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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02.

KBS [역사 스페셜] 방영중지 반대서명

글쓴이: 장양우 날짜: 2003.06.10. 23:45:35 조회: 726 글쓴이IP: 211.59.163.141

KBS에서 방영해왔던 <역사 스페셜>(진행: 유인촌)이 폐지된다고 합니다. 이거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인지… 그나마 티비 프로 곳곳에다 쇼프로, (뻔한 내용을 버전만 바꿔놓은) 드라마로 도배를 해놓고 있는데,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물을 다루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의 자존(自尊)은 현대보다는 그 이전 시대에서 더 적절하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 과거를 애써 눈감아야 되는 거죠! 지금보다 훨씬 나은 문화와 역사가 얼마나 많은데…

<역사 스페셜> 홈에 들어가 보니까 방영중지 반대한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어떤 분은 유일하게 보는 티비 프로가 <역사 스페셜>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분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자식이 우리 나라의 역사를 잊을까 봐 역시 이 프로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적지 않은 걸 보고 그나마 위안을 얻고 삽니다. 그 프로가 좋은지 안 좋은지를 평가해보고 싶으시다면 http://www.kbs.co.kr/history/vod.shtml 에 들어가서 170회 <천년 전 이 땅에 또 다른 문자가 있었다>나 123회 <무령왕릉 발굴 30주년 - 아직도 풀리지 않는 다섯가지 의문>을 보시거나 왼편에 있는 <수상작 collection>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KBS에서 <역사 스페셜>을 방영 중단한 데 대해 반대서명을 한다고 합니다. 그 프로의 중요성을 아시는 분은 http://www.oneplusyou.com/history/ 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다른 홈피에 이 사실을 알려주신다면 더욱 감사드리겠습니다. 다음에 쓴 글은 제가 <역사 스페셜> 홈피에 남겼던 글을 약간 손질한 것입니다. 변변찮은 글이니, 그 프로를 즐겨 보시거나 저간의 사정을 잘 아시는 분은 굳이 다음 글을 읽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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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불감증은 한국의 '죽음'으로 귀결될 것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우리 역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인상깊은 장면이 나온다. 호리호리한 체구를 한 유태인 노파가 "역사와 문화가 쓸 데 없다구?" 라는 불만 섞인 듯한 말을 토해낸다(정확한 인용인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지만 그 의미 파악에는 자신 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윗왕의 절정기를 구가한 유태의 역사와 구약성경/탈무드의 유산이 잊혀졌다면 유태인은 더 이상 지금의 유태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가 국민에게서 잊혀질 때, 단언하건대, 그 나라는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좀 더 넓게 말한다면, 세계 역사·문화의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역사가 잊혀질 때 인류 혹은 인간도 사라져간다.

KBS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내가 높이 평가하는 <역사 스페셜>은 일반인에게 한국사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프로를 보았을 때, 거기에서 진한 감동을 나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나라가 과거에 그렇게도 발전된 문화를 누리며 살았구나!' 나 이외의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줄로 안다. 한국의 자존심은, 내 생각으로는, 조선 후기 이전의 역사에 있다. 비참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고 신경질 안 낼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리고 자괴감이나 피해의식을 안고 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치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을 때라야만 우리는 바른 한국인상(韓國人象)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의 지적처럼 우리 나라가 그나마 이 정도의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KBS가 이 중요한 프로를 중단한다는 것은 한국인의 자존심과 문화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에게 흥미로운 추리형식으로 특정한 주제를 풀어나가면서도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해주는 진행방식은 언제 볼 때도 신선하기만 했다. 방송의 소재가 부족하다거나 진행방식이 진부해서 중단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소재 면에서는 일반인의 역사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마땅히 알아야 했었던 역사적 주제(혹은 소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 나라 역사가 5000년을 거쳐왔는데 소개가 고갈이 됐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시청자들 중에 진행방식이 매양 같아서 흥미가 떨어진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혹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프로는 계속 진행하되 전과는 다른 진행형식으로 천천히 바꿔가면 될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권력'에 밀려 방송을 중단한 것이라고 하는데, 혹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사태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포스트모던 시대로 접어들면서 영상문화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졌고 그러한 매체의 활용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열려있다고 생각된다. 역사를 '본다'는 것, 더군다나 컴퓨터를 통한 가상 영상이라는 도구를 역사 교육에 활용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적잖이 어필될 수 있다. 역사는 고고학자에게 발견되고 전문연구자에게 연구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다. 발견이나 연구 결과가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소통되었을 때라야만 의미있는 역사로 남을 것이다. 과거 한국의 역사는 학자들과 같은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소통이 단절될 때 한국인의 정체성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과거 유물처럼 세월의 풍화에 못 이겨 이내 사그라질 것이다. 현재와 과거 역사의 지속적인 가교 역할을 해줄 것을 KBS에게 기대한다. 부디, <역사 스페셜> 방송중단 건은 재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