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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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그마한 내 꿈 하나/윤구병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3.01.12. 13:58:35   조회: 617   글쓴이IP: 211.207.79.133
다음은 철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변산공동체에서
기초농생공동체 구측을 위해 애쓰고 계신 윤구병 선생의 글입니다.
우리의 삶, 행복, 문화, 문명에 대한 반성적 깨달음을 주는 글로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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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내 꿈 하나/윤구병

여덟 살 때 육이오를 맞아 나이 서른에 이르기까지 스무 해 남짓 나는 무척 어렵게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즈음도 가끔 내가 넉넉한 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생각해 보는 때가 가끔 있다. 아무리 요모조모 따져 보아도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을 성싶다. 가난하게 자란 아이들은 남의 도움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우친다. 나이 대여섯에 껌팔이로 길거리에 나서는 아이들도 가게에서 백원이면 사는 껌을 이백 원에 사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루 한 끼 수제비로나마 연명할 수 있음을 배운다.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떨까? 차이는 있겠지만, 남의 두움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걸 체험을 통해서 절박하게 느껴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머리가 여물도록 '나 잘나서 나 잘 산다.'는 생각을 쉽사리 버릴 것 같지 않다. 가난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받아서 느끼는 고마움'이 '주어서 갚고자 하는' 마음가짐으 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어렵게 자라온 많은 뜻있는 청소년들이 흔히 '나중에 커서 성공하면 나처 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야 어떻게 될망정 이 말에 스며 있는 진심은 퍽 소중한 것이라고 믿는다. 학원장학회를 키워 낸 김익달 님의 큰 뜻도 가난이 벼려낸 것이 아닌가한다.
만일에 그분이 누구처럼 식민지 시대에 떵떵거리며 살던 집안에서 큰 고생 모르고 자랐다면, 정치적 야망이나 기업 선전의 차원에서 약삭빠르게 이런저런 자선 단체를 밑에 거느리겠다는 불순한 생각을 깔고 장학재단 같은 것을 설립했으면 했지, 그토록 순수한 뜻으로 사업이야 어찌되든 장학회만은 지켜 야겠다는 고집을 끝가지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을 기리자는 뜻은 아니다. 그 동안 있는 사람들 덕에 없이나마 살아 남았으니 모름지기 가난한 사람은 모두 잘 사는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자는 뜻은 더더구나 아니다. 실제로 꼼꼼히 다져 본다면, 부자가 베푸는 생색이 듬뿍 실린 시혜보다 가나한 사람들이 자기도 몰래 베푸는 생 색 안 나는 이웃 사랑이 더 크다. 부자들의 식탁에 오르는 산해진미는 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가난한 어부가 한겨울에 풍랑을 무릅쓰거나 깊은 물속으로 자맥질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것도 있고, 오뉴월 땡볕에 벽돌처럼 살이 익는 걸 참아가며 허리가 부러지도록 가꾸어내지 않으면 생 길 수 없는 것도 있다. 몸에 걸친 고급 옷, 타고 다니는 고급차, 에스컬레이터가 놓이고 수영장이 곁들인 고급 별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자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다 저 잘나서 저 잘 사는 줄로만 안다. 이 알량한 사회 의식은 가난의 교훈을 아예 처움부터 모르거나 나이가 들면서 잊어 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사회가 총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사는 동안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늘 더 많다는 것-이 소박하면서 도 근본적인 깨우침이 바로 가난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 서른에 가깝도록 받고만 살아온 것이야 형편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그 뒤 로도 스무 해가 넘게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아 챙겨온 내 삶이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럽 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비록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짧기는 하나 이제부터라도 좀 주면서 받을 길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김익달 님이 남겨 놓은 꿈 가 운데 하나를 이루어볼 길을 찾아 헤매는 중인데, 실험학교가 중심이 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다 아다시피 이승만 정권 뒤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가지 남쪽의 역대 정권은 농어촌을 착취하고 이용만 할 줄 알았지 농어촌의 발전을 위해서 한 번도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특히 노태우 정권에 이르러 농어촌은 어린애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죽은 마을 로 바뀌고 말았다. 이대로 둔다면 앞으로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마을 공동체는 파괴될 것이고, 우리 농업도 곧 농업 자본가가 거대 지주로부터 땅을 빌려 농사짓는 차지농(이른바 기업농)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어업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경지 정리를 할 수 있는 땅은 넓고 평평한 들판으로 바귀어 농업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의 이익을 가장 많이 낳는 작물을 집중적으 로 기르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농가라고는 십 리가야 한두 채를 볼 수 있을까 말가 할 정도로 줄 어들 것이다. 