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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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내기 철학책 읽기 길라잡이/김치수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4.03.18. 21:59:34   조회: 1197   글쓴이IP: 219.248.201.34
새내기 책읽기 길라잡이/서울대 철학과 98 김치수
출처 : snunow 펌글

빗방울이 인도의 부드러운 표면 위로 흩내리고 있다. 이랑을 만들지도 않고, 두드러짐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이름 없는 차들이 조용히 옆을 스쳐간다. 다시 밤이다. 차고와 이곳의 네온 불빛, 내일의 노동을 기다림, 우상을 쫓는 매일 매일의 몸부림. 나는 가서 와인 한 잔을 마신다. 생면부지의 어떤 사람과 함께. 하지만 이 사람과 함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다.
-엔조 파치, {어느 현상학자의 일기}, 이후출판사 中

모두들 어린 시절의 그림일기에서부터 최근에 다이어리에 끄적인 짧은 일기에 이르기까지 계속이고 자신의 언어를 토해내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일기를 쓰면서 사회의 복잡하고 무한한 관계들 속에서 두려움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미래에 쫓겨 달려온 교육이란 트랙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죽음이란 운명 앞에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나란 인간은 선택한 적도 없는 낯설기 만한 사회 속에서 태어나 무슨 이유로 살고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늦은 밤을 꽉 채운 어두움만큼이나 무거운 가방을 동여매고 학교라는 곳을 나올 때, 우리는 삶의 이유를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다"는 것밖에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커지고 나서는 계속되었던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결투.
왜 자꾸 일기 얘기만 하냐구?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인간, 사회, 역사 그리고 자연 앞에 서있는 초라하지만 그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자신에 대한 매일 매일의 일기 쓰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은 어렵고 낯 설은 교양과목이 아니라 철학함의 행위이다. 우리가 철학이론을 공부할 때 있어서도 그 내용 및 이론들이 이끌어내는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정확히 인도하려고 애쓰는 어떤 반성과 모색을 통해 철학이론들이 그 본보기를 제공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듯 여타의 학문들과 같이 뚜렷이 규정된 연구대상이나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는 철학이란 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음미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이렇게 삶을 음미하는 수많은 이들이 한 명 한 명의 철학자이기에, 진정한 철학적 삶이란 인명사전에 실린 몇몇 철학자들의 날카로운 사유와 기행 속에서만이 아니라 공작용 기계가 돌아가는 공단의 어느 구석에서, 늘어나는 빚만큼이나 늘어나는 마음의 생채기를 가진 도심의 어느 구석 성매매의 공간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이들의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느낌들과 행위들 안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제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의 길을 안내해 줄 몇 권의 철학입문서들을 소개해 볼 차례인 것 같다. 대학 새내기들이 철학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철학 책이라 불리 우는 방대한 지식의 바다 속에서 자신감을 잃는 것이다. 너무 어렵고 두꺼운 철학사 책이나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교과서처럼 요약해 논 철학 책들은 일단 피하는 것이 좋다. 다양한 전공과목을 선택한 대학 새내기들은 가능하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분과들 속에서 형성된 철학적 고민들에서부터 철학공부를 시작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예를 들어 사회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사회학·경제학 방법론이나 사회철학을 공부하는 경로나 이공계 쪽을 공부하다가 과학철학이나 인식론의 문제들을 부여잡는 경로 등이 있을 수 있겠다. 물론 전공공부에 대한 흥미보다는 철학적 사유의 역사를 직접 밟고자 하는 이들은 굳이 둘러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이 글은 주제별로 철학공부에 입문하는 방법과 철학적 사유의 본보기가 되는 철학 책에 대한 소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사를 맛볼 수 있는 쉬운 철학사 책을 소개하는 순서로 서술해야겠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동양철학에는 문외한인 관계로 이 글을 통한 동양 철학에 대한 입문은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Ⅰ. 주제별로 사유의 더듬이를 확장하기
여러 주제별로 서술된 철학 책들 중에서 입문에 적당한 책들은 상당히 찾기 힘들다. 이는 세간의 책들이 단순하게 여러 필자들을 섭외해서 짜깁기해서이기도 하고, 철학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편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르고 골라 두 권의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먼저 추천할 책은 선배들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삶과 철학}(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녘출판사)이란 책이다. 먼저 책의 지은이 소개부터 해야겠다. 지은이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80년대의 기억을 가슴속에 간직한 소장 철학자들의 모임이다. 기성의 학문 풍토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철학을 시대의 혼이자 시대의 모순에 대한 반역으로 선언하면서 1989년에 만들어진 진보적인 철학 단체이기에 대학생들과는 인연 역시 깊다. 