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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17.

불행은 행복과 샴쌍둥이다

글쓴이: 이명옥 날짜: 2007.02.28. 11:04:17 조회: 441 글쓴이IP: 211.208.142.49

불행은 행복과 샴쌍둥이다
[서평]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
이명옥(mmsarah) 기자

사실 원제목을 그대로 번역한다면 ‘경이로운 불행’(Un merveilleux malheur)정도가 정확할 것이다. 심리학자인 보리스 시륄니크는 정신, 심리의학서에 왜 굳이 저런 역설적인 제목을 고집했을까? 어쩌면 그는 독특한 자신의 경험상, 불행은 행복과 샴쌍둥이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주 끔찍한 의사 죽음을 체험한 유태계이다. 겨우 6살에 나치에 의해 부모와 떨어지게 되며, 결국 부모는 나치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그는 수용소에서 단절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그가 정신의 상흔을 더듬어 치유하는 일에 골몰하고, 불행을 떨쳐버리고 행복을 복원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끔찍한 정신적·육체적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발설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은 이론과 지식으로 재구성해내는 어른들의 기억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고 한다.

어른의 기억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적으로 재구성되므로 풍부해진다. 사회적으로 재구성될 때 사건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세부사항을 기억 속에 간직한다.

인용문은 어른의 사고가 진실을 어떻게 각색하여 사회적 거름 장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어른들은 일단 논리적으로 정황을 꿰어 맞추어 이해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은 각색이지 진실이 아니다. 이른 바 거짓 기억인 것이다.

교묘한 사회적 통제장치를 통해 진실을 원천봉쇄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과거의 비밀 속에 고립시켜 가두어 두는 행위는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발설하진 못하는 이발사의 고통을 연상케 한다. 기성세대는 진실이 드러나는 일을 몹시 껄끄러워 한다.

상처받은 인간에게 재갈을 물리고 고통분담을 회피하는 사회는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또 다시 깊은 상처를 입힌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행해지는 아동학대와 전쟁, 강간, 폭력 등은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의해 묻혀져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망가진 부분을 은폐하거나 치유 없이 대충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복원하는 과정을 탐색하고 완전히 치유되어 회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경이로운 복원력이란 없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렇다. 죽음과 유사한 불행이나 깊은 상처가 어찌 경이롭게 치유되고 회복될 것인가? 그러나 깊은 상처를 지닌 저자가 상처와 아픔을 딛고 복원력(resilience)있는 사람이 되었기에 남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기에 불행에 ‘경이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내밀한 추억은 두 번의 사회화를 거쳐 형성된다. 첫 사회화에서는 뇌에 자취를 남기는 생태적 환경이 우리 기억을 온통 베어버린다. 두 번째 사회화에서는 주변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정서적으로 충전됨으로써 비로소 추억을 만든다. 고립된 아이들은 추억이 없다.

그는 추억은 내면 깊은 곳에 남긴 자취와 우리 자신이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것 사이의 대화라고 말한다. 그는 대화를 위해 사회적으로 타협되거나 세뇌된 오용된 기억을 경계한다. ‘기억이 오용되면 과거에 사로잡힌 포로 상태로 남는다’는 그의 말은 ‘모든 이야기는 사회적 타협’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가 가슴에 꼭 담아둬야 할 부분이다.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처를 드러내야 치유의 첫걸음이 시작되지만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닌 정신대 할머니, 전쟁, 강간, 근친상간의 폭력으로 아파하는 영혼들이 상실감을 메우려 광인처럼 살거나, 그저 호흡만 하는 죽은 자로 살도록 버려둬서는 안 된다.

언론과, 권력과 사회가 더 이상 그들의 불행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불행에 숨겨진 놀라운 치유력에 힘입어 불행을 딛고 행복의 무지개 속으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함께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다.

먼저 그들의 입에 물렸던 재갈을 풀어주고 그들의 굴절되지 않은 고백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손길로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야만 그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보리스 시륄니크 지음. 임희근 옮김/북하우스/11,000

2007-02-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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