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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발전에 관한 대화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2.06.10. 10:56:10   조회: 952   글쓴이IP: 211.207.64.171
<김은태 학생>
교수님 안녕하신지요? 한번 찾아 뵙는다는 것이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찾아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학교 옆에 살면서도....

저는 역사의 발전에 대하여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발전이라는 정의가 반드시 물질 문명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측면에 봤을 때, 자유에의 진보를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저는 입장이 다릅니다.
인류의 역사를 단순히 기록이후의 역사로 보지 않고, 기록 이전의 사회까지 확산하고, 발전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인간 지능의 발전이나 물질 문명의 발전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발전은 다르게 해석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삶의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역사는 발전도 진보도 퇴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역사는 변화할 뿐,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저의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한 바, 이에 대하여 다른 지식이 추가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답변>
역사는 변화할 뿐 발전하는 것도 퇴보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위의 김은태님의 입장(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도 역사에 대한 일정한 철학적 입장입니다.그리고 역사적 변화에 모종의 성격과 의미를 부여하고 나아가 무슨 법칙이 있는 양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그러한 입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오늘날 유행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역사에 대한 입장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죠.
그들은 역사를 그저 불연속적인 우연의 흐름으로 보니까요.그래서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모종의 법칙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모든 역사적 현상을 그것에 맞추어 이해하려는 사상가들 이를테면 마르크스, 헤겔같은 사람들을 극력 혐오합니다.
이 두 입장 중 어느 것이 옳은지는 무우 자르듯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그 견해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일단 그 입장들을 균형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종국적으로는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어떠한 입장에 설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의식의 문제는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성격을 규정하는 세계관과 가치관 내지 정치적 입장과 밀접히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는 것은 서구의 계몽주의적 모더니즘 전통이 이성이니 합리성을 내세워 인간의 충동 욕망 등 비합리적 측면을 억압해온 것에 대한 반동적 경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기이한 것은 서구 모더니즘 자체가 제대로 싹트지도 열매도 맺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 사상이 오늘날 우리의 문화계를 풍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열매도 없는데 그 열매중 썩은 열매를 해체해버리자는 사상 부터 유행하는 것은 아무리 서구의 유행에 냄비같이 민감하게 반응는 것이 우리의 문화풍토라고는 하지만 참 한심스런 일입니다.
합리성에 대한 이해 없이 반억압 탈이성 탈규범을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파시즘적 억압을 불러일으키는 토양이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성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는 문제와 몰이성 몰규범은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하버마스의 말처럼 모더니즘의 문제 또한 인간의 합리적 사고에 의해 극복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유행하는 화두는 욕망이지만,이 땅 이 현실에서 그 이상으로 요구되는 화두는 여전히 규범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해체주의적 성향은 기존의 경직된 관습적 규범에 대한 저항을 통해 자유의식의 신장을 가져다 준 측면도 있지만, 군사파쇼시절 냉소적 방관자로 숨죽이고 있던 기회주의적 지식인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역사의 이름으로 반드시 응징되어야할 살
인괴수와 주구들 마저 신나게 제 세상을 만난 양 활보케하는 토양도 제공해주었으니까요.
눈치채셨겠지만 두말 할 나위 없이 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현실들이 그저 변화하는 것이라고 바라만 보고 데카당하게 기존의 질서와 틀을 냉소하며 비아냥거리기에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고 천박한 자본주의가 무소불위한 힘을 발휘하며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 문명사적 현실도 우리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또한 확고한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끝없이 부정하고 보다 바람직한 변화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갖고 그것을 계획하고 도모하고 지향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저 역사는 변화할 뿐 진보도 퇴보도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에 하나 백만에 하나 설사 조물주가 그것이 망상이라고 귀뜸해준다해도 오히려 그 조물주를 비판하면 비판했지 그저 비탄과 냉소로 이 부조리한 현실을 인정하고 눌러않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고뇌하며 몸부림쳐보았자 다 부질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성성적적 받아들이는 도가적 기풍이 오히려 삶의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개인적 수신의 차원에서 이기적 욕망과 아집,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힐 때마다 노자와 장자의 잠언을 마음에 되새기곤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역사적 현실에 대해서라면 단연코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역사인식과 관련한 세계관적 입장의 문제 그리고 그 차이는 더불어 사는 이웃을 바라보는 태도와 그 공동체적 삶의 성격과 지향을 규정하는 심각하고 중대한 관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답변 공간에서 논쟁적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질문하신 논의주제는 역사철학적 주제의 일반논의주제에 해당하는 만큼 관련도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방송대 교재 철학의 이해에 마지막 장도 이 문제를 개관하고 있는 만큼 참고하시고요.

정진있으시길.
이정호 교수

* 이 글은 구자료실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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