대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획하고, 편찬한 {삶, 사회, 그리고 과학}, {삶과 철학}, {문화와 철학} 등의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펴낸 철학입문서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이라면 꼭 한번은 고민해 볼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삶과 철학}은 삶에 대한 물음에서 마음, 욕망, 결혼, 노동, 문화, 환경 등에 이르기까지 11명의 철학자들의 고민과 주장들을 담고 있는 욕심이 많은 책이다. 삶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거쳐 마지막으로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끝맺고 있는 책의 구성을 볼 때, 비록 각각의 장들이 따로 따로 떨어져 있지만 동시대인의 삶과 호흡하려고 하는 소장 철학자들의 고민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매장의 끝 무렵마다 달려있는 생각해볼 문제들은 부담스럽게도 당신의 목소리를 요구할 지도 모른다. 서론인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장의 생각해볼 문제 중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이 글을 읽는 이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봉건 시대의 말기에는 억압을 참지 못한 농민들이 봉기한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그 농민군의 일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나는 당연히 용감히 싸우려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말린다. "훈련받지 못한 농민들이 곡괭이나 죽창을 들고서 어떻게 관군을 대적하겠는가? 부정적 자유의 결말은 뻔한 것이다. 결국은 패배할 것이고, 패배하고 나면 조정의 잔인한 복수가 뒤따를 것이다. 나하고 둘이서 양쪽을 설득하여 적당히 타협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 농민의 봉기를 부정적 자유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이 제안에 대하여 무어라고 답하겠는가?>
한 권밖에 소개하지 않았는데 벌써 제한된 분량의 반이 되어 버렸으니 이제 글의 속도를 조금 내야만 하겠다. 두 번째 추천할 책은 {새로운 철학강의ⅠⅡ}(앙드레 베르제즈·드니 위스망 , 인간사랑)이다. 같은 내용의 책이 『프랑스 고교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기도 한 걸로 봐서 금새 무슨 내용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프랑스의 고등학교 상급반의 철학교육을 위해 씌어진 책이다. 프랑스 고삐리들이 보는 책이라고 얕보지는 말자. 이 책은 졸업반에 한에서 주당 8시간의 철학교육이 시행되는 프랑스란 나라가 정말 부럽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꼭 읽으라고 하는 선생님이 남한에는 있을까? 이 책의 특징은 논리학과 인식론, 형이상학 및 실천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는 데 있다. 비록 지극히 프랑스의 지적 토양 위에서 서술된 책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 봤거나, 의심을 품어볼 만한 문제들이 다 망라되어 있으니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관심이 가는 주제별로 골라서 읽어도 된다. 1권은 논리학 및 인식론을 그리고 2권은 형이상학 및 실천철학을 다루고 있으니 굳이 1,2권의 순서를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Ⅱ.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
우리들은 살면서 꼭 몇 번은 우리의 믿음과 편견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젊어서 일해 늙어서 편히 살라는 달콤한 속삭임에서부터 생의 의미를 송두리째 앗아가 가 버리는 장례식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극한까지 의심해 보는 재미가 바로 철학적 사유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사유의 본보기를 보여준 이가 있으니 바로 르네 데카르트이다. 여기서는 그의 대표작인 {성찰}(르네 데카르트, 문예출판사)을 소개해 보겠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의 이름은 다들 한번씩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코기토 명제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근대의 포문을 연 17세기의 프랑스 철학자이다. 근대의 수학과 과학의 발전을 목도하면서 "우리들의 정신을 최고로 완전하게 해주는 한 가지의 보편적인 학문에 관한 구상"을 위해 철학에다가 절대적으로 확실한 길과 건물을 제공해주는 것이 데카르트 철학의 목표였다. 신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으로 사물로 세속화된 눈을 갖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성찰}은 당찬 포부를 가졌던 데카르트란 철학자의 정교한 사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여섯 단계로 나뉘어진 성찰의 과정을 자전적인 문체로 서술한 덕분에 데카르트의 사유의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어봄을 통해 '철학함이란 무엇인지',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성찰}에 도전을 해보았다면 이제 서양 철학의 역사의 한 켠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인식론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을 갖자.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이기도 했고, 재기 넘치는 필치의 {서양철학사}의 저자로도 유명한 버트란드 러셀이 지은 {철학의 문제들}(버트란드 러셀, 서광사)이 바로 그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현상과 실재, 물질의 존재, 선천적인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철학적 지식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인식론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들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게 구성한 책이라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목마르게 기다려온 이들에게는 퍽 소중한 책이 될 것이다.

