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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 벼랑 몰린 유족들, 영안실에서 숙식 투쟁/펌글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9.04.27. 21:06:21   조회: 376   글쓴이IP: 219.248.201.72

"조합장 장로·대통령 장로 무슨 기도할까?"
벼랑 몰린 유족들, 영안실에서 숙식 투쟁
[용산참사 100일 ①] 밀린 병원비 2억5천... 하루 2백여만원씩 늘어나

09.04.27 14:32 ㅣ최종 업데이트 09.04.27 15:58 권박효원 (10zzung)

용산참사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는 29일로 100일이 된다. 철거민 5명 등 모두 6명이 숨지는 참변이었지만 경찰은 아무런 과잉진압의 책임도 지지 않았고, 철거민들만 구속됐다. 참사 100일을 앞두고 <오마이뉴스>가 현장을 다시 둘러보고 유가족 및 대책위 관계자 등을 만나 현재 상황과 앞으로 활동 계획 등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지난 1월 20일 용산 남일당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들은 이제 차가운 냉동실에 누워 있다. 유가족들도 100일 가까이 장례식장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15명 정도의 유가족들은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4층 VIP실을 합동 빈소로 쓰고 있다. 일반 영안실에 비해서 넓기는 하지만 이곳은 이들의 '공동 숙식 장소'다. 공간도 나뉘어 있지 않으니 사생활은 전혀 없다.

고인들의 중고등학생 자녀 가운데 3명은 아예 영안실에서 학교를 다닌다. 아이들은 이제는 영정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는 할아버지나 아버지한테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등교하고 수업 끝나면 집이나 다름없는 영안실에 돌아와 숙제를 한다.


요즘에는 기자회견·1인시위 등의 일정이 많아지면서 유가족들은 더 바빠졌다. 참사 100일을 앞두고 남일당 건물 앞에서 지난 22일 농성을 시작했는데 경찰은 '불법집회'라며 천막을 치지 못하게 막았고 충돌 과정에서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가 접이식 천막 지지대에 팔이 끼어 인대가 늘어났다. 유씨는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갔다가 이틀 뒤인 24일 청와대 앞 1인시위에 나섰다. 경찰들은 "상복은 입지 말라"며 유씨를 둘러쌌고, 나중엔 여경들이 출동해 그를 인도로 옮겨놓았다.


불타죽은 철거민은 '사장님'이었다
하루 영안실 사용료가 177만원이고 고인 5명의 시신 안치실 사용료도 45만원이다. 매일매일 223만원씩 빚이 늘어나는 셈이다. 여기에 투쟁 도중 크고 작은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병원비만 훌쩍 3억원을 넘었다.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가 국민 성금으로 4000만원을 부담했지만, 아직도 2억5000만원의 빚이 남아 있다.

장례식장 "유가족 사정 이해하지만"
정웅채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운영실장은 밀린 장례비용에 대해서 "사정은 이해를 한다, 가족들 마음이 오죽하겠냐"면서도 "이달 말까지는 돈을 내지 않으면 곤란하다, 정부가 빨리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원비 체납도 문제지만, 이미지 훼손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더 문제다.


정 실장은 "장례식장 입구에 경찰들이 있으니까 다른 유가족이나 조문객들이 위압감을 많이 느낀다, 옛날엔 경찰이 환자나 보호자의 차를 세우고 트렁크 속을 확인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례절차를 상담하러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고, 심지어 빈소를 차렸다가 몇 시간만에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족들 누구도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나올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병원비를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란다.

유가족들은 "계속 싸워야 하니까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이다"고 입을 모았다. 한 유가족은 "나중에 사태가 어떻게든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자식들은 출근하고 (남편 없이)나 혼자 남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수 세력들은 '도심 탈레반'이라고 비난했지만, 고인들은 한때 '사장님'이었고 부인들은 '사모님'이었다. 일부 고인과 유가족 가운데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사람도 있다.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 '이렇게만 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들은 철거민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남일당 망루에 올라갔을까. 남은 유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 23일부터 이틀 동안 유가족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봤다.

[고 이상림씨] "그 장로들은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할까요?"

아버지는 사망하고 아들(이충연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감옥에 간 고 이상림씨 가족의 상황은 기구하다. 이들이 운영했던 '레아호프'는 남일당 건물 바로 뒤에 있는데, 지금은 촛불미디어센터로 쓰인다. 원래 이씨와 부인 전재숙씨는 27년 동안 '한강갈비'를 운영했었다. 갈비집을 하기 전에는 부부가 함께 이 건물 앞에서 튀김 포장마차를 했다. 같은 건물 4층에서 살림집도 있으니, 그 곳이 이들에게 평생 삶의 터전인 셈이다.


