그리고 이별, 기차표 값을 구하기 위해 이제는 소녀 스스로 다
가 간 군인, 등등. 그들은 아버지가 계신 미지의 땅을 찾아 여행을 계
속한다. 그들은 여행길에서 계속 아버지에게 마음의 편지를 쓴다. 영
화 초반부에서 알렉산더는 말한다. - 사람들은 이상해요. 이해할 수
없는 몸짓과 말들, 그래도 우린 행복해요. 우린 계속 여행할 거에요.
그리고 종반부에서 말하는 소녀의 편지, - 빛과 어둠, 그리고 아버지.
우린 서로 같은 세상을 보고 같은 편지를 쓰면서 아버지에게 보내면
서도 서로 말을 안 해요.
그들은 결국 국경에 도착했고, 어둠 속에서 강 건너의 독일 땅을
바라본다. 그리고 검시소의 서치라이트를 피해 조그만 나룻배를 탄다.
돌아가던 불빛이 배를 찾아내고 다시 어둠, 그리고 총소리...
영화 서두에 보여주었던 시간만큼 보여주던 어둠이 물러가고 뿌연
안개 속 같은 화면에 조금씩 선명해 지는 알렉산더의 얼굴, 그리고
잠시 후에 들리는 누나의 목소리. 알렉산더는 어른스러워지고 누나는
두려워하고 있다. 둘이 손잡고 걸어가는 초원의 저쪽에 보이는 한 그
루 나무, 그 나무에 도착한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화면은 페이드 아웃
된다. 그런데 알수 없는 것 한 가지, 그들은 살아서 그 나무를 본 것
일까?
어쨌든, 보기 드문 수작으로 생각된다. 빔 벤더스의 [베르린 천사의
시]처럼 대사도 좋고 장면 하나 하나를 완벽한 구도로 연출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감독의 다른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을 꼭 찾아보고 싶
다.
1998.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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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풍경- y 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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