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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30.

'기린의 춤'을 배워 볼까요?

글쓴이: 이명옥 날짜: 2008.07.21. 19:56:56 조회: 458 글쓴이IP: 211.44.153.70

'기린의 춤'을 배워 볼까요?
[서평] <내 아이를 위한 비폭력 대화>

이명옥 (mmsarah)

두 가지 사례

아들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급식당번이 되어 학교를 갔다. 배식을 마치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청소까지 마쳤을 때 선생님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현이가 나물을 안 먹는데 그 버릇을 고쳐드릴까요, 그대로 둘까요?"

나는 선생님께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로 두세요. 억지로 먹이면 토하거든요."

선생님은 "잘 알겠다"고 답했다. 저학년 때 학교에서 나오는 나물 종류를 잘 안 먹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물을 먹기 시작했다. 만일 억지로 나물을 먹이려고 씨름을 했다면 아이는 어쩌면 나물 알러지 현상이나 학교 공포증을 지니게 됐을지 모른다.

현명하신 담임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아이는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다. 천천히 먹고 편식 습관을 지녔으며 말이 많은 아이가 어른의 잣대, 비판적 어버이의 자아를 지닌 선생님을 만나 사사건건 제재를 받았더라면 아이는 아마도 부적응증을 앓는 학교생활의 낙오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들아이와 동갑내기인 왼손잡이 손자를 둔 지인이 있다. 그 아이는 억지로 오른손을 사용하게 만들려는 선생님께 하도 야단을 맞아서 학습에 취미를 잃었을 뿐 아니라 매사에 자신감이 없이 주눅이 든 아이로 변모되고 말았다. 중학교 부부 교사인 며느리가 심각하게 휴직을 고려할 정도로 아이가 망가지고 만 것이다. 아이 엄마는 두고두고 자신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그리 되었다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어가고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한다.

어째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었을까? 아들아이는 수용적 어버이의 자아를 지닌 선생님을 만났고, 아는 분 손자는 비판적 어버이의 자아를 강하게 지닌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수용적인 아이의 선생님은 밥을 천천히 먹고, 밑바탕 색을 칠하지 않는 아이의 단점을 먼저 본 것이 아니라, 흥미 있는 일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쉴 사이 없이 떠들어대는 아이에게서 발견되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먼저 봤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잘 발현되도록 아이를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했다. 그런 칭찬과 격려로 아이는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아마도 아들 아이가 만난 선생님은 '기린의 언어'에 익숙한 분이었던 것 같다.

아이의 기를 살리고 죽이는 것이 말 한마디일 수 있음을 안다면 유치원교사, 부모, 초등학교 교사 모두 아이들이 지닌 가능성을 마음껏 발현할 수 있도록 칭찬하고 격려하는 언어 비폭력 언어인 기린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한 비폭력 대화>(군디가슐러 외 지음, 안미라 옮김, 양철북 펴냄)는 '기린의 꿈'이라는 비폭력 대화 프로젝트의 사례를 통해 비폭력 대화법과 그 효과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폭력적 대화에 익숙한 기성세대가 비폭력 대화법을 익히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폭력적 언어에 길들여져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날카로운 자칼의 이빨을 드러내고 주변의 약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왔는지 깨닫는 순간 기린의 언어를 배워 실천하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이다.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기린의 춤'과 '기린의 언어'를 통한 비폭력 대화법을 익혀 사용한다면 아이의 미래만이 아니라, 먼저 부모 자신이 지닌 상처와 열등감을 치유 받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기린과 자칼이 상징하는 것은?

기린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순해 보이는 눈, 긴 목, 아름다운 무늬 옷 등이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칼은? 아마 날랜 몸짓과 날카로움이 연상될 것이다.

