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일반
ADMIN 2018. 12. 17.
 영화 <모터 싸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이병창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4.12.07. 18:36:42   조회: 802   글쓴이IP: 157.17.1.7
영화 모터 싸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이병창(동아대 철학과 교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

이병창교수님은 내년 새로 선보일 <영화로 생각하기>교과서
집필자로서 앞으로 강의를 통해 방송대생들과 자주 만나게 될
분입니다.


체 게바라, 그는 필자처럼 70년대 초반 학번들에게는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체에 대한 기억은 항상 당시 널리 퍼졌던 마오이즘에 대한 기억과 중첩되어 있다. 마오의 만리장정과 마찬가지로 쿠바에서의 그의 게릴라투쟁은 단순한 사회적 혁명이 아니라, 일종의 구도의 도정으로 이해되었고, 두 눈을 뜨고 죽은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국의 문화혁명이 추구하던 부패하지 않는 영구혁명의 상징을 보았다. 많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체를 모방하려 했는데, 오직하면 체가 즐겼다는 시거를 피워볼 생각조차 했겠는가? 어렵사리 구했던 쿠바 산 시거를 처음 피워 물고 그 독한 연기에 질식할 뻔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것은 이런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마오나 체에 대한 지식은 대단히 빈약했다는 것이다. 방금 말한 것이 그때 필자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더구나 그때 필자의 머리 속에는 하이덱거의 실존주의 및 사르트르의 참여 문학이론이나 불교의 위대한 선사의 가르침들이 아무런 모순 없이 공존했는데, 이런 것들 때문에 마오나 체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로 마오에 대해서는 다행히 여러 책들이 소개되어서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고, 이젠 어느 정도 비판적 안목도 얻게 되었지만 체에 대해서는 달리 적절한 자료가 없었고 그러기에 그저 존경심만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 초에야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을 구해서 밥도 먹지도 않고 그 자리에 다 읽어 치웠던 기억이 난다. 비로소 필자는 자신이 가슴에 품어 왔던 인물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글쎄, 한 인간을 알지도 모른 채로 30년간을 존경하다니 !! 다행스러운 것은 그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에 대한 존경심에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필자는 체 게바라의 어린 시절, 대륙을 방랑하면서 그가 어떻게 혁명가로 성장하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영화는 어느 방랑기에도 있었을 법한 소재들을 깔아 놓는다. 설산을 넘으며 사막을 가로지르고, 남의 아내를 꼬이다 쫓겨나고, 몸 파는 여인과 정사를 벌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서서히 체는 혁명가로 성장해 나간다. 구 세계에 머물러 있는 애인과 헤어지고 가난한 농민의 죽어가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위대한 잉카 제국의 유적을 찾고, 페루 고원에서 자기 땅을 빼앗긴 농부를 만나고, 심연의 아가리처럼 벌어진 광산 속에 들어가고 들판에서 공산주의자 노동자와 하루 밤을 지새며, 마침내 민중처럼 몸은 병들었으나 마음만은 맑은 나환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에네르스토가 아닌 체 게바라로 바뀌어 나간다.
이런 변화에서 필자가 보기에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사막에서 노동자 부부를 만나서 황량한 벌판 위에 마테차를 마시면서 하루 밤을 지내는 장면이다. 여기서 감독은 푸른 어둠을 둘러싸인 배경 위에서 모닥불의 따듯한 불빛으로 이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노동자, 풍상으로 찌들은 그 얼굴, 그러나 아직도 결연히 스스로 공산주의자임을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노동자를 비추어준다.
그런데 코르미에의 평전에서는 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체의 일행이 볼리비아의 추키카마타 구리광산에 들렀을 때, 밤이 되어 쉴 곳을 찾는 체의 일행이 한 양철 바라크의 처마 아래서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코르미에는 그날이 “달빛이 시리도록 밝았다”고 묘사하면서 “ 남자가 이야기 하는 동안 곁에 앉아 있던 여인은 한없는 존경과 애정이 담긴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았다”고 묘사한다.
이런 코르미에의 묘사는 감독이 영화에서 그려낸 장면과 비록 장소는 다르지만 그 분위기는 대체로 일치했는데, 감독은 여기서 이 장면의 아름다움을 모닥불이라는 후광효과로 표현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튿날 체의 일행은 이들 노동자 부부와 더불어 추키카마타 광산에 찾아가고, 일자리를 찾아 트럭에 오르는 노동자에게 물 한잔 건네지 않는 광산의 대우에 분개해서 돌멩이를 던지는 것으로 분풀이 하지만 코르미에의 평전에서 이 장면은 좀 더 다르다. 여기서 체의 일행은 오히려 광산으로부터 환대를 받고, 며칠을 머무르는데, 방문 사흘째 되는 날 광산 안의 한 공동묘지를 지나다가, 만명 정도의 노동자가 묻혀 있는데, 그 아내와 자식들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을 듣게 된다. 여기서 코르미에는 “에르네스토가 친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알베르토는 그의 눈에 번득이는 불꽃을 보았다고” 서술하였다. 영화는 코르미에의 서술에서 이 측면을 간과했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하나의 장면은 영화의 끝 부분에 체가 강 이편 의사 및 간호원 수녀들과 함께 했던 자기 생일잔치 및 환송연 날, 그가 강 건너 저편에 있는 환자들의 마을을 찾아 거대한 아마존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체는 단호하고도 장중하게 강을 헤엄쳐 건너가는데, 이것은 그 후 쿠바 및 볼리비아에서 그가 벌렸던 만리장정의 게릴라 투쟁을 연상하게 한다.
이 장면 역시 감독이 영화적 흥미를 위해서 극화시킨 장면이다. 코르미에의 평전에서 서술이 맞다면, 환자들과의 파티는 의사 및 수녀들과의 파티 뒤 5일 후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실제로 체가 아마존을 헤엄쳐 건넜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이 이처럼 두가지 실제 에피소드를 이어서 체로 하여금 아마존을 헤엄치게 한 것은 감독이 체의 게릴라 투쟁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로 보이며, 영화적으로 볼 때 체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그 체도 사라졌다. 어느새 체는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탈문화의 코드로서 젊은이들의 가슴 위에 검은 베레모가 되어 상업적으로 판매된다. 하긴 필자나 70년대 초 학번들조차 이에 앞서서 체를 기호화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 마오와 체의 농촌 게릴라 투쟁에 대해 아찔한 황홀감을 느꼈으면서도 그 누구도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농촌 게릴라 투쟁을 벌이려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저 도시에서 학생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투쟁을 위주로 전개했는데, 우리는 이것이 농촌 게릴라의 정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오나 체의 농촌 게릴라 투쟁이 당시의 거리 시위에 대해 마술적인 환상효과를 불러 일으켰다고나 할까. 이런 점에서 부끄럽지만 그토록 체를 존경하면서도, 아직도 필자는 체 게바라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체 게바라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마지막으로 꼬르미에의 평전에 실린 시 구절 하나를 소개해 보려 한다.

가자 새벽을 여는 뜨거운 가슴의 선지자들이여
감춰지고 버려진 오솔길 따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는 인민을 해방시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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