경지 정리가 어려운 구릉지는 거개가 목초지로 바뀌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천 년을 두고 우리 전통과 문화와 가치관관 세계관의 젖줄 노릇을 해 온 마을 공동체는 곧 흔적 없 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과 격리되어 메마른 도시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란다는 것은, 아무리 도시가 온 갖 삶의 편의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작게는 그 사람들의 미래에, 크게는 나라와 인류의 장래에 치 명적이다. 공해나 범죄 같은 현상적인 병폐만 두고 이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공허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이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역 사적으로 모든 도시 문화는 멸망했다. 이 사실을 두고 어떤 사람은 외적의 침입 때문에 그랬다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전염병이나 공해 때문에 그랬다 하기도 하고, 또 어던 사람은 그럴 사한 다른 이유를 대기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도시의 삶 자체에 자기파괴의 원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도시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도시는 자급 자족의 공동체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도시에서는 참된 의미에서 자율적인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우선 도시는 자신의 힘으로 우리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현대 도시는 다르지 않느냐, 비록 아직까지 먹이 문 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옷과 집 문제는 자체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 느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활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변의 마을 공동체에 빨판을 대지 않을 수 없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도시 밖으로 뻗는 문어발은 더 길고 억세야만 한다. ㄱ이라는 생산 공동체에서 영양을 공급받는 것으로 충분하던 조그마한 도시의 경우에도 자연적인 재해(가뭄이나 크물 따위) 나 인위적인 조건의 변화로 생산 공동체 ㄱ의 생산력이 교란되면 곧 ㄴ이라는 생산 공동체에 발 을 뻗어야 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도시는 자체 성격 때문에 필연적으로 착취적인 삶의 원리를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러한 욕구는 더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시 문화는 착취와 억압을 일삼는 제국주의적 지향성을 버릴 수 없었다. 근대에 들어 급속한 산업 혁명의 결과 모든 생산력이 도시로 집중되어 거대 도시화한 나라들이 한결같이 식민지 쟁탈을 일삼는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했다는 것은 기 본적으로 이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 지금 지구상에는 수많은 도시 문명의 폐허들이 이른바 고고학의 보고로 널려 있다.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마야, 잉카......... 왜 이 화려했던 도시 국 가들이 하나같이 몰락의 길을 걸었을까? 어느 시대나 도시 사람들은 때로는 군사력으로 때로는 야바위 놀음으로, 때로는 막강한 행정 조직과 그 밖의 물리적, 이념적이 힘으로 주변 생산 공동체 의 생산력이 고갈될 때까지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었다. 양식도, 식량도, 그밖에 도시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어떤 것도 가차없이 빼앗아서 제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시 사 람들이 긑까지 빼앗아 갈 수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생산 공동체에서 태아나 자란 사람들 이 지닌 근원적인 삶의 원리인 자율성과 창조성이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생산 공동체를 마지막 까지 쥐어짤 수는 있지만, 그 마지막 한 방울 피가 수혈되지 않는 순간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간단히 보기를 들어 설명하자. 지금 도시에서 태어난 여남은 살 먹은 아이와 시골에서 태어 난 같은 나이의 아이가 어쩌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가정하면 여름이라 하더라도 도시 아이는 며칠 안 되어 죽게 될 것이다. 쌀 가게도 반찬 가게도 찾을 수 없고, 자는 곳도 이제가지 따로 정 해져 있었으니 새삼스럽게 찾을 길이 없어 헤매다가 굶주린 배를 안고 아무데서나 자다가 죽을 것이 너무나 빤하지 않은가? 그러나 시골에서 자란 아이는 훨씬 더 오래 ㅁㅁ목숨을 지킬 수 있 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대자연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로 먹을 풀과 못 먹을 풀, 몸에 이로운 뿌리 와 해로운 뿌리 같은 것을 가려서 배를 채울 것이며 잠을 잘 때도 땅바닥에 습기가 없고 이슬을 막을 수 잇는 곳을 고를 것이다. 마지막까지 착취를 일삼던 도시의 지배층은 결국 살아남지 못하 고 마지막까지 착취당하던 생산 공동체의 구성원은 끝가지 살아남아 인류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 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죽게 되어 있는 것은 아무리 발버둥쳐 도 죽고, 살게 되어 있는 것은 아무리 벼랑에 몰려도 살 길을 찾는 것이다. 김익달 님이 그처럼 농촌을 되살리려고 애쓰고, 가난한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안간힘을 쓴 까닭은 미래의 세대가 살 길을 찾아주자는 일념에서 였을 것이다.
