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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100달러 짜리 현대판 노예를 고발하다
[서울여성영화제] 스리랑카 가사 노동자 다룬 디마 알 준디 감독의 <노예 비자>
이명옥(mmsarah) 기자
제9회 서울여성영화제 이주여성 특별전에서 레바논 출신 디마 알 준디 감독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혹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국 스리랑카를 떠나 레바논에서 가사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10만여 명의 스리랑카 여성들의 참혹한 현실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 <노예 비자>를 선보였다.
영화가 허구가 아닌 다큐멘터리인 데다 그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이 너무 참혹해 관람 내내 앉은 자리가 불편했다.
<노예 비자>는 집을 지으려고 진 빚을 갚기 위해 5살 된 딸과 남편을 남겨두고 레바논에 가사노동자로 일하러 왔던 자니카, 빚을 갚기 위해 젖먹이 어린 딸을 남겨두고 떠밀리듯 고향을 떠나며 눈물을 흘리는 19세 여성 사히카, 16살에 레바논에 돈벌러 왔다가 26세 연상의 레바논 남성과 결혼해 고국을 그리며 사는 안느-리타의 삶을 통해 스리랑카 여성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가감 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사 노동자로 레바논에 입국한 스리랑카 여성들은 입국과 동시에 여권을 고용주에게 빼앗긴다.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중간 소개자들과 모집 기관에 1500유로라는 꽤 많은 돈을 지불하는 레바논 고용주들이 도망을 막기 위해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 까지 스리랑카 가사 노동자들을 감금한 채 노예처럼 부려먹는다고 한다. 위층과 아래층에 감금된 스리랑카 가사 노동 여성들이 베란다에 나와 서서 큰 소리를 지르며 서로 소통하는 모습은 너무 불편한 광경이었다.
살인이 아닌, 강간이나 폭행은 특별한 처벌 대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폭력과 향수를 견디지 못하는 스리랑카 여성들은 연간 500~600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하곤 한다.
그러나 스리랑카 정부는 오히려 국책 사업의 일환으로 가난한 스리랑카 여성들의 이주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장례조차 치를 수 없는 가난한 농부의 아내들을 찾아내 비인격적이고 폭력적인 노동환경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은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가난한 스리랑카 여성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낯선 환경에 방치된 채 정신적 육체적으로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한 달에 단 돈 100달러만 지불하면 가사 노동의 모든 것을 24시간 해결해주는 스리랑카 가사 노동자들 덕분에 편안함과 안락함에 젖어 버린 레바논 여성들은 더 이상 가사 노동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는다.
<노예 비자>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현대판 노예 제도와 다를 바 없는 레바논의 치부를 용기 있게 드러낸 디마 알 준디 감독은 베이루트 출신의 레바논 여성 감독이다. 그녀는 지난 94년부터 95년까지 스리랑카 TV 방송국에서 일하며 스리랑카에서 2년간 머물렀다.
당시 스리랑카와 레바논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수많은 스리랑카 여성들을 보았고, 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참혹한 현실을 영화를 통해서 알리겠다는 그녀의 바람은 10년만인 지난 2006년에야 현실이 되었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10년 동안 짊어졌던 '마음의 짐'을 벗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홀가분한 표정은 아니었다.
지난 2006년 레바논 다큐멘터리 상영전에서 이 영화를 처음 선 보였을 때 레바논 내에서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스리랑카 이주 여성노동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치부를 왜 드러내느냐는 비난과 야유가 더 컸다.
