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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대신 박쥐 날개 씹어 봤어?
노란머리 백인 소녀와 원시부족과의 동거 다룬 <정글아이>를 읽고
이명옥(mmsarah) 기자
ⓒ 이명옥
문명세계가 안전하다는 건, 편안함에 중독된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욕망과 이기심으로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밤낮 괴물처럼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자동차의 물결이, 뱀이나 악어보다 덜 위험하다는 말인가?
10여 년이 넘게 문명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원시 부족과 함께 살았던 독일 소녀 자비네 퀴글러는 문명세계가 정글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소란스러운 곳이라고 잘라 말한다.
내가 보기엔 문명세계는 정글의 생활보다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노동 시장, 수입, 노후 보장 같은 주변 환경에 삶이 좌우된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틀 속에서 살고 있다.
정글에선 모든 것이 분명하다. 흑 아니면 백이다. 문명세계의 회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글에선 적이 아니면 친구다. 비가 안 오면 해가 쨍쨍 난다. 친구와 가족은 생명을 바쳐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한다. 모든 것이 간단하고 명료하다.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항상 알고 있는 것이다. 훗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10살짜리 아이를 혼자 정글 한가운데에 던져 놓는다면 아이는 살아 돌아올 수 있다.하지만 대도시 한가운데 버려둔다면 분명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글에서 생존의 기술을 배웠다. 정글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고, 정글의 위험과 정글 속의 안락함을 알게 됐다. 정글을 존중하면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 정글을 지배하는 법도 배웠다. - 본문 중
<정글아이>의 저자 자비네 퀴글러는 5살 무렵 선교사이며 언어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서파푸아 정글 오지에 석기시대 방식으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파유족과 살게 된다. 감자 튀김 대신 거미, 딱정벌레, 구운 애벌레를 먹었고, 껌 대신 박쥐 날개를 씹었다.
맨발로 정글을 헤매며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독이 있는 식물을 가려내는 법, 사냥법, 나무에 기어오르기, 악어가 우글거리는 강에서 헤엄치는 법, 뱀과 멧돼지를 피하는 법, 자연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녀에게 정글은 어머니 같은 안식처였고, 때론 모험 가득한 탐험 장소였으며, 친구였고 언제고 자신을 기다려 주는 가정 같은 곳이었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 여자아이가 뼈를 바늘처럼 깎아 코에 꿰고, 발가 벗고, 짐승과 사람의 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파유족 아이들과 친구로 정글아이가 되어 17세까지 성장한 것이다.
정글의 삶은 자연을 적절히 활용하며 서로가 상생하는 생존의 방식을 배우게 했고, 그녀가 문명세계로 돌아왔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자기만 살기 위한 문명세계의 경쟁방식이었다.
고기가 한 덩어리 있으면 한두 입 베어 먹고 옆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사람은 다시 한두 입 베어 먹고 또 옆 사람에게 넘긴다. 그런 방식으로 모두가 똑같은 몫을 얻을 수 있다.
한 번 맺은 우정은 죽을 때까지 지키며 서로 보호하고 도와준다. 남자들은 함께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사고(사고야자 나무 심에서 뽑은 녹말)를 채취하거나 같이 고기를 잡으러 다닌다.
한 마디로 정글의 삶이 육체적으로 훨씬 힘들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훨씬 견디기 쉬웠다. 문명의 삶은 육체적으로는 수월할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훨씬, 훨씬 더 복잡하다. - 본문 중
그녀가 17살이 되어 스위스 기숙사로 들어가기 위해 문명세계로 나왔을 때 그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건 사기, 도로 건너기, 인사하기, 사람과의 관계 등 새롭게 배우는 문명세계의 모든 것은 낯설고 생소했으며 정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고 긴장되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단지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개인의 취향이나 향수라기보다는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느림과, 여유, 자연친화적 삶을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자연에의 갈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도 60~70년대만 해도 산과 들에 널린 야생 과일을 따먹고, 개울에서 헤엄치며 메뚜기를 잡아 구워먹은 추억이 있다. 그 시절은 가난하고 먹거리가 부족했지만 가슴은 따뜻했고,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인심, 사람 냄새나는 인간적인 삶을 살았다.
유럽의 메마른 문명에 먼저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정글과 벗하며 감성적으로 풍부한 유년을 보낸 저자가 다른 감성, 삶의 방식, 가치관을 지니게 된 것은 개인적인 축복이자 고통이기도 한 것 같다.
문명세계에서 삶의 벽에 부딪칠 때 마다 그는 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유년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되돌아갈 유년의 추억은 자연과 접한 사람만이 갖는 특권이 아닐까?
저자는 성년을 준비하며 정글아이에서 문명세계의 일원으로 돌아왔으며, 그들의 부모는 여전히 파유족의 독자적 문화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파유족은 자비네에게 정글의 추억을 선물했고, 그의 부모님은 파유족에게 합리적인 사고, 용서와 화해, 교육, 문명과의 접촉 기회를 제공했다. 문명의 편리에 익숙해지고도 자비네는 여전히 정글의 평화와 정적을 그리며 살고 있다.
전혀 다른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정신적 갈등과 방황을 많이 겪은 그는 지금도 이렇게 고백한다. 정글에서 진정 자유롭고 행복했었다고.
정글아이/ 자비네 퀴글러 지음. 장혜경 옮김/ 이가서/ 12,000원
2005-11-25 09:09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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