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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는 ‘빵과 축구’만으로 지탱되는가/도정일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6.04.30. 20:25:27   조회: 379   글쓴이IP: 219.248.201.27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
우리사회는 ‘빵과 축구’만으로 지탱되는가
도정일/문학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쏠림’ 현상도 선택적 삶 제약하는 문화 양극화
도를 넘은 ‘월드컵 애국주의’
강정구를 쫓아내야 한다는 ‘사상 검열’
이 모두가 다양성을 파괴하는 문화의 적이다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문화 나누기, 또는 ‘문화나눔’이라는 말이 요즘 부쩍 세간의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소득 격차가 양극화의 국면으로 심화되면서 문화 향수층이 얇아지고, 사람들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능력도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에 공공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문화향수 기회를 넓혀나가자는 것이 문화나눔의 취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구 문예진흥원)의 ‘문학나눔’은 그런 취지로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나누기 사업의 하나다. 예술위원회는 정부로부터 배정 받은 일정 액수의 복권기금으로 우수 문학도서들을 필요한 곳에 무료 배포하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문학 콘서트’와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열어 사람들에게 문학 누리기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에 나서고 있다. 복권기금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니까 이 모든 행사들은 당연히 무료다.

문화나눔의 배경에는 이른바 ‘문화 양극화의 해소’라는 취지가 깔려 있다. 소득 양극화가 문화 구매력에도 타격을 주어 시민의 문화적 삶을 궁핍화하고 있다는 것이 ‘문화의 양극화’ 개념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문화 양극화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없지 않다. 책 한 권 사고 싶어도 지갑 열기가 망설여지고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고 싶어도 쉽게 발길 떼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소득과 문화향수의 상관관계다. 문화가 제 아무리 정신의 양식이라 해도 먹고 사는 문제가 다급해졌을 때 문화는 별 수 없이 ‘식후경’이다. 생계를 부지하는 일은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반면 문화는 선택적 사항이기 때문이다. “나는 굶을 수도 있다. 바람이나 마시지 뭐”라며 굶주림과 궁핍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히말라야의 도인 빼고는 없다. 그러나 영화 보러 갈까, 음악회에 가볼까 같은 것은 선택항에 들어간다. 물론 이런 선택성 때문에 문화가 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삶이란 것은 존 스튜어트 밀이 잘 말했듯이 ‘선택하는 삶’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보다는 이런저런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좋은 삶, 품위 있는 삶이다. 문화 양극화가 그런 선택적 삶의 가능성을 위축시킨다면 공공의 수단과 자원을 통한 문화 양극화 해소 노력은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런데 문화 양극화의 개념에는 사회가 주목해야 할 다른 두 가지 현상도 포함되어야 한다. 하나는 문화소비가 한 방향으로 집중되는 ‘쏠림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와 담쌓고 사는 ‘문화소외현상’이다. 이 두 가지 경향은 소득의 오르내림과는 별 관계가 없다. 볼거리, 구경거리 등 이른바 눈을 즐겁게 해서 ‘시각쾌락’을 높여주는 쪽의 문화상품이나 문화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렸다는 소문난 ‘성공작’들을 향해 우우 몰려가는 것이 쏠림현상이다. 돈이 있어도 책 한 권 사지 않고 여유가 있어도 공연장 같은 데는 절대로 가지 않는 것이 문화적 소외현상이다. 고소득자라고 해서 반드시 문화 향수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문화로부터 1천 킬로미터 바깥에 격리시키기로 하는 ‘자발적 소외’가 문화소외다. 이것도 선택적 삶의 방식인가? 자발적 소외라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택은 반드시 ‘다양성’의 가치를 전제한다. 문화소외는 다양성을 거부하고 궁핍을 선택한다. 쏠림현상도 다양성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궁핍의 선택이다. 다양성은 문화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쏠림현상이건 문화적 소외이건 간에 궁핍의 선택이 강화되는 사회에서 문화는 위기상황에 빠진다.

특히 문화적 쏠림현상의 경우, 민주주의 사회일수록 그런 쏠림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여러 사회적 관찰이 내놓고 있는 오래된 경고신호의 하나다. 2백년 전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하러 갔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이미 그 무렵의 미국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의견, 취향, 문화소비에 상당한 ‘동질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의 관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로 같아지고 동질화되지 않으면, 그 동질화의 거부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대중적 정서의 크기와 밀도가 현대 민주사회라 해서 줄어든 것이 아니다.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다. 민주주의 의 동질화 경향 말고도 현대 사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비문화와 유행문화의 팽배 같은 문화쏠림의 결정적 강화 요인들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점검해보는 것은 문화 양극화의 해소라는 집단적인 사회적 노력이 소득 양극화의 부수 현상으로서의 문화적 양극화 문제에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소득 격차의 심화가 문화향수에 타격을 주고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한 해소 노력은 그것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노력 못잖게, 사회의 창조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정책적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문화 양극화의 다른 두 방향, 곧 쏠림과 문화소외라는 두 가지 경향의 궁핍화를 주목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중 추수주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치 영역이, 그리고 죽으나 사나 소비문화를 부추기고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목매달아야 하는 시장 영역이 창조적 다양성의 문화를 일구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문화를 위한 사회 자원의 재배치와 재배분, 문화교육과 예술 교육의 사회적 확대, 문화적 선택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은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이자 깊은 딜레마다.

그 딜레마에는 2002년 서울 월드컵 이후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대한민국주의’도 포함된다. 국민 성원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나라에 긍지를 가진다는 데는 까탈 잡을 일이 없다. 그러나 애국심이 배타적 ‘애국주의’로, 나라 사랑이 의견과 정서의 획일화로 치달아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애국이 아니고 나라에 대한 긍지도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일과 월드컵 앞에서 무조건 흥분해야 ‘애국시민’이 된다고 여기는 정신 상태는 같은 것이 아니다. 로마 제국은 ‘빵과 서커스’로 지탱되었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가 ‘빵과 축구’만으로 지탱되어야 하는가? 황우석을 지지하는 일과 황우석을 지지하지 않으면 애국 시민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강정구 교수를 비판하는 일과 강정구를 대학에서 쫒아내고 그의 강의를 봉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기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도를 넘는 애국주의와 이성을 잃은 국민주의도 의견, 사상, 표현의 자유를 옥죄어 다양성을 파괴하는 문화적 쏠림현상에 해당한다. 그것들은 이미 고약한 전제(專制)의 한 형태다.



기사등록 : 2006-04-27 오후 09:56:02기사수정 : 2006-04-28 오전 02:58:45/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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