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터

2024. 05. 03.

홍유릉에서...

글쓴이: 서진희 날짜: 2007.12.23. 17:41:53 조회: 513 글쓴이IP: 59.9.81.235

/홍유릉에서.../

누가 이리 곱게 비질을 해 놓았나
싸릿비 결따라
하얀 길은 굽이쳐 돌아가고
겨울 한 낮 따뜻한 기운에
아이들 다섯은 양지바른 유릉앞에
참새들마냥 떠들어대고 있었다.

선명한 싸리결
하얀길은 차마 흐트리기 싫어
바스락바스락 뒹구는 낙엽따라
곁길로 당신에게 점점 가까이 가던 길

금천교를 건널까
이곳을 건너면 정말 이승과 저승의
나쁜 기운들이 막아지려나
살짝 눈돌려 본
금천교밑 응달엔 첫눈올 때 쌓인 흰 두엄도
아직 녹지 않고 있었다.
절대 풀리지 않을 성 싶은
당신마음은
어디쯤에 훠이훠이 풀고 있을까

녹원에 흩뿌려진
당신의 마음은
그 불길에도 다 태우질 못해
올해도 국립극장 공간속
창랑한 음성으로 되살아났다지만
당신을 정작 만난 건
금천교를 지나
말라 비틀어져가는 누런 금잔디 언덕이였다.

뭐라 얘기 하나
입안에 맴돌기만 할 뿐
다시 돌아나서던 길

당신이 올 때부터
함께 하던
가문비나무는
이리저리 틀어지고 휘어져
당신 심장인듯
몸통은 너덜너덜
찢기어진 헝겊마냥 나풀대고 있었다.

붉게 타던 홍유릉의 잎새들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으로 떨어지면
홍유릉에선 절대 썩지않는다고 누가 말했나
그 날 새벽
당신의 저민 가슴 태워지듯
홍유릉 낙엽들도 차마 썩을 수 없어
훨훨 불길에 타야만 하는 것인가

그래도
그래도
당신과 함께 하던 많은 소나무들은
빛바랜 푸른색을 하늘에 머리두고
서 있더만

밑둥마다
당신가슴인가
여기저기 뻥뻥 뚫린 구멍으로
찬바람만 솔솔 드나들고 있었다.

(낮에 홍유릉 산책을 갔었어요...명성황후가 잠든 곳...소나무재선충을 예방하기 위해 소나무 밑둥마다 수 십여개씩 드릴로 구멍을 내어놓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