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읽기
ADMIN 2022. 08. 16.
 어른 존경이 사라진 이유(김동춘교수)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2.06.10. 11:01:07   조회: 960   글쓴이IP: 211.207.64.171
2001년 10월 23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날카롭고 올 곧은 눈을 가진 몇 안되는 귀한 소장학자(그래서
조선일보가 음해하는)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의 글을 옮겨 싣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의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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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존경'이 사라진 이유/ 김동춘



유니세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시아 17개 국가 중 한국 청소년들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꼴찌(13%)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청소년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은 한국 다음으로 낮은 홍콩의 39%보다도 크게 낮았고 중국(70%), 베트남(92%)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조사결과의 신빙성은 더 따져보아야겠지만,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존경받을 어른이 없는데 뭐 새삼스러울 것이 있느냐는 지적이다.

텔레비전을 보다보니 요즘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어떤 가수가 나와서 “룰은 없는 거야.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지금 이 순간만 있는 거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 이 노래 가사처럼 룰이 없는 사회, 지금 이 순간만 있는 사회에서 `존경심', 특정한 가치에 대한 존중심은 없는 셈이다. 청소년은 속이지 않는 법이다. `자기'만을 중심으로 삼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사회의 얼굴이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자기만이 유일한 기준이 된 생활태도는 정도에서 벗어난 천박한 삶의 양태”라고 보면서 그러한 태도는 공동체를 순전히 도구적인 의미로만 대하도록 부추기고, 누구도 상대에 대해 훈계할 수 없도록 만드는 현대 개인주의 사회의 특징이라고 보았다. 한국 청소년의 `자기중심주의'는 분명 현대 사회 일반에서 나타나는 양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바 호주와 같은 서구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 70%를 상회하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에서의 `존경'의 실종은 개인주의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청소년이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개인' 외에는 어떤 가치와 규범도 무시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 부모와 교사가 그들의 눈에 별로 본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부모나 교사들은 남과 나의 의견이 충돌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익추구와 법이 긴장을 일으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기보다는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로 가르쳐 주었다. 가족 구성원에게는 무한대의 애정을 발휘하나 이웃에 대해서는 별다른 책임도 느끼지 않는 오늘날 한국의 부모들과 어른들의 일상적인 행동들이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조직 내부의 비리가 있더라도 동료와의 화합을 위해 참고 넘어가고, 힘 센 사람 앞에서는 주장을 펴지 못하고, 그저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라는 오늘의 왜소하고 지친 어른들의 모습이야말로, 청소년을 도덕적 진공상태로 몰아넣은 실질적인 배경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공, 공준, 공론, 절차적 정의가 없는 사회에서 모든 것은 상대화, 순간적인 것이 되고, 그런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은 곧 동물적 본능과 적나라한 폭력의 논리,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자기도취의 문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폭'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청소년에게 만연한 `존경의 철회'야말로 한국사회가 반드시 지불해야할 대가를 이제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들의 태도는 `반칙 왕'이 실제로 `왕'이 되는 한국사회에 대한 고발장처럼 들린다.

“어른들이여 각성하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적절한 처방이 아니다. 그대로 있으면 이 청소년들이 자라 또 그런 어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지은 자가 `적반하장' 격으로 큰소리치는 세상에서, 무엇이 잘한 일이고, 무엇이 잘못된 일인가를 따져보는 공론의 기능, 법적 심판의 기능이 회복되어야 한다. 더 이상 반성할 능력을 상실한 이 사회 내에서 그나마 원칙을 고민하는 소수의 외톨이를 찾아서 격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룰을 따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책임과 의무를 느끼는' 젊은 피가 새살처럼 돋아날 것이다.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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