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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30.

보이지 않는 '덫', 세계화

글쓴이: 이명옥 날짜: 2008.07.13. 01:14:34 조회: 434 글쓴이IP: 211.44.153.70

▲ 닥쳐라, 세계화 반세계화, 저항과 연대의 기록
ⓒ 당대 닥쳐라 세계화

보이지 않는 '덫' , 세계화
<닥쳐라, 세계화>

이명옥 (mmsarah)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은 제국주의 물결이 그 검은 촉수를 확연하게 드러내기 전까지 개발도상국과 제 3세계 사람들 대부분은 문화, 경제 식민지화를 부추기는 영어열풍, 무역협정 등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말이 지닌 엄청난 음모를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찌하든 서구 문명이 가져다 준 편리함을 더 많이 누릴 바람으로 영어를 더 잘 배우려고 안간힘을 쓰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언제든 삶의 터전을 옮길 자세가 되어 있다.

<닥쳐라, 세계화>는 세계화라는 보이지 않는 ‘덫’과 싸우는 현장 활동가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반세계화를 향한 저항과 연대의 기록이다.

책을 엮은 저자 엄기호는 2001년 필리핀에 사무실을 둔 국제가톨릭학생운동 아시아. 태평양사무국의 사무국장으로 3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연대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스스로 개발해 성장시켜왔으며 그 활동 기록을 책으로 담아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 관심을 갖게 하는 것, 필요한 사람들과 기관 이곳저곳을 적절하게 묶어 엮어 주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책은 크게 1. 망명자들의 세계화, 2. 국가의 경계와 새로운 중세, 3. 공격받는 시민들의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현장 활동가들의 증언이나 국제회의의 토론 내용이 담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들이다.

세계화라는 보이지 않는 ‘덫’에 결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이들은 대부분 제 3세계의 농민들, 어린아이와 여성들이며 1%를 제외한 모두가 잠정적 먹이가 된다. 특히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남성의 노동력과 달리 무임금의 노동인 가사노동, 출산, 때론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성의 삶은 더욱 비참하기만 하다. 굶지 않기 위해 이르게는 서너 살부터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은 미국과 서구 열강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제국주의로 둔갑시키고 전 지구를 자신들의 통제 안에 두고 감시하는 빅 브라더들이다. 무역은 더 이상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소박하게 맞바꾸는 행위가 아니다. 그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괴물과 그 괴물의 충실한 충견 노릇을 하며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1%에서 10% 이내의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특히 독재국가일수록 그 정도는 심화되어 신자유주의는 오로지 가진 자를 위한 수단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부자들이 물을 막았다.

홍수가 논을 덮쳤고 어머니는 어려움에 빠졌다.

부자들이 강을 막았다.

홍수가 지붕까지 차올랐고, 어머니는 집 없는 거지가 되었다.

저것이 바로 개발이 가져오는 재앙의 실체다. 삶의 터전인 강과 산과 들, 물과 땅을 모두 빼앗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한 끼의 빵을 얻기 위해 유일한 재산인 자신의 노동과 시간을 싼 값에 저당 잡힌다. 그러면서 서서히 몸과 마음이 가난에 상하고 찌들어 간다. 식량과 천연자원 수탈, 무분별한 개발, 강과 물의 사유화, 노동력 착취는 신자유주의가 제 3 세계를 강탈하는 방법들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은 여성들의 삶을 더 파괴한다. ‘돈’이 되지 않는 노동은 노동으로 치지 않는 풍토가 여성들의 가사노동이나 대부분 여성들의 일 자체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여성은 이중삼중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 노동의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슬럼가일수록 여성들은 온몸과 시간을 바쳐 한 끼의 양식을 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여성들의 일에 보상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른바 일만 있고 보상은 없는 노동에 생의 대부분을 내맡기고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다. 한 끼 식사를 구하기 어려울 때 정당한 노동의 터전을 얻지 못한 여성들은 '노동자 없는 사업'이라는 성매 매와 이주노동 가사노동자로 전락한다.

세계화, 무역자유화라는 ‘덫’에 걸려 심음하다 죽어가는 일은 제 3세계가 가장 심각하지만 개발도상국이나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덫’,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끝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의 삶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밝혀들고 행동해야 하는 까닭

광우병 소고기로 촉발된 세계화라는 보이지 않는 ‘덫’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우리의 바람을 행동으로 보인 촛불이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탁상회의에서 논해지는 이데올로기기가 아니라 개인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 농민 1천명이 홍콩에서 무작위로 체포되었을 때 홍콩의 많은 잠자던 양심들이 깨어나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자던 홍콩 NGO 활동가들을 흔들어 깨운 한국 농민들의 홍콩 시위와 고 이경해 열사의 죽음에 대해 홍콩의 활동가 칭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한국 농민들을 도운 것이 아니라 한국 농민들이 홍콩 활동가들의 마음을 일깨웠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NGO가 할 수 있는 일은 요구하고 협상하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한국의 시위대는 민주주의는 삶이라는 것을, 직접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홍콩의 시민운동은 한국 시위대에 크게 빚졌다."

바로 저 부분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 경제, 교육, 사회복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삶의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작 행동과 실천에 무관심하다. 그러면서 세상이 왜 이렇게 더디 바뀌느냐,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낙담한다. 단 한 걸음도 스스로 내딛지 않으면서, 단 한 번도 현장에서 실체를 접해보지 않으면서 ‘세상이 왜 이리 변하지 않는가?’ 반문할 자격이 있을까?

달팽이처럼 칩거한 현대인들의 소심한 일상을 일깨우는 일, 그것만으로도 촛불을 밝혀 높이 들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닥쳐라, 세계화/엄기호 지음/ 당대 /13,000원

2008.07.12 13:57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