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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 다시 찾는 날에는/
1.
청계천 가던 길
청계고가를 헐어 맑은 물이 흐르고
그 속에 자유로이 물고기떼가 유영을 한다는데
오랜 유년의 기억은 내내 시꺼먼 물줄기를 가운데 두고
얼기설기 엮어살던청계천변 하꼬방들이 헐리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요
어쩌면 청계천에서부터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기억의 실타래는 풀기만 하면 으레껏 한 곳으로 모여 들어
청계천 시커먼 똥물과 함께 뒤엉켜 있곤 하였지요
2.
엄마가 사십여 년 전에 이곳에서 살았단다
그땐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였어
냄새가 폴폴나는 시꺼먼 똥물이 내내 흘렀었지
홍수가 한번 나면 청계천변 둑방 아래에서
하꼬방을 짓고 살던 모든 삶들이
넘실대는 붉은 물살에 다 떠내려가던 날이였지
엄만 둑방 위에 살아서 그네들이 발 동동 구르는 걸 구경만 했었어.
어느 날엔가 둑방 밑 동네에서 불이 났었거든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골목 사이사이로
다닥다닥 붙은 그 하꼬방들이 휘리릭 타는 거 금방이였어
다 타버리고 재만 덩그나니 남은 그 곳을
타지 않고 남아있는 동전을 주우러
철없는 계집아이와 머슴애들은
넋잃고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었단다
이상하지, 그 청계천 시꺼먼 똥물이
그땐 반짝반짝 은빛을 내기도 했었어
어느 날부터인가
저 멀리서 거대한 콘크리트더미가 점점 하왕십리 둑방
가까이 다가왔었어
고가밑 서늘한 그늘은 한 여름 땡볕을 피하며
계집아이들이 소꿉놀이하며 놀기엔 딱 안성맞춤이였지
정말이지 그 거대한 콘크리트더미 때문에
우리집이 헐리게 된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지 뭐냐
3.
천변이웃들과 함께 부려진 단대리 드넓은 천막촌
내리 여섯 번째 또 딸을 낳은 소쩍새 닮은 여인이
돌아누워 몰래 흐느낄때
여기저기 바닥에 받쳐놓은 그릇들엔
하늘이 쏟아내는 눈물로 넘치고 있었어요
비워도 비워도 하늘은 내내 울어댔어요
울던 하늘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까
긴 한숨을 뒤로 하고 천막촌을 뒤덮은 집집마다 슬픈 사연들이
까물까물 잠에 빠져들 때 살며시 나와 본 밤하늘에는
비그친 뒤라 그런지 더욱 영롱하게 별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지요
우와!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지려고 해요.
별들이 지들끼리 잔치를 벌리든지 말든지
관심조차 없었던 당신을 두고
계집아이 하나는
쏟아지는 별들을 가슴속에 껴안고 있었지요
별마저 울지 않도록
4.
청계천을 가면
혹여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단대리 막 깎아놓은 붉은 언덕배기도
당신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던 지
함께 트럭에 실렸던 병 닦던 혜옥이네도 떠나고,
아는 얼굴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낯선 얼굴들이 보일 즈음
청계천 하왕십리 둑방 위 반짝이는 햇살아래
날카롭게 갈은 톱을 이리저리 휘어보며
희망을 갈던 당신마저 어디로 훠이훠이 떠나버렸을 때
덩그라니 빈 당신의 자리에
소쩍소쩍 밤마다 울던 한 마리 새는
꽃피는 봄이면 남한산성을 훨훨 날아다니며
붉은 나리꽃을 한 웅큼씩 가슴에 안다가
이내 머리에 꽂고 다녔음을
당신은 아셨는지...
당신 눈에 빨리 띄라고
타들어가는 붉은 가슴을 머리위에 꽂고 다녔음을.
새까만 점들로 박힌 가슴을 보여줄 이 없어
소쩍소쩍 내던 소리마저 다아 가슴 속에 삼켜버린 걸.
살을 에이는 듯 춥던 한 겨울
하늘엔 정월대보름이 휘영청 뜨던 날
그제야 다시 돌아온 당신은
하늘 따윈 끝내 쳐다 볼 생각도 없었는지
맨발로 흙바닥만 걸었던 듯
검어진 발바닥 딱딱하게 굳은 살이 박힌 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당신은 대꾸도 않으셨지요
온몸을 꽁꽁 묶고,입과 코를 다 막아도
세상이 보고 싶지 않은 듯 미동도 않으셨지요
5.
청계천을 다시 찾던 그 날,
철없던 계집아이가
제몸에 올려진 돌덩이가 버겹다고
당신에게 가슴속 무수히 던진 말을
혼자선 주워담지도 못하고내내 가슴속을 짓누르는
커다란 바위로 들어앉혀 놓은 채
혹여 당신 흔적이 있을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청계천,그 어디에도 당신은 안계시더군요
그저 맑은 물속에 물고기떼만 휘릭휘릭 돌아나고 있었어요.
다시 청계천을 찾는 날이 오면
반짝이는 햇살아래 날카롭게 간 톱날을 이리저리 휘어보며
희망도 함께 갈던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저 새롭게 흐르는 맑은 물에
내 마음 한 켠 씻어낼 욕심임을 아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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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 다시 찾는 날에는
복사꽃 핀 외딴 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