우리가 살 길은 거대 도시 화한 자본주의적 삶의 원리(따지고 보면 죽음의 원리다)에 맞서서, 더 구체적으로는 앞으로 몇 해 안가서 자본가의 손아귀에 들어갈 어업과 농업과 임업에 맞서서 어촌과 산촌과 농촌에 하루바삐 협동적인 생산 공동체를 되일으켜 세우고, 그 공동체를 튼튼히 지켜 나갈 새로운 공동체적 인간 을 길러내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 길은 세계 시장에 값싼 노 동력을 파는 것뿐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안 믿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자들은 야바 위꾼이거나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왜 우리에게 자원이 없는가? 우리 나라는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흘러내로고 있다. 말하자면 어족 자원의 천연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원을 살리면 된다. 또 우리 나라는 국토의 삼분의 이 이상이 산이다. 여기에서 제대로 나무를 키워 낸다면 이 세계에서 우리만큼 큰 산림 자원을 가진 나라도 없을 것 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우리 나라만큼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곳이 드문 것으로 보아 나는 이 땅이 하기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풍요한 식량 자원, 약초 자원, 과일 자원의 보고가 될 수 있 다고 본다. 문제는 이자원들을 길러내고 이용하여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고 협동적으로 살 수 있는 터전을 가꿀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미래의 세대를 길러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산 공동체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을 하고 싶다. 지금 나는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는 농촌 공동체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실험 학교 건물은 처음에는 문을 닫는 시골 분교 건물로도 충분할 것이다. 더 급한 것은 이 건물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우선 서너 해에 걸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내가 아는 교육 동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 나 풀어나가려고 한다. 처움에는 계절 학교 형태로 시작할 것이고, 학생들은 국민학생, 중고등학 생을 뒤 섞어서 한데 받아들이되, 가난한 집 아이, 장애아, 잘 사는 집 아이를 골고루 섞을 것이 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죽어버린 감각, 죽어버린 신체적 능력을 되살ㄹ리는 일부터 시작하여 일 과 놀이, 지성과 감성을 통일시키는, 그래서 어던 구체적인 문제가 생기면 다 같이 집단적인 힘을 모아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험과 관차르 추론과 표현, 감각과 운동, 사회와 역사 인식 등 모든 감성적, 인지적, 도덕적 능력을 총체적으로 발휘할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 물론 이 일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리고 혼자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첫걸음은 내 디뎠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의 실마리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고, 서너 해 뒷 면 실험 학교와 공동체가 자리잡을 터도 마련될 것이다. 그리고 일이 그쯤 추진되면 빠르면 지금 부터 네 해, 늦어도 다섯 해 뒤에 대학을 그만두고 실험 학교로 가서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직책은 아마 '소사'일 것이다. 이 뜻이 우여곡적 끝에 조금씩 실현되 면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뒤에 실험 학교는 우리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올린 새로운 건물로 바뀌 고, 학교 주변 마을은 임업 시험장, 어업 시험장, 실습 농장, 가공 공장, 극장, 전시실, 자연사 박 물관, 음악회장, 시장 따위를 갖춘 하나의 마을 공동체로 바뀔 것이다. 모든 꿈이 그렇듯이 이 꿈도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뿌리 내 리려면, 이 작업 자체가 죽음의 원리에 목숨을 것고 맞서는 치열한 투쟁을 동반할 것이고, 그 과 정에서 이 사회를 변혁하고 세상을 뒤집는 힘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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