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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의 된 말괄량이 천재 과학자의 경고
[서평]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 <생명의 느낌>
이명옥(mmsarah) 기자
1932년 8월 24일 뉴욕의 이카타에서 개막된 제 6차 '세계 유전학 대회'에는 유전학 분야 전문가 536명이 모였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복잡해 참석을 못한 유럽인을 제외하면 그 분야의 저명한 인물들은 대부분 참석한 셈이었다.
그해 개막 연설을 한 모건은 유전학의 역사를 돌아보고 당시 유전학의 전망을 개괄했다.
오후에 분과별로 진행된 개발 프로그램에서는 바바라 매클린톡과 공동연구자 크레이튼이 '옥수수의 교배 실험에서 세포와 유전물질의 상호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다. 여성이 과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던 시대에 매클린톡은 머나먼 인생항로의 첫 관문을 성공적으로 막 통과한 셈이었다.
휴가를 보내러 유럽으로 가는 증기선에서 매클린톡의 부모님은 우연히 그해 세계 유전학 대회를 마치고 귀향하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크루(Crew)라는 유전학자와 옆자리에 앉게 된다. 크루는 총명하고 재기발랄한 바바라 매클린톡이 얼마나 대단한 과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늘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던 애물단지 막내딸이 '가문의 영광'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1983년 여성 최초로 노벨 생의학상을 받은 바바라 매클린톡은 1902년 6월 16일 목사며 의사였던 헨디 메클린톡과 유지의 외동딸이던 명랑하고 활동적인 사라 매클린톡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던 사라 매클린톡은 결혼 후 쪼들리는 살림과 줄줄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남의 도움 없이 뒤치다꺼리 하느라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바바라는 남동생이 태어나자 고모 집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바바라의 부모는 막내딸이 지적 욕구를 채우며 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사회 규범에 따라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압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 위대한 과학자의 탄생을 도왔다. 바바라는 어렸을 적에 자기 옷은 언니들 것과 다르게 운동할 때 입을 수 있는 바지를 지어 달라고 졸랐고 부모님은 활동적인 바지를 만들어 주었다.
"부모님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그만큼 내게 중요한 일이라고 믿으셨어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건 모두 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지은 바지를 입고,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나무도 탔어요. 남동생하고 그 친구들이 몰려다니며 하는 놀이를 나는 뭐든지 함께 했어요."
그 무렵 바바라와 함께 놀던 친구 중에 여자아이는 한 명도 없고 모두 사내아이들 뿐이었다. 당시는 여자가 대학 교육을 받으면 신부감으로서 값이 떨어지던 때여서 바바라의 두 언니인 마조리와 미뇽은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친 후, 하프 전문연주자와 피아니스트로 평범한 여성의 길을 택해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자아가 강했던 바바라는 남들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한다.
평범한 길 버리고 코넬대에 입학한 바바라
"남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내 행동으로 인해 언짢은 대접을 많이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있을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나의 기쁨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남들에게는 거슬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반발을 달게 받을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하고 마음을 다잡은 거지요.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견뎌 내기로 했던 거예요. 세상에 맞서서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묵묵히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무렵 여학생에게 자연과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곳은 시카고 대학과 코넬대학 두 군데였고, 바바라는 코넬 대학에 입학한다. 코넬대학은 모든 면에서 바바라의 바람을 채워 주었다. 부속농장에서 일하는 대신 농과대학 등록금이 면제되었고 바바라는 마음 놓고 농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바라 매클린톡이 옥수수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을 발견했을 때 생물학계의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광학 현미경과 생명에 대한 느낌으로 옥수수 염색체만을 연구해 이룬 성과였다.
자리바꿈은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염색체의 어떤 인자가 빠져 나오는 과정이고, 다음은 그렇게 빠져 나온 유전인자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끼어드는 과정이다. 이는 결국 생명체가 스스로를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전자가 핵산이라는 사실조차 발견되지 않은 시대에 매클린톡이 제시한 유전자이론은 너무나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30년이 넘도록 그녀의 성과는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그녀는 학문 연구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와 외톨이가 되어 갔다. 1970년대 옥수수와 박테리아 시스템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자 비로소 매클린톡의 연구 결과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1978년 매클린톡은 '유전자의 신속한 재배치 원리'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생명체는 내부, 혹은 외부의 스트레스로 인해 유전자의 변화가 야기된다는 것을 여러 가지 단서들을 통해 증명한다. 풀잎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풀잎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지르는 고통의 소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던 매클린톡에게는 '생명'(organism), 그 자체가 중요한 화두였다.
1980년 매클린톡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모든 생물이 그렇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유전자는 대단히 불안한 상태여서 순식간에 그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유전자의 전체 구조가 달라져 버리면, 특정 유전자가 표현되는 양식이나 그 시점을 조정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조정인자들이 작용하여 유전자 전체 구조를 바꿔버리는 변화의 범위는 실로 무제한이라, 이런 사건이 반복된 후 어떤 상태로 안정을 찾게 되면 결국은 새로운 종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나 매클린톡은 자연 앞에서 자신들이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겸손한 생각을 지니고 자연의 신비에 귀 기울였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자들은 인간의 오만함으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유전자 조작을 서슴지 않는다. 매클린톡이 경고한 대로 새로운 종의 출현은 스트레스에 적응하기 위한 조정인자에 의한 유전자의 자리바꿈이다.
유전자 변이가 어떤 부작용을 동반하는지 완전히 연구되지 않은 상태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변이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의 대표 식물인 미국산 옥수수를 비롯한 각종 유전자 조작 동식물들이 언젠가 인간에게 가져 올 커다란 재앙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생명의 느낌/이블린스 폭스 켈러 지음, 김재희 옮김/양문/1만2000원
2007-04-03 18:2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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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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