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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웨이 프롬 허>.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이 영화는 아내와 나눈 사랑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남편의 가슴않이를 통해 잔잔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다.
망각의 강 저편에도 '사랑'은 남아 있을까?
[영화]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
이명옥 (mmsarah)
내게 특별하게 기억되는 '알츠하이머'
젊은날 그와 한집에서 살면 어떨까를 염두에 두며 만나던 한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옥죄이는 가정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는 나와 한 지붕 아래 살며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혹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의 그늘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 그는 스스로 독신의 길을 선택했다.
이제 곧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60)이 코앞이니, 특별한 심정의 변화를 일으킬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에게 누군가와 한지붕 아래서 함께 눈을 뜨고 함께 잠드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생애에서 결혼을 앗아간 가정사는 바로 알츠하이머였다. 귀한 손자였던 자신을 며느리 손에 단 한 번도 넘겨주지 않던 할머니가 어느 날 치매에 걸리자 한이 많았던 자기 어머니가 가족들의 묵계 하에 할머니의 식사량을 조금씩 줄였다고 한다.
날이면 날마다 똥을 싸서 벽과 옷에 온통 똥칠을 하는 노인 앞에 누군가 스물 네 시간 붙어 앉아 수발을 들 것도 아니면서 원하는 대로 먹을 것을 드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을 그 사람에게 그 사건은 가족들이 공모하여 할머니의 생명을 단축시킨 잠정 살인이라는 죄책감으로 늘 남아 있었고 끝내 그가 가정을 꾸릴 용기를 얻지 못하게 만든 단초가 되었다.
그 사람은 사랑이 식어진 후 자신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자신이 없어 누군가를 곁에 두는 일을 포기하겠노라고 고백하면서 빨리 성욕이 줄어드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당시는 그가 지닌 상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 어쩌면 기억을 놓는 일이 중풍처럼 신체의 부분이 마비되어 똥오줌을 받아내며 수발을 드는 일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가까운 가족들에게 안겨주는 일이고, 때로는 그 사람에게처럼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영혼의 상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나 내가 방금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아니면 자신이 누구인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본인이나 가족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것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랑과 미움의 세월을 함께 해 온 아내나 남편이라면 상대방이 받는 고통의 크기는 얼마나 크고 무거울 것인가.
그 무거운 짐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군가가 짊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오히려 가족보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돌보아 줄 수 있는 시설에 환자를 두는 것이 그를 더 사랑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아닐까?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와 그 아내를 요양원에 보낸 남편이 겪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회복을 위한 노력을 잔잔한 대사로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남녀 간의 인식 코드
앨리스 먼로의 단편 ‘곰이 산을 넘어 오다’를 개성파 배우인 사라 폴리가 직접 각색하고 감독해 데뷔한 작품 <어웨이 프롬 허>는 어느날 갑자기 알츠하이머에 걸려 소중한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와 자신들의 사랑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남편의 절실한 모습을 통해 사랑, 결혼, 가족에 대해 새롭게 되돌아 볼 기회를 제공한다.
아름답고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아내와 헤어지기 싫어 결혼을 했다는 은퇴한 교수 그랜트(고든 빈센트)는 자신이 아내를 배반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은 배반한 적이 없는데 아내가 자신의 사랑을 배반했다고 생각해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모습을 바라보는 고통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는 남편 그랜트(고든 빈센트)가 젊고 생기 넘치는 제자 베로니카에게 빠졌을 때 느꼈던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커다란 불안감, 극복하기 힘든 배신감이 준 상처를 오랫동안 감추고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일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사랑을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 생물학적으로 남녀 간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삶 속에서 서로 다른 인식코드를 알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은 끊임없이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기울였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단 한 번도 상대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극중 그랜트(고든 빈센트)가 느끼는 당혹감이나 피오나(줄리 크리스티)가 느꼈던 혼란과 결핍감은 모두 진실일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피오나(줄리 크리스티)는 스스로 요양원 입원을 결정하고 그랜트(고든 빈센트)는 마지못해 아내의 요양원 입원을 받아들인다. 44년 간 단 한 번도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는 피오나(줄리 크리스티)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마지막 사랑을 나눈 뒤 뒤돌아보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부탁을 한다.
아내를 요양원에 데려다 주는 길에서 아내는 잊고 싶었던 상처와 그들이 함께 했던 장소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기억이 사라지면 모든 기억들이 하얗게 지워져요(One thing is gone and everything is gone)" 라며 기억을 잃어가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적응 기간인 한 달이 지난 후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를 만나러 간 그랜트(고든 핀센트)는 자신의 아내가 요양원에 입원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매일 요양원을 방문하여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는 남편의 마음은 한없이 아프기만 하다.
그러나 아내는 이렇게 고백한다. “적어도 그는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아요.”
저 단순한 대사 속에 숨겨진 수많은 은유와 함축성을 읽어내는 여성 독자는 극중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의 가슴앓이를 저절로 느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잉꼬처럼 반세기 가까이 살아 온 부부지만 서로 인식코드가 달랐기에 아내의 가슴엔 메워지지 않는 커다란 동공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레테의 강 너머로 흘러 보내야 하는 비극을 불러 들였던 것이다.
'사랑'이 마지막 치유제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지닌 감정 중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닌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모든 예술 작품에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고 망각의 강 ‘레테’나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가르는 스틱강마저도 ‘사랑’을 삼켜버리지는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은 사람들 중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만큼은 놓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최상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쨌거나 남편 그랜트(고든 빈센트)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지막 방법으로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아내를 떠나보내려는 힘든 결정을 했을 때,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지 못한 그랜트와의 기억의 단편들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에게 사랑의 기억을 불러오는 촉매가 되어 기억을 회복한다.
라스트 신이 식상하긴 하지만 진정한 관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남녀의 감정 인식 코드에 대해, 누군가의 현실일 알츠하이머에 걸린 가족으로 인해 받는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느껴보는 일에 대해, 또 나라면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어웨이 프롬 허>가 오랫동안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2008.04.10 08:47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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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강 저편에도 '사랑'은 남아 있을까?
복사꽃 핀 외딴 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