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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이나 수술, 학업 포기하지 않은 어느 부부 만학도의 졸업감상기
이명옥
성경에 밭을 일구는 사람, 씨앗을 뿌리는 사람, 씨앗을 가꾸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씀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세상을 살다보니 그 말씀이 제 자신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2001년 53세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열흘 후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지요. 병명도 알 수 없는 채 대소변을 일주일이나 받아냈어요. 동네 병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데 낫지를 않아 큰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심내막염이라고 밝혀졌지요. 심장 판막에 세균이 번식하는 무서운 병이었어요. 56킬로이던 남편의 체중이 10킬로나 빠졌고 다들 가망이 없다고 절망적인 말들을 했어요.
▲병마를 극복하고 졸업을 앞둔 최현자 님. © 이명옥
세균을 잡기 위해 한달이나 병원에 입원을 해 병구완을 시작했지요.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 대학에 입학을 해 놓고 병원에 있으면서 마음은 학교와 교수님의 강의에 가 있었어요. 학교가 너무너무 가고 싶고 하루는 교수님의 특강이 너무 듣고 싶어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더군요.
남편을 병원에 남겨두고 강연에 간 사이 갑자기 수술 날짜가 잡혀서 남편이 수술에 필요한 물건을 다 준비를 해 놓았더군요. 심장쪽이라 수술 후 절제 부위를 꿰매는 것이 아니라 호치키스 비슷한 것으로 살끼리 집는다는 거예요, 그 물건을 보는 순간 자신이 너무 철이 없고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병구완을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나. 자신의 병이 얼마나 중한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남편이 단 한번도 불편한 내색 없이 저를 독려해주고 제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지요. 수술 후 결과가 좋지 않아 재수술을 하는 등 어려운 가운데 끝까지 남편 수발과 학업을 병행해 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밭을 잘 일구어 준 때문이지요. 그렇게 1학년을 보내고 남편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려는 결심을 한 순간 제게 병마가 덮쳐왔어요.
제가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지요. 부부가 번갈아 가며 두 해를 연거푸 수술을 하고 나니 좌절감이 오더군요. 몸도 마음도 너무 힘이 들고 지쳐서 학업을 포기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에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거든요. 방송대는 기말고사의 비중이 커서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는데 한 학우가 제 나이와 처음 입학할 때의 마음을 상기해 보라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강하게 끌어주고 전화로 힘을 주고 시험을 대비해서 이모저모로 도움을 주었어요.
그 당시는 그 학우의 불도저식 강성과 충고가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론 다시는 전화통화도, 만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도 주부, 지장인, 학생, 어머니 등 일인 다역을 감당하기 무척 힘이 들었을텐데 좋은 소리도 못 들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팔을 잡아준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만사 제끼고 자료며, 학과 요약이며, 기꺼이 도움을 준 학우들과 남편 때문에 그 어려운 시간들을 잘 이겨낼 수 있었지요.
변화시킬 힘과 잠재적 가능성은 자신의 내면에 있지만 그 힘을 잘 이끌어 내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돼주는 사람은 가족, 친구, 좋은 이웃이더군요.
힘들고 어려울 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지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테지요. 세상은 밭을 갈아 주는 이, 씨앗을 뿌리는 이, 씨앗을 가꾸는 이들이 더불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 같습니다. 4년 동안 방송대 공부를 하면서 좋은 학우들을 만난 것이 가장 값진 보람이고, 그들에게 너무도 많은 도움을 거저 받았으니 저도 다른 이들에게 많이 되돌려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방송대 입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랍니다. 한 가지는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 내에서 제대로 된 대화의 상대가 되어 보자는 것이었어요. 살면서 자식으로서의 삶보다는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더 어렵고 쉽지 않더군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며느리나 올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저건 아닌데 싶은 때가 많았어요. 언젠가는 저도 시어머니가 될 테고 사위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만일 제가 지닌 오래된 제 생각만 고집한다면 그건 아집에 다름이 아닐 거예요. 제가 젊은이들과 같이 호흡을 하려면 배워야하고 그런 배움을 통해서 갈등을 부드럽게 해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요. 아집만 남은 외톨이로 노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또 한가지는 언젠가 보게 될 손자들과 대화가 가능한 멋있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라도 4년간의 학업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세상은 독불장군이 아닌 더불어 살아야하는 곳이니까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너무 힘이 들어 누워 책을 보면서도 학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더니 결국 졸업을 앞두게 되네요. 제가 하버드를 졸업한다고 이보다 더 보람찰 수 있을까요? 비록 입학 동기들과 같이 졸업을 하지는 못하지만 제겐 누구보다 소중한 학우들에게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기꺼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매일같이 학업을 도와준 멤버들이 없었다면 졸업이란 값진 열매를 손에 쥘 수 없었을 테니까요. / 편집위원
2004/12/30 [08:56]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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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를 졸업한다고 이보다 더 보람될까요?(대자보)
교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