가족들은 '한강갈비'를 '레아호프'로 리모델링 하는 것도 손수 직접했다. 이씨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가게 청소를 한 뒤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나갔다. 주방을 맡았던 전재숙씨는 "우리집은 냉동식품을 안 썼어요, 소스도 다 집에서 만들었죠"라고 말했다.

전씨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서 술장사가 마음에 걸렸지만, 아들은 "갈비집에서는 술 안 파냐"고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한다. 호프집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한낮에는 '교회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그랬던 전씨는 이제 교회를 '쉬고' 있다. 개발 조합장이 이씨 부부가 다니던 교회의 장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합장 장로와 대통령 장로는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정말 들어보고 싶다"면서 "하나님은 다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 고인이 생각나냐"는 질문에 "이 모든 문제를 밝혀야 하니까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살다 보면 생각이 날 것"이라고 답했다. "사태가 해결되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급한 것은 아들이다.

"돌아서면 보고 싶은 아들" 이충연씨는 참사 당일 다리 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부서졌다. 유독가스를 들이마셔서 폐도 상했다고 한다. 소방관들이 처음 그를 보고 "여기도 사망자가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

전씨는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했지만, 쉬기는커녕 치료도 못받는 아들 얘기를 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100일이 다 되도록 앞이 안 보이니까 답답하다"면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니까 이길 수 있다, 다섯 가족이 모두 청와대까지 들어간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 아들과 동지들이 무죄 석방될 날까지 싸우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고 양회성씨] "마지막 된장찌개, 그거 안 먹여 보냈더라면..."
고 양회성씨와 김영덕씨 부부가 용산으로 와서 '삼호복집'을 연 것은 2004년 11월. 손님들이 몰려 점심 매상만 60만~70만원이 됐다. 그러나 "나중에 아이들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편하게 등산을 다니자"던 부부의 꿈은 용산 재개발로 물거품이 됐다.

두 아들은 일식집에서 일하면서 요리기술을 익히고 있었지만 참사 뒤 어렵게 손에 익었던 회칼을 제대로 잡아보지도 못하고 있다. 둘째아들 종민씨는 추모대회에 나갔다가 경찰방패에 맞고 넘어져 무릎 연골이 파열됐다.

양씨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선 것은 지난 1월 18일 점심 때였다. 부인 김씨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그 때였다. 김씨는 이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그 때 한 말이… 이거 생각하면 내가 마음이…(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이번에 올라가면, 빠르면 한 달이고,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르겠다고, 애들 데리고 잘 있으라고,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뭘 알았는지, 내 등을 어루만지고…. 원래 잘 안 우는데 눈물도 보이고.

그날 된장찌개로 점심을 차려놨는데, 우리 신랑(그는 아직도 남편은 '우리 신랑' '애기 아빠'라고 불렀다)이 '빨리 가봐야 한다'고 안 먹고 가겠대요. 그래도 한 술 뜨라고 해서 먹였어요. 밥 먹으니까 속이 풀려서 좋다고 잘 먹었다고 그러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걸 먹여서 보냈으니 다행이지, 안 먹었으면 얼마나 후회가 됐을까."

김씨는 "악에 받치고 독이 올라서 지칠 수가 없다, 돌아가신 분들 명예회복 못하면 억울해서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는 "이 정부가 언론조작으로 시민의 눈과 귀를 막아버린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리 덮어도 진실은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종민씨는 "당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우리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 못했다"면서 "인터넷에는 '잘 죽었다, 법 안 지키는 놈들 본때를 보여주자'는 악플도 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씨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시 가게도 해야 하고 자식들도 갈 길 챙겨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끌고 나갈지 걱정이 많다"면서도 "사태가 해결되고 나서 혼자 남는 게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고 이성수씨] 합성으로 영정사진 만든 까닭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 합성이에요. 엄마 환갑 때 한복 입고 찍은 기념 사진인데, 혼자만 한복이면 이상하잖아. 우리 아저씨(남편)가 양복이 없었어요. 1년 내내 전노련(전국노점상연합) 잠바에 건빵바지에 등산화 신고. 용산 가기 1주일 전쯤에, 내가 구정에 입으라고 옷 한 벌 샀어요. 그거 입고 어머니 산소 다녀오자고 했는데, 만져보고 그냥 걸어놓기만 했어. 그냥 한번 걸쳐라도 봤으면…. (눈물)"

고 이성수씨는 한때 가구 공장 사장님이었지만, 사업이 망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이씨와 부인 권명숙씨 부부는 경기도 용인 수지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2번 철거를 당했다. 13년 전 처음 철거를 당할 때는 다른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지만, 3년 전 철거를 당할 때는 천막밖에 갈 곳이 없었다. 권씨는 "용역이 갑자기 들어와서 숟가락부터 교복까지 다 걷어갔다"고 말했다. 생계는 노점 장사로 꾸렸다. 남편은 뻥튀기를 팔고 아내는 호떡을 팔았다. 뻥튀기는 명절이 대목이고 호떡은 겨울 한철 장사니까, 올해 장사는 종친 셈이다.

