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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통에서 길어 올린 시심
[서평] 양정자 시집 <가장 쓸쓸한 일>
이명옥(mmsarah) 기자
그녀의 시는 동네 아줌마를 만나 듣는 소소한 일상의 수다나 넋두리 같다. 두 아이의 엄마며 중학교 영어 교사인 그녀에게 설거지를 비롯한 가정에서의 가사 노동은 결코 비껴가거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요, 일상적인 삶의 과정이다.
아마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맞벌이 주부들의 모습이 그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걸레질, 설거지, 재래 시장에서 만난 노인, 때론 새벽에 낯선 술친구를 끌고 들어와 술상 차리기를 강요하는 남편과의 짜증스러운 일상의 단면까지도 꼼꼼하게 기워 조각보 같은 아름다운 일상으로 만들어 낸다.
아무리 아름다운 천 조각도 조각 자체로는 그저 허접한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 조각들이 이어져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불이나 보자기가 되면 사람들의 감탄과 환호성을 받는 것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단편을 의미있는 삶으로 곱게 엮어 낸다. 삶이란 바로 조각난 삶의 편린들을 뜯어 맞추는 시간 속의 퍼즐놀이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너는 너만의 나는 나만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생의 그림을 그리다 가는.
삶이란 퍼즐맞추기에서는 아무리 작고 소소해 보이는 조각일지라도 귀중한 생의 한 조각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일상을 시로 엮는 그녀는 할머니들이 손으로 누벼만든 조각보처럼 누더기 같은 일상에서 빛나는 삶의 편린들을 헤집어 내어 삶의 맛, 향기, 실체가 드러나는 맛깔스러운 시를 빚어내고 있다. 그래서 구질구질한 일상은 어느덧 은은한 빛을 발하는 값진 보석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남편이 새벽 2시에 만취되어 데려온 낯선 술친구
잠자다 꿈속인 듯 벌떡 일어나 술상 차려주면서
내일 수업도 많은 날인데 분이 났지만
만취된 그 술친구
그 밤에 날 위해 기어이
한 곡조 <심청가>까지 불러주겠다나
식구들 이웃들 잠 깰까 봐 창문 꼭꼭 닫아도
마디마디 밤을 끌고 달아나는
기차 화통소리 같은 슬픔의 저 노랫소리
이 밤중 복장 터지게 노래 불러야만 하는
당신은 대체 누구이고
나이 늦도록 술에 절어 사는 내 남편은?
그리고 이 밤중 노래우박 받아야 하는 나는?
우리들 삶이 이렇듯 참 쓸쓸하고 서러운 것이라네
얼씨구 좋구나 망할 놈의
이 멋진 밤
-멋진 밤 전문-
'망할 놈의 멋진 밤'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에 담긴 진실에도 불구하고 저 시를 읽는 누군가는 그 멋진 밤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위해 노래우박을 퍼부어 줄 남편의 낯선 술친구를 그려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힘든 일상을 구차함이 아닌, 유리처럼 투명하고 유쾌하게 나타낸 시인의 눈길은 늘 따스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결코 구질구질하거나 쓸쓸하지 않다.
비록 설거지통이지만 구정물이 아닌 샘물을 길어올리는 시인의 시심(詩心)만은 가을 하늘처럼 투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쓸쓸한 일/양정자/문학동네/5000
2006-10-16 09:21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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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통에서 길어 올린 시심(詩心)
졸업 리허설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