Ⅲ. 철학사 맛보기
그럼 이제 철학 공부와 거의 동일시 되어온 철학사를 공부하는 데 유용한 책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시중의 두꺼운 철학사 책들은 대부분의 소장자 들에게 장서용과 베개용 사이를 진동하다가 결국에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두꺼운 철학사 책들이 읽을 가치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소장자의 욕심이 너무 과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분량의 중압감 때문에 철학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 두께임에도 내용은 알찬 두 권의 철학사 책을 소개해 볼까한다. 첫 번째 책은 {소크라테스에서 싸르트르까지}( T.Z. 래빈, 동녘출판사) 라는 책이다. 이 책은 요즘 히트를 치고 있는 김용옥교수의 방송강의와 같이, 80년대 초에 미국에서 히트를 쳤던 조지 워싱턴 대학의 철학 교수인 래빈교수의 방송 강의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 방송강의가 책으로 출판되고, 태평양을 건너온 것을 미루어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소크라테스에서 싸르트르까지}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게 하면서도, 핵심은 놓치지 않고, 덧붙여 가장 큰 장점으로 일상적인 삶과 끊임없이 철학사를 연관시키고 있다. 끊임없이 과거의 철학을 현재의 일상과 접목시키려는 래빈교수의 노력은 이 책을 책장이 아니라 호주머니 안에 넣어두어야 될 것 같은 욕구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책도 아쉬운 점이 있는데 그것은, 플라톤, 데카르트, 흄, 헤겔, 마르크스, 싸르트르만을 중심으로 다뤄서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을 이 책으론 알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레드 컴플렉스의 입김을 강하게 받았는지 마르크스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책은 고사까 슈헤이라는 일본 지식인이 지은 {함께 가보는 철학사 여행}(고사까 슈헤이,사민서각)이 되겠다. 전공투 세대라고 하는 1960년대 일본의 전투적 학생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세대답게 지은이는 맑스주의자로서의 모습을 책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백미는 군데군데 보이는 삽화들이 되겠는데, 고대철학에서 맑스에 이르기까지의 긴장감 넘치는 철학사를 배꼽 잡는 그림으로 잘 보완해주고 있다. 철학자의 사상의 핵심을 그림 하나로 거의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더 읽어 볼만한 책들

{서양철학사}(렘브레히트, 을유출판사)
철학사 공부를 하다가 굳이 원전을 참고하기가 부담스럽다면 많이 두껍지는 않은 철학사 책인 렘브레히트의 {서양철학사}를 참고하면 좋다. 철학자들의 이론의 핵심을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알차게 서술해 놓았다. 다만 현대 철학 부분은 참고하기엔 너무 성글다.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이병수·우기동, 돌베게)
고대 희랍철학에서 맑스주의 철학까지를 아주 짧은 분량으로 서술한 책이다. 4부인 마르크스주의 철학 부분은 논쟁적인 지점이 많은 부분이므로 굳이 읽을 필요는 없고, 그 전까지의 철학사를 정리해보고 싶다면 한번쯤 통독해 보는 것이 좋다.

{서양의 지적 운동ⅠⅡ}(김영한 편, 지식산업사)
새내기들에게 추천할 만한 사회·정치 철학 입문서는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철학이론들을 공부할 때 그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입장을 알지 못한다면 빙산의 일각만을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구조주의 등의 서구의 여러 이즘(-ism)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서술한 위 책을 미흡하지만 참고서로 활용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든지 역사적으로 보기 시작한 19세기 이후의 사람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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