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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정말 국경이 없을까?
[서평] 잭 골드스미스·팀우의 <인터넷 권력 전쟁>
이명옥(mmsarah) 기자
인터넷 전용선을 처음 설치하고 기계치에 컴맹인 나는 인터넷 사용법을 잠시 배운 적이 있다. 그날 그날 강의가 끝나면 간단한 과제물을 내주곤 했는데 첫 과제물이 바로 인터넷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서 지정해준 그림을 옮겨 프린트해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가르쳐 준 주소를 치니 신기하게도 루브르 박물관이 나왔고, 시대별 해설과 멋진 그림을 마음대로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는 그림을 내 컴퓨터로 옮겨 두고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인터넷이야말로 언어와 인종, 경계를 초월한 국경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획기적이고 환상적인 도구라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통로를 넓혔으며, 인간관계를 다양화했고, 심지어 일자리까지 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인터넷이 내게 있어서는 멋진 신세계였던 셈이다.
그렇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컴퓨터가 개인용 컴퓨터로 개발된 초창기에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전문 기술과 정보를 가진 이들까지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세상의 통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고 국가나 국경의 개념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란 환상을 품었었다.
그러나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꾸던 순수한 몽상가들의 꿈은 더 강력한 국가와 정부 권력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현재 국가 간의 정보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쟁은 물리적인 국경이 지닌 의미를 훨씬 넘어서고 있으며, 앞선 정보와 기술을 소유한 나라에 의한 종속화, 검열화, 통제화는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정보와 기술을 통한 보이지 않는 국경 전쟁에 인터넷이 불씨를 제공한 셈이고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더 치열하게 타오르고 있다.
사이버 세계를 조종하는 <인터넷 권력전쟁>이라는 이 책에서는 90년대 인터넷이 민족국가의 통치에 내민 도전장은 무엇이었는지, 그 후 각국 정부는 거대한 사이버 세계 통제권을 쥐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했는지, 그러한 과정 속에서 멋진 신세계를 꿈꾸던 몽상가들의 꿈이 어떻게 물거품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주제로 인터넷의 발전과 그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기술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구분이나 국가에 의한 강제력과 통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신나치주의에 맞서 싸우던 프랑스인 마크 노벨이 야후를 프랑스 법정에 세워 패배시킨 사건은 가상공간에 자리한 사이버 세계에 어떻게 속지주의가 적용되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포털의 제왕’으로 ‘버릇없고 세련되지 못하며 거친’이란 뜻으로 해석되는 것을 좋아했다던 오만하기 그지없던 야후는 경매사이트를 통해 나치 기념품을 판매하던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 법정에 서게 된다.
야후는 ‘프랑스 법원이 관할권도 없는 지역에서 판결을 내리려고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프랑스 법정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 사건을 계기로 속지법에 저항하는 기술이었던 인터넷이 속지법 집행을 도와주는 기술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현재 검색엔진은 철저한 통제와 검열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해외 인터넷을 통제하고 자국 영토내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해 국가의 권력과 통제력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같은 경우, 검색엔진들인 야후나 구글이 철저하게 중국 정부의 검열, 통재 수단으로 전락되어 국가 권력 강화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인터넷이 갈라지면서 국경화과 지역화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는 분류되어 제목이 달리길 원하고, 정리되고 걸러짐으로써 사람들이 찾고, 상호참조하고, 소비해주길 원한다. 정보의 조직화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위의 인용문처럼 인터넷은 국가별, 지역별로 각기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으며 언어, 정보 여과, 대역폭 등으로 인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다. 어찌하든 자국법을 적용해 효과적으로 인터넷을 통재하려는 정부의 압력과, 개인의 입맛과 기호에 맞추어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이다. 인터넷에서 개인별 맞춤 콘텐츠 제공이 가능해짐에 따라 지역 구분화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
세 번째 주제는 인터넷에 생긴 국경이 주는 장점들과 단점들을 짚어보는 것이다.
많은 개인과 기업들은 인터넷으로 발생되는 각종 피해로부터 국가가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언어와 지역,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국가간 권력과 통제 강화를 위한 인위적인 조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한국의 일기 예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자살 사이트나 불법 무기 판매, 포르노 동영상, 살인 교사 사이트처럼 부적합한 사이트의 난립이나 개인 정보 침해 등은 인터넷 사용자로서는 국가가 통제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정보의 중앙집권화는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 시켜 개인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예속시키고 정보를 지닌 이들에 의한 독재와 침해에서 개인의 인권과 인격 손상을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라진 신세계의 꿈을 아쉬워하고 여전히 정보에 의해 강화되는 국가 권력을 경계한다.
앞으로도 정보의 집중과 권력화로부터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고 정보가 주는 혜택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려는 이상주의자들과 정보를 통해 개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권력을 강화해 가려는 국가·기업간 보이지 않는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앞선 기술과 무한한 정보는 또 다른 국경 강화와 권력 강화의 도구가 되어 개인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술과 지식이 지닌 양면성을 우리는 기억한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술과 정보, 지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하며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인터넷 역시 여느 기술이 지닌 양면성과 다르지 않다. 그 도구를 지닌 사람이 어떤 사고를 지닌 사람이냐가 결과물의 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어떤 꿈을 지녔건 간에 치열한 전쟁의 한 가운데 인터넷이란 도구를 지닌 너와 내가 보이지 않는 국경의 이편, 또는 저편에 적과 동지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2007-01-08 13:5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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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정말 국경이 없을까?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