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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일로 몇 일 뜸했습니다. 제가 제기한 동서양고전 9번 문제의 논의의 틀과 문제제기가 어떻게 처리 되었는 지, 간만에 들어와 보니 진척사항은 거의 없지만, 다른 학우들의 문제제기가 왕성하네요. 우스게 소리로 '방귀가 잦아지면 똥이 된다'는 다소 지저분하지만 의미있는 속담이 있는데 지켜볼 일입니다.
가볍게 시작합니다. '조지 레이코프' 라는 꽤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가 있습니다. 미국 좌파학계의 거두인 노암 촘스키의 제자이기도 하죠. 이 사람이 참으로 탁월한 책을 한 권 썼는데, 그 제목이<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입니다. 제가 평가하기에 2006년도 출간된 인문학서적 중에서 최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내용도 쉬우며-저자 스스로도 이 책이 어려우면 그건 번역 탓이라고 합니다 - 현실의 다양한 문제충돌 상황에 적용가능성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그것을 소개하는 자리는 아니고, 당면한 동서양고전 9번 문제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볼까 합니다. 모든 논쟁의 상황은 결국 '프레임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논쟁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프레임에 들어가 행동하지 말고, 자신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가져올 것을 주문합니다. 즉, 상대방의 프레임에서 논쟁을 하면 패배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더하여, 상대방의 프레임을 포괄할 수 있는 프레임을 구축한다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유가치를 선점하라는 것이죠.
적용해 봅니다. 먼저 교수님은 이런 표현을 쓰십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문제 자체가 덕치라는 조건 안에서 물은 것이니 폭군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컨데, 교수님의 덕치의 프레임은 '덕으로 무장한 군주가 있으니 백성들은 복종이외에 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덕치란, 성군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는 겁니다. '절대적 복종'을 합리화시키기 좋은 프레임입니다. '복종=절대적 복종=무조건복종=자발적 복종=충심으로부터의 복종'으로 엮어버리겠다는 시도입니다. 폭군이 생겨났을 때 문제가 되는 상대적 복종이나 조건부 복종이 들어설 여지를 봉쇄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프레임에서는 후술하겠지만, '자발적‘이나 '충심'과 같은 덕치의 핵심적 가치가 몰각된다는 점, 공자의 정명론의 성립범위를 축소시킨다는 점, 그리하여 덕치의 현실적 구현체인 왕도정치의 중요한 내용인 ’혁명론‘이 성립될 여지가 없어 이론적 단절을 경험케 된다는 점에서 큰 한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급한 문제점들은 잘못된 프레임의 설정에서 당연히 예견되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인문, 사회과학에서 답안을 작성하는 데에는 일정한 목차를 따라서 서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의(개념)/내용/한계/효과’ 순이죠. 이렇게 써나가는 이유는 개념에서 도출되는 문제의 당연한 내용 뿐 아니라, 문제가 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까지도 대체로 포섭해 낼 수 있으며(한계) 현실에서의 적용의 문제라는 전망과 대안까지 보여준다(효과)는 점에서 문제를 모순 없이 일목요연하게 체계지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법치주의’라는 문제가 있다고 하죠. 개념과 그로부터 당연히 도출되는 분설(내용)뿐 아니라, 그 내용의 극단적인 상황이나 악용될 수 있는 이론적 맹점의 문제 등, 바로 한계의 문제 -한계는 내용의 그림자이자 동전의 뒷면인 것이죠. - 및 거기에 제도의 치유책이나 현실적 적용이라는 효과의 설명이 더해질 때, 그 제도의 온전한 프레임이 갖추어 지는 것입니다. 온전한 프레임이라고 하는 이유는 동전의 앞면만 가지고 동전이라고 할 수 없듯이 실제로 시험에서도 과락이 나오니까요. 그러니 교수님께서 설정하신 프레임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입증하겠습니다. 김영호외저 <논어의 종합적 고찰>에서 p165에는 君君臣臣父父子子 라는 “공자가 말하는 ‘정명‘은 단순히 ’직위의 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명론은 오히려 그 직위에 부합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그것을 시정해야 한다는 의미, 즉 정치적으로는 혁명의 의미를 아울러 내포한다.”라고 ’혁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계’나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교수님의 프레임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정명을 져버린 폭군에게 돌려줄 것은 복종이 아니라 혁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혁명은 복종의 자발성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혁명은 자발적 복종을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복종은 상대적이라는 겁니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임금의 덕성유무에 좌우된다는 의미인 것이죠. 백성이 혁명의 주체인가에 대한 질문이 가능하지만, 어디 성인 혼자 혁명한답니까? 설령 성인이 적극적 주체가 된다고 해도 백성의 뜻을 담아 성인이 혁명하는 것이지요. 이 점은 김교빈저 <동양철학에세이> p174에서 “혁명주체에게 민중의 뜻에 근거한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교수님의 프레임에서는 자발성에 기초한 상대적 복종이 들어설 여지가 없죠. 성군이 전제되니까요. 그러나 교수님의 프레임은 한계와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일면적 진리만 담지한 프레임일 뿐입니다. 상기한 학자들의 덕치에 대한 견해를 고려한다면, 프레임은 확장되어야 마땅합니다. 덕치는 혁명을 내포한 개념이며, 군주는 폭군의 가능성까지를 고려하여야 하며 당연한 결과로 복종은 자발성에 기초한 상대적 복종이 되는 것입니다. 성군에게야 당연히 복종해야 되겠지만, 폭군에게는 복종의 자발성이 상실되어 복종이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 복종을 성군에 한정하여 이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혁명은 곧 상대적 복종 아니겠습니까?
‘충심으로부터의 복종’을 ‘절대적 복종’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이건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오해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합한다면 그야말로 형용모순입니다. 폭군을 만나 복종의 자발성이 사라지면 충심도 사라질 것이고 충심이 사라지면 복종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러니 절대적으로 복종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인이 불만 붙이면 혁명으로 가는 겁니다. 확장된 프레임에서는 ‘충심=자발성=상대적=혁명가능성’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리합니다. 교수님의 프레임 선택은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보다 지나치게 협소합니다. 절대적 복종을 밀고 나가시려다 보니 그 프레임에 갇혀 버리신 것 같습니다. 더하여 절대적 복종을 자발성이나 충심과 조합하는 것은 기표가 기의를 배반하는 예인 것입니다. 자발성은 상대적 복종과 이에 따른 혁명을 전제한 개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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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고전 9번. 교수님의 덕치에 대한 프레임은 오류입니다.
동서양고전 9번. 교수님의 덕치에 대한 프레임은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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