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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토요일 저녁에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 한 분이 야채 뭉치를 집 입구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가셨다. 지난 번 동구릉에 함께 산책갔다가 선생님이 이번에 분양받아 씨앗을 심어놓았다는 동구릉 입구의 주말 농장에는 일주일 먼저 심은 다른 사람들 것은 벌써 손가락 한 마디씩은 올라왔는데 선생님네 것은 아직 싹도 틔우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었다. 그것이 벌써 자라서 손바닥 만한 상추, 쑥갓, 아욱, 이름 모르는 쌈 싸먹는 야채들로 변해서 내 집 입구에 왔던 것이다.
그날 밤 고기를 먹지 않는 딸아이와 함께 마늘을 콩콩 다져 넣고, 파, 청량고추, 고추가루, 고추장을 얼마 전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된장 산 거와 함께 참기름을 넣고 쌈장을 만들어 아주 맛있게 쌈을 싸서 먹었다.
그런데 그 야채양이 너무 많아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어제 낮에는 혼자 꺼내서 대충 설렁설렁 흙만 털어내고 먹던 참이였다. 한참 먹고 있던 중에 씻은 야채쌈 바구니에서 스물스물 커다란 집게벌레가 한 마리 기어나오는 것이였다. 먹다 말고 녀석을 싱크대 배수구에 넣고 물을 틀어 우선 기절을 시켜놓고, 마저 쌈을 다 싸서 먹고는 싱크대에 그릇을 넣으려는데...녀석이 다시 살아나서 싱크대를 기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메뚜기를 잡으러 논에 들어갔던가, 뭔 일로 아이들하고 맨발로 논에 들어갔다가 나오던 순간 기절할 뻔 한 적이 있었다.
종아리까지 덕지덕지 붙은 거머리 떼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주위의 풀들을 뜯어 문질러 대었지만 녀석들은 잘 떨어질 생각도 하지 않았었던...결국 좀 더 나이 많은 함께 간 동네 언니가 울고 불고 하는 날 진정시켜놓고 하나하나 일일이 떼어 준 일이 있었다. 누구나 기어가는 동물을 좋아할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그날 이후로 나에게는 꾸물꾸물 기어가는 모든 동물들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습성이 생겼다.
비가 와서 지렁이들이 나와 있으면 걸어가는 밑을 샅샅이 쳐다보며, 혹시나 신발에 밟힐까봐 겅중겅중 뛰는 버릇이 생겼던 것도 다 꾸물거리는 동물들이 무서워서였다.
그런데 녀석은 꾸물거리지도 않았는데...순간 싱크대에서 기어나와 집안을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안되겠어서...젓가락으로 녀석을 꾸욱 집어선 녀석을 다시 보지 않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화장실 변기통에 던져버렸다. 녀석은 순간 물속에서 버둥거렸는데...아마 자기의 운명을 직감하지 않았을까...
다음으로 내가 한 일은 물 내리는 버튼을 꾸욱 누른 거였다...
조금 전 일 나가기 전에 다시 남은 야채쌈을 먹기 위해 야채를 씻고 있는데...김치냉장고 온도가 너무 강했는지 밑에 있던 쑥갓이 얼어 있었다...순간 생각하길, 이런 온도에선 설마 또 다른 녀석들이 있다해도 살아있지 않겠지 하면서...야채를 조심조심 씻어, 방금 남은 야채를 다 먹었다...
먹으면서 내내 어제 내가 한 행동이 생각나는 것이다.
녀석도 살려고 이 세상에 나왔는데...화장실 변기통 안에서 허우적거리던 녀석이 자꾸 생각이 났다.
며칠 전 아기 돼지를 잔인하게 사방에서 잡아당겨 찢어 죽인 사람들과 나는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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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벌레에게도 천도제를...
어느 잠언시/퍼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