저자들은 기린과 자칼을 이용해 다양한 대화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기린은 목이 길어 주위를 두루 내려다 볼 수 있다. 즉 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늘 파악할 수 있다. 또 기린은 큰 심장을 가진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린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기린은 기린 언어로 자신의 욕구나 느낌과 소통하며, 다른 사람의 욕구와 느낌을 파악해 그 사람과 소통한다. 기린은 지금 일어난 일이 욕구충족에 도움을 주는지 검토하고 욕구충족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는다. 기린은 도덕주의적 판단을 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

자칼은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구분한다. 자칼은 자기가 부정적이라고 판단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해 버린다. 어떤 행동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즉시 그 행동을 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평가해 버린다. 만일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면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생각은 분노, 죄책감, 수치심, 우울 같은 감정으로 이어지며, 대개 갈등, 공격, 방어, 사과, 용서 등의 행위를 낳는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의 이해나 소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일상생활에서 기린의 언어와 자칼의 언어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어떤 식의 대화를 선택 할 것인지 선택해 보기로 하자.

자칼언어 기린언어

게을러서 오늘도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았군(평가) 쓰레기통이 꽉 찼구나(관찰)

완전히 이용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해석) ~ 때문에 짜증이 난다(느낌)

너는 언제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비판) 왜냐하면 난 우리가 서로 약속한 것을

지켰으면 해(욕구)

당장 쓰레기를 버리고 와! 그렇지 않으면 왜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는지 설명해

당분간 텔레비전 시청은 금지야!(명령과 처벌) 줄 수 있겠니?(부탁)

위의 언어를 보니 나는 대부분 '자칼'의 언어로 아이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린의 언어'를 익힐 수 있을까?

'기린의 춤'으로의 초대

불쾌한 상황에 맞닥트린 당신은 대체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쾌한 일이 생기면 평가와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보자. 날이 추운데 점퍼를 입기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대개 이런저런 입씨름을 하다가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 왜 점퍼를 안 입는다는 거야. 도대체 너는 왜 시키는 대로 하는 법이 없니?"라고 힐난 섞인 비난을 하게 된다. 아침에 저런 일이 생겼다면 어른과 아이 둘 다 마음이 상한 상태가 되어 아침의 상쾌함이 사라질 것이다.

저런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비폭력 대화법인 '기린의 춤'으로 초대 받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저자는 관찰-느낌-욕구-부탁의 순으로 대화를 풀어가라고 말한다.

첫 번째 단계는 평가나 해석이 아닌 본 것, 들은 것 등 순수하게 '관찰한 사실'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평가가 아닌 '느낌'만을 이야기하는 단계다. 세 번째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과 연관되지 않은 자신의 '욕구만을 설명'하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말하는 이의 의도가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시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단계를 거친다.

저런 과정을 통해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면,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한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반응해 줄 것을부탁해야 한다. 이때에는 다른 사람과의 연관성 혹은 관계가 중요하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기분이 달라졌니?" "내가 말한 것이 도움이 되었니?" "이 말을 들으니 어때?" "자 이제 네가 말할 차례야." 이것이 바로 이해하고 이해받기에 도움을 주는 '기린의 춤'으로의 초대이다. '기린의 춤'은 자기 공감, 자기표현, 공감이 교차하는 어우러짐이다.

처음 '기린 언어' 사용을 시도하려는 교사나 부모는 갑갑함과 함께 조급증을 느낄 수 있다.

단 한 마디의 명령이나 힐난으로 끝나던 때와 달리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조급증을 누르고 인내심을 가지고 변화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세 치의 혀가 지닌 무소불위의 위력이다. 마냥 부드럽고 작기 그지없는 세치 혀가 아이에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고, 미리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거나 좌절시켜 한 사람의 생을 주저앉힐 수도 있다. 한 아이가 지닌 꿈과 가능성의 발현 여부가 우리 세 치 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비폭력 대화를 위한 기린의 언어를 배워 참된 소통을 위한 '기린의 춤'에 모두를 초대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내 아이를 위한 비폭력 대화/군디 가슐리.프랭크 가슐리 지음. 안미라 옮김/양철북/9,800원

2008.07.21 18:46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