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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17.

천원으로 살 수 있는 행복

글쓴이: 이명옥 날짜: 2006.08.14. 16:31:52 조회: 447 글쓴이IP: 211.44.152.219

천원으로 살 수 있는 행복
8000원 없어 가스 끊기던 그 시절... 그때 내게 천원이 있었다면?
이명옥(mmsarah) 기자

당신은 '천원'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신에게서 하루에 8만6400초라는 귀한 시간을 똑같이 선물로 받는다. 누군가는 1초를 1원으로 환산하여 누구나 8만6400원의 자산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지금 당신의 호주머니에 단 돈 백원도 없다고 절망하는 이가 있는가? 아니다. 당신은 이미 신이 공평하게 나눠 준 8만6400원의 자본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0원이나 마이너스의 삶을, 혹은 30배, 60배, 수백, 수천 배의 순이익을 내고 하루를 마감하기도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어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행복한 하루를, 어떤 이들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비통함이나 절망감에 빠져 힘든 하루를 보내기도 하는 것처럼.

*결혼과 함께 찾아온 가난... 하나에 2원짜리 부업을 하던 시절**

91년, 10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빈털터리 백수로 무허가 판자촌 시어머니 집으로 들어가 살던 적이 있다. 2년의 백수생활로 당시 한 통에 8000여 원 하던 가스가 끊어져 밥을 못해 먹을 정도가 되어서였다.

서른이 훌쩍 넘어 결혼을 한 나는 결혼 전까지 교사이신 부모님 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슬렁슬렁 여행이나 다니고 음악회, 영화나 보러 다니며 살았다. 그야말로 세상 물정이나 경제관념은 백치에 가까웠던 것이다.

내 수준에서는 충분한 용돈을 벌어 쓰고 있었고 경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지라 수백만 원을 그저 보통 통장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쓰거나, 여행경비가 모자란다고 징징거리던 지인에게 통장째 내어 주곤 원금이나 돌려달라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현실감각이 없던 내게 결혼과 함께 찾아온 빈곤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수중에 단 한푼의 비상금도 남겨두지 못했던 나의 결혼 생활은 비참했다.

큰집인 시댁의 제사는 1년에 10여 차례나 되었고, 친정은 서울이어서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결혼 전 내 한 달 수영장 회비와 차비 정도였던 8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했다.

남편의 건설현장 사업은 20개월이 지나자 끝이 났고 난 아이 하나가 딸린 몸으로 빈털터리가 되어 시어머니의 무허가 판자촌으로 무조건 짐을 싣고 가게 되었다.

처음엔 일자리를 구하나보다 했던 것이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석 달이 되더니 열 달, 스무 달…, 아이 아버지는 도대체 새 일을 구할 생각도 없이 술을 마시며 뒹굴고 있었다. 난 길거리서 실밥을 뜯고 있는 아주머니들조차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당시 난 한 개에 2원에 불과한 부속품 작업, 새벽 2시까지 눈이 빠지게 꿰매야 한 달에 몇 만원이 나오는 머리띠를 만드는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나마 그렇게 힘들게 한 알량한 부업비 몇 만원마저 떼어먹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고된 일에 훈련된 적이 없는 데다 아이까지 어려서 파출부나 설거지 같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서서 하는 일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우연히 내 처지를 알게 된 고등학교 동창이 초등학생 수학 과외 자리를 알아봐줄 때까지 난 매일 지옥 같은 마음을 다스리려 새벽기도를 다녔다. 내 안의 미움과 원망, 살의,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어내고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구를 떨쳐 버리기 힘들어 택한 방법이었다.

돈이 없어 걸어서 가느라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나서노라면 제일 먼저 아침을 여는 환경미화원들이나 신문배달원, 우유 아주머니나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지만 컴컴한 새벽에 누군가와 마주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던지. 난 눈만 빼꼼히 내놓고 커다란 숄로 머리를 온통 휘감고 다니곤 했다.

토큰 하나 살 돈이 없던 내가 50여 일을 매일 걸어서 새벽기도를 다닌 것은, 손가락 하나 자신의 힘으로 들 힘이 없던 내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살아낸 시간들 덕에 10개월 된 어린 아들아이를 버리지 않은 엄마로 남은 것에 감사한다.

*그 시절 내게 천원이 있었다면...**

몇 년 전 <해피데이스>라는 작은 책자에 자유기고가라는 이름으로 두세 꼭지의 글을 기고했었다. 대부분 주제에 맞춰 글을 써 주거나 인터뷰를 해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꽤 알찬 내용의 그 책은 경제성을 이유로 폐간이 되고 말았다.

그때 내게 지면을 할애해 주던 기자가 풀뿌리 운동 단체가 펴내는 소책자 <천원의 행복>의 편집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으며 더불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이야기나 작은 소품에 얽힌 에피소드를 글로 담아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천원의 행복'이라……. 그 당시 만일 내게 천원이 생겼다면 난 과연 그 천원으로 어떤 행복을 사려 했을까? 150원이던 토큰을 사서 지루한 길을 걷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니려 했을까? 아니면 980원하던 1ℓ짜리 우유를 사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아이에게 달려갔을까.

그가 말해 준 책 제목인 '천원의 행복'은 단돈 백원도 없던 날이 많았던 91년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당시와 비교하면 훨씬 풍요로워진 지금도 왜 여전히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며 단돈 천원만큼의 상대적 행복감도 맛보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망각의 동물인지라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망각이 너무 깊기 때문일까?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도 몸도 더할 수 없이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는 작은 원고료로 청탁을 한다는 사실을 몹시 민망해 했지만 이미 내게 분에 넘칠 만큼 값비싼 원고료를 건네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원고 마감일인 이번 주까지 아마도 난 '천원의 행복'이 가진 가치를 오래오래 곱씹어야 할 것 같다.

2006-08-1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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