권씨는 남편이 용산에 연대 투쟁을 하러 간 것도 몰랐다. "어디 좀 갔다온다"던 남편은 1월 19일 오전 6시 전화를 걸어 "망루에 와 있다, 새벽 2시부터 용역이 에워싸서 빼도 박도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남편의 '연대투쟁'에 대해서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 심정을 알아야죠"라고 말했다.


이제 이씨 가족은 갈 곳이 없다. 권씨는 "아저씨가 있어서 버팀목이 됐는데 이제 노점은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강냉이 트럭만 보면 미칠 것 같다"는 그는 그래도 다시 노점을 해야할지 새로운 일을 해야 할지, 한다면 무슨 일로 먹고 살지 두렵고 겁이 난다고 했다.

일단 지금은 투쟁에 집중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참사 100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는 "멋모르고 여기까지 왔는데, 단체 사람들도 만나고 국회에도 들어가보면서 이제야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다부지게 상처를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큰 아들 상흔씨는 "아빠 대신해서 사회에 뛰어들겠다"면서 대학을 포기하고 군 입대도 미뤘다. 엄마 곁을 지키면서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누구나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는데 우리는 좀 일찍 겪은 것뿐이다"면서 동생을 위로했다고 한다.


고3인 작은아들 상현군은 병원에서 등하교를 하고 있다. 엄마가 입시 준비를 챙겨주지 못하지만 혼자 대학을 준비하면서 수시 입학에 대비하고 있다.

[고 한대성씨] "경찰 전화 받고 남편 죽음 알았다"


고 한대성씨는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부인 신숙자씨도 별로 말이 없었다. 처음 만난 기자에게는 이런저런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지만, 다른 활동가와는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연신 눈물을 흘렸다.


수원 신동에서 철거를 당했던 한씨는 용산까지 '연대'를 왔다가 세상을 떠났다. 신씨는 참사가 일어난 뒤에도 남편의 죽음을 몰랐다.

1월 19일 집을 나간 남편이 아예 들어오지 않아서 불안해 하다가 21일 경찰로부터 "시신 신원확인을 위해 DNA 검사를 해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남편의 연대투쟁에 대해서도 "아빠(남편)가 한 일이니까 저는 잘 모른다"면서 "하지 말라면 더 할 것 것고, 일찍 들어오라고 적당히 얘기하곤 했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나자 군대에 있던 큰아들이 잠시 휴가를 나왔다. 제대가 1년 남은 아들은 동생을 챙기다가 들어갔고, 경황이 없어 밥 한끼 손수 지어주지 못한 엄마는 그게 마음에 걸린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에 그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 사태가 해결된다고 해도, 다시 살아갈 의욕이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고 윤용헌씨] "100일 때 아들 입원... 애들 아빠가 지켜줄 거예요"
고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씨는 22일 농성장에 천막을 치기 위해 경찰과 대치하다가 팔이 천막 지지대에 끼었고, 사람들에 깔려서 짓밟혔다. '이대로 죽는구나' 하면서 정신을 잃었던 그는 병원에서 눈을 뜬 뒤 '애들 아빠가 날 살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윤씨 부부는 10년 가까이 순화동에서 '미락정'이라는 한정식 집을 운영하던 '사장님' '사모님'이다. 미락정에서는 매주 한 번씩 삼봉약수터에서 떠온 약수로 푸르스름하고 차진 밥을 지어 손님들이 몰렸다. 경찰청 건너편에 있어 경찰 손님들도 많았는데, "사장님이 끝까지 투쟁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하는 경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철거투쟁이 이어지던 3년 전 겨울, 결국 용역업체 직원들과 집행관이 미락정에 들이닥쳐 물건을 빼앗아갔고, 그 뒤 부부는 다시 가게를 열지 못했다. 남편은 투쟁을 하고, 아내는 파출부 일도 하고 식당 일도 하면서 돈을 벌었다.

유씨는 "나도 사람인데 '꼭 연대했어야 했나' 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유독 남편을 보내기 싫었다고 한다.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남편은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냐, 연대 투쟁 온 식구들은 귀가 조치 하니까 걱정 안해도 된다"고 아내를 달랬다. 그리고는 용산에서 전화를 걸어 "잘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유씨는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남편이 다시 돌아올 것 같고, 사진을 보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이란다. 순화동 집으로 가면 더 보고 싶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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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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