하지만 그녀는 <노예 비자>를 스리랑카에서도 보여주어 레바논 취업을 원하는 가난한 스리랑카 여성들이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허상을 좇는 일이 없도록 진실을 알리는 동시에 레바논 내에서도 의식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노동법규 개정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갈 것을 희망하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그가 궁극적으로 탐구하는 주제는 '이향(離鄕)'이라고 한다. 타지만이 아니라, 고국 내에서 자기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끼는 것까지 포함하여. 그가 추구하는 물결치는 파도처럼 자유로운 창작의 혼이 엮어 내는 또 다른 의미, 역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애정이 듬뿍 담긴 것이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10년 동안 짊어졌던 '마음의 짐' 덜었다"
<노예 비자> 디마 알 준디 감독과의 대화
디마 알 준디 감독은 레바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제작 및 배급자로 일하고 있다.
94년 다큐멘터리 <우리끼리-베이루트>로 데뷔했으며 헝가리를 주제로 만든<실크로드>와 94년부터 95년까지 2년간 스리랑카에 거주할 때 스리랑카 길거리 아이들을 상대로 인종주의를 다룬 다큐멘터리 <댄서의 다큐>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아래는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나온 질문과 답변이다.
- 이 영화가 스리랑카에서 상영되었다면 스리랑카에서의 반응은 어땠는가?
"아직 허락을 받지 못해 보여준 적은 없지만 마을을 돌며 순회상영을 할 계획이다. 주 타깃은 두 부류인데 하나는 레바논에 가사노동자로 가고 싶어 하는 가난한 스리랑카 여성들이고, 또 한 부류는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협회나 조직들이다."
- 이 영화로 인해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나 노동자들의 연대운동이 일어나고 있는가?
"노동자들의 연대 움직임은 없지만 레바논의 한 변호사 단체에서 노동자 법규를 바꾸는 데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또 레바논 노동부 장관과 스리랑카 관계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정직하지 못했다.
예를 들자면 레바논 노동부 장관은 자살한 스리랑카 가정부가 겨우 6명뿐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연간 500명에서 600명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 장면을 넣지 않았다."
- 스리랑카에서 온 가사노동자들은 예외 없이 모두 감금되어 있는가? 혹시 일주일에 하루라도 휴일이 있는지 노동 조건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레바논에 오자마자 여권을 고용주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여성들은 한 달에 100달러의 월급을 받는데, 고용주가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약 1500유로의 큰돈이 들기 때문에 도망칠까봐 여권을 빼앗고 감금을 한다.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 시장을 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외출은 불가능하다. 아주 운이 좋다면 종교 활동을 위해 잠깐의 외출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
- 레바논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는가? 레바논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기피해서 스리랑카 가사노동자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스리랑카 가사 노동자에게 양육받은 레바논 아이들이 스리랑카 노동자가 떠나면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지 궁금하다.
"레바논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반응이 극단적이었다. 호평과 함께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룹이 있었던 반면, 좋지도 않은 것을 그렇게 까발릴 필요가 있느냐고 혹평하며 비난과 야유를 하는 이들 또한 많았다.
내가 역으로 질문을 한 가지 던지겠다. 경제적 여건이 허락해서 24시간 내내 가정부가 일을 다 해주고 자신은 산책을 비롯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과감히 거부하겠는가? 레바논 여성들이 모든 것을 다 누리는데 한 달에 100달러면 충분하다.
물론 모든 레바논 여성들이 그런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부들이 떠나면 아이들이 상실감과 슬픔에 빠지지만 이미 많은 레바논 여성들이 편안함과 안락함에 길들여져 있어 여전히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 고용되어 온 여성들이 100달러의 월급을 받아 자신을 위해 얼마나 쓰고 고국으로 얼마나 보내고 있는지, 또 그 돈이 어느 정도 효용가치가 있어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 노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수입의 90% 정도를 본국에 보내고 10%정도를 자신을 위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100불이면 스리랑카 돈으로 1만루피 정도인데 그 정도면 스리랑카에서는 꽤 큰돈이다. 그래서 스리랑카 여성들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한도까지 자신을 희생해서 한 달에 1만루피씩 벌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관객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레바논 여성처럼 살지 말라는 것이다." / 이명옥
이 기사는 위민넷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4-12 10:1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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