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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은 이제 멸종 위기 처한 종족됐다"/퓨레디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5.06.08. 21:40:29   조회: 545   글쓴이IP: 218.135.198.54

"지식인은 이제 멸종 위기 처한 종족됐다"
프랭크 퓨레디의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선희(casal95) 기자

▲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청어람미디어, 2005년 6월

"현재 우리의 지식사회와 문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적 자극과 도전이 사라진 오늘날의 대학, 지식과 문화를 그 자체로 목표 삼기보다 수단으로 취급하는 도구주의의 대두…. 버트랜드 러셀, 레이먼드 윌리엄스, 한나 아렌트와 같은 인물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진정한 지식과 비전, 인류 공공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견지해온 이들 거장들 대신, 우리 사회에 남겨진 것은 유창한 달변가와 기업에 종속된 싱크탱크의 숙련된 기능공들, 그리고 정보 조작 전문가들뿐이다."

2004년 9월, 영국에서 출간된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Where have all the intellectuals gone? ― 21세기의 무교양주의에 맞서다)>는 사회학 교수인 프랭크 퓨레디의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천박해진 지식사회와 정부를 '바보 만들기(dumbing down)'의 사령탑쯤으로 보고 노골적으로 비판을 퍼부어댄 이 책에 대해, 영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우둔한 대학생들에게 불만을 쏟아내는 대학교수', '까탈스런 엘리트의 황금시대 찬가'라는 주장에서부터 반대로 아주 근본적인 뇌관을 건드린 '파괴력 넘치는 주장'(테리 이글턴)이라는 입장까지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영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에는 '기업과 관료, 정치인들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프랭크 퓨레디) 대학의 개혁과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학의 존재 이유는 직업 훈련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이 아니라, 직접적 효용성으로부터 물러나 진리와 연구 그 자체의 의의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정운찬, 서울대 총장)라고 강조하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 책은 대학부터 초등학교, 갤러리와 박물관, 선거 방식, 정치논쟁, 문화 이벤트까지 종횡무진 비판하며 우리 시대 무교양주의의 사례를 나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무교양주의에 대한 공격인가? 지금은 바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방향과 내용을 고민하는 시대가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 프랭크 푸레디는 지금이 사회전반적인 도구주의화, 실용주의 노선에 대해 다시금 반성적으로 되돌아볼 때라고 강변한다. '형식적 제도'는 풍부해졌으나, '철학의 빈곤'과 '문화의 빈곤'은 여전하다는 의미이다.

인간 정신의 고양 대신, 내용 없는 포퓰리즘에 포위되다

그는 대학에서, 교육제도에서, 정치 논쟁에서,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지식인의 태도에서, 이 시대의 무교양주의와 무지몽매화, 진리와 지식에 대한 무관심은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오히려 교육에 대한 기준이 하락하고, 문화적 빈곤은 꾸준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학이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나, 그것이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에서는 결과적으로 대학이 전문대의 역할을 대신 빼앗아 버리고, '무엇이든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식의 경험주의적, 대중주의적 교육정책은 고등교육과 성찰이라는 대학 본연의 의미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즉 이는 "건강 문제에 대해 종합하고 분석해야 할 종합병원이 보건소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마찬가지"(퓨레디)라는 것이다.

심지어 학생들이(혹은 대중이) 좌절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공공연한 문화가 대학과 문화 전반을 지배한다면, 그건 패스트푸드 문화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고통스럽지만 도전과 만족감을 수반하는 진지한 지적, 문화적 노력은 도외시된 채 즉자적인 생활 경험, 쉽지만 결국은 개인에게 별 의미 없는 것들로만 교육과 문화가 멈춰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지식과 문화, 교육을 통해 인류 문화가 남긴 최고의 것들, 의미 있는 것들을 배우고 문화에 감동받고 그로 인해 감성적으로 고양되는 경험, 지적 자극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빈곤한 대중주의에 포위된 지식과 문화의 몰락뿐이다. 이는 강제가 아니라, 무기력이 빚어낸 (대중적)동의이기도 하다.

갤러리나 박물관 등 문화 영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의 참여를 늘리겠다는 미명하에 오히려 양적 참여의 확대에만 급급하고, 진정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즐거움을 주는 내용과 수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그는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기저에는 상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폐해가 있다고 분석한다.

다원적 진리를 말한 이러한 관점은 진리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풍부한 깊이를 제공했으나,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떤 내용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유의미성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든 것을 해체해 버렸다.

그래서 21세기 우리 시대의 무지몽매화와 바보 만들기, 무기력함에 맞서 진정한 의미의 지식과 교양을 복권시키자고 그는 강조한다.

21세기의 무교양주의에 맞서는 문화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퓨레디가 현 시대 문화의 퇴행을 슬퍼하는 유일한 논평가는 아니다. 그가 비판하는 무교양주의가 영국에서만 한정된 현상도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서구에서는 더욱더 많은 비평가들이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정치가들에 의해 흔히 엘리트주의적이라며 배격되었다.

그러나 퓨레디는 정치가들이야말로 엘리트주의의 진정한 주범이라고 반박한다. 접근 기회를 확대하고 대중의 참여를 장려한다는 명분 속에서 사회 전체의 수준을 하락시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 밑바닥에 대중의 지적 잠재력에 대한 비관주의가 잠재적으로 숨어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서로에게 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가 이 모든 문제의 진정한 적이 아니다. 퓨레디의 책이 지난 수십 년간의 논의와 문제의식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퓨레디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피에르 부르디외를 적절히 인용하며 우리의 문화가 퇴보한 것이 (자본주의)시장 때문만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려는 고민이 없는 채, 교육·문화활동과 제도에 대중의 광범한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수백만 명을 상대로 자행되는 사기행위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동시대의 문화는 공허해진다. 온갖 대중주의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진정한 대중문화에 매우 적대적이다. 진정한 대중문화는 대중을 참여시키려는 정책의 산물이기보다는 자가발전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퓨레디는 천박한 무교양주의에 맞서는 문화전쟁을 호소한다. 교양 있는 공공적 대중의 개발을 통해 사회의 지적·문화적 삶을 향상시키자는 계획도 제시한다. 그의 해법은 소박해 보이지만 희망적이다. 어떤 영국의 독자가 말하듯, "이 책은 진부한 좌·우파 토론을 초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인간의 잠재력과 미덕,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을 새롭게 무장"시킨다.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 및 마르크스주의 사회비평가 테리 이글턴 등 다양한 성향의 학자들이 칭찬한 이 책에는 사실 이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러나 때로, 더욱 중요한 것은 대안이나 해답이 아니라, 정확하고 날카로운 문제의식일 때가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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