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일났다! 짝꿍아, 보리 좀 꿔줘!"
혼식 검사의 날 기억 나세요?
이명옥(mmsarah) 기자
학교에 들어선 순간 혼식 검사날인 것이 생각났다. 뭔가 짚이는 게 있어 도시락 뚜껑을 슬며시 열어 보았다. 이런! 하필이면 혼식 검사날인 오늘따라 밥엔 보리쌀 한 톨이 없다. 화장실 청소는 정말 싫은데.
급히 짝꿍을 부른다.
“야, 오늘 너 보리밥 싸왔어? 나 보리 좀 몇 개만 빌려줘.”
"나도 보리 조금이야. 몇 개만 가져가야 돼."
"알았어."
그렇게 앞뒤 급우들에게 보리 몇 개씩을 빌어 여기저기 심어 놓고는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하필이면 오늘 보리가 하나도 없는 밥을 싸주실 게 뭐람!”
속으로 아무리 투덜거려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드디어 담임선생님께서 출석부와 지도봉을 들고 들어오셨다.
“자, 혼식 검사를 실시한다. 모두 도시락 꺼내서 뚜껑 열어라.”
'제발 통과되기를!'
드디어 나의 차례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유난스럽게 크게 들리는 것 같아 선생님이 눈치 채실까 괜스레 마음이 더 조인다. 선생님은 도시락을 흘끗 보시더니 “다음엔 보리 좀 더 넣어” 하시고는 그냥 지나가셨다. 휴, 다행히 화장실 청소 면했다.
중학교때 일주일에 두 번씩 있었던 ‘혼식 검사날’의 해프닝이다. 197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분들은 대부분 ‘혼분식 장려의 날’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이야 건강을 생각해서 현미며 보리쌀이며 온갖 잡곡을 섞어 밥을 짓는 것과 풍성한 야채 식탁이 웰빙으로 통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흰쌀밥에 쇠고기 장조림이면 최고인 줄 알았고, 그나마 정부미가 아닌 일반미 밥을 싸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일반미를 먹던 집들은 혼식 검사를 위해 일부러 보리쌀을 사서 밥을 지어야 했으니 어쩌다 위와 같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혼식 검사를 철저하게 하는 선생님들은 도시락을 거꾸로 뒤집어 보라고 해서 보리가 섞인 정도를 검사하기도 했고, 혼분식 장려 기간이 되면 포스터와 표어를 작성해 시상을 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혼식 검사를 해서 동그라미와 엑스로 선명하게 구분을 해서는 교실에 붙여놓는 것은 기본이었다.
당시 정부미라고 푸슬푸슬 하고 좀 오래되면 냄새 나는 쌀이 있었는데, 그 정부미에는 아예 일정량의 보리쌀이 섞여 나왔으니 혼식 검사는 어쩌면 정부미를 먹으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부미에 돌이나 겨, 쭉정이가 섞여 원성을 사기도 했었으니 먹을거리에 대한 문제점과 비양심적인 고질병은 오래도 가는 셈이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급식을 시작했다. 급식이 보편화됨에 따라 현장학습 전날 김밥판매점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문을 열고 수백명 아이들의 점심 김밥 주문을 받는 풍경이 기본이 되었다.
내가 엄마로 도시락을 싸준 것이라곤 유치원에서 무슨 행사처럼 싸가던 것과, 입맛이 까다로워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김밥을 먹지 않던 아들의 소풍날인 현장학습날 싸준 도시락 서너 번이 전부다. 그나마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여느 아이들처럼 현장학습 날마저 매식을 한다고 점심값을 가져갔다.
시어머니까지 가족이 4명인 우리 집만 해도 다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까지 급식으로 먹고 오고, 주부인 나도 점심이나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구조와 생활양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학교 급식에 의존하는 일이 여성의 '일 기피증'이라거나 엄마의 자격 요건, 모성애 결핍이라는 엉뚱한 방향과 연관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사회 구조가 변해 너도 나도 자의든 타의든, 타인의 서비스를 통해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까지 추억의 도시락이나 엄마의 손맛에만 매달려 살 것인가.
사회가 변했는데 급식이나 음식문화만 과거로 되돌리려 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어디서든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사회 곳곳에 안전장치가 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홍콩은 일반가정의 매식률이 무척 높다고 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의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오히려 매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우리도 사회 변화에 발맞추어 믿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의식을 전환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
|
"큰일났다! 짝꿍아, 보리 좀 꿔줘!"
'영화로 생각하기'이 과목의 영화로 인셉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