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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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부의 차, 숙명인가 모순인가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3.01.01. 15:29:47   조회: 580   글쓴이IP: 211.207.75.62
기사는 서울의 청담동과 돌산마을의 비교를 통해
빈부 세습의 사회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현실 넓게는 자본주의적 현실을 되짚어보는
반성적 읽기자료로서 올립니다.

한겨레 신문 2003년 1월 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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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청담동, 부는 내놓고 즐기는 거야


한국사회에서 개인과 기업의 재산은 적법하게 상속돼 왔다. 부의 세습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세습된 부의 풍경은 바뀌어왔다.

서울 성북동이나 한남동은 전통적인 부촌이었다. 이 부촌의 특징은 고립성과 폐쇄성이었다. 부는 드러내지 않아야할 가치였다. 70년대 강남개발과 함께 압구정동에 부촌이 들어섰다. 압구정동은 명동을 옮겨다 놓은듯 했지만, 주민들이 인접 상업권과 생활로 연결되는 소비문화를 만들어냈다.

90년대 들어서는 청담동에 새로운 부촌이 건설됐다.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의 품격을 좋아하는 부자들의 마을이 들어섰다. 청담동은 압구정동의 번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벗어나 세련된 고급소비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청담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이제는 거대 브랜드다. 부는 마음놓고 드러내도 좋은 가치로 바뀌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양식과 패션이 부의 새로운 풍경을 주도해 나갔다.

시가 20억원 이상의 고급주택과 빌라들이 들어선 주택가 앞 거리에는 세계 최고급 명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청담동 부의 풍경은 패션화되고 살롱화되어 간다. 고급 레스토랑 변기에는 물위에 빨간 단풍잎이 떠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식탁은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차린다. 요리사가 아니라 요리를 식탁 위에 펼쳐놓는 전문가다. 음식 색깔과 향기, 그릇 배치, 테이블보 무늬, 조명 질감, 주변 장식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음식을 펼친다. 식탁은 조형예술로 변한다. 프랑스에서 몇년간 유학하고 와야만 청담동의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다.

단 1종의 명품만으로도 청담동에서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열 수 있다. ‘프랭크 뮬러’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다. 시계 1개가 2천만~1억원이다. 지난달 중순, 청담동에서는 ‘프랭크 뮬러’ 판촉 파티가 열렸다. 레스토랑에서 열린 이 파티에는 3백여명의 미녀와 신사들이 모였다. 돈은 받지 않는다. 초청된 사람들만 올 수 있는 ‘프라이빗 파티’였다.

부자들은 때때로 실내악 파티를 연다. 자녀들이 모두 악기를 다룰 줄 알아서 몇 가족만 모이면 실내악을 구성할 수 있다.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혼맥이 생기기도 한다. 청담동 부자들은 세습부자들도 있지만, 당대에 부를 축적한 전문직업인들도 많다. 어느 경우에나 그들의 부는 상속과 교육과 친교와 정보의 힘에 업혀서 세습된다.

파티가 자주 열리면서 인맥이 결성되고 정보가 유통된다. 자녀들끼리 고급 명품을 선물로 주고받아 문화적 감성의 동질성을 유지해나간다. 부는 풍속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습된다. 재산과 문화가 함께 세습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 열기를 뿜던 와중에도 청담동 레스토랑은 손님들로 붐볐다. 청담동에서 10여년을 살아온 디자이너 김아무개(42)씨는 “청담동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를 거의 않는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미 확보한 부의 기득권을 침해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그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 서울 돌산마을, 빈곤이라는 절망의 수렁


부와 빈곤은 세습되면서 고착돼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세습되어온 부와 빈곤은 아이엠에프 이후 더욱 소통될 수 없는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빈곤은 개인의 노력만으론 극복하기 힘든 ‘절망의 빈곤’이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자료를 보면, 1997년 1분기에 상위층 20%의 소득을 100으로 보았을 때, 하위층 20%의 소득은 23.2였다. 99년 3분기에는 18.9로 떨어졌다. 이 시대의 부와 빈곤의 구조와 풍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서울 강북구 미아6동 돌산마을에는 지난 95년 재개발사업으로 철거민이 된 50여세대가 7년째 임시주거단지에서 살고 있다. 50년대 한강홍수 이재민, 60년대 이농자, 70년대 무작정 상경자들이다. 돌산마을은 빈곤의 현대사 그 자체다.

박아무개(73) 할머니는 전남의 한 섬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섬에서 소작농의 집으로 출가했다. 남편은 30대 무렵 ‘겨우 밥먹을 만한’ 자신의 농토와 돛단배를 장만했다. 그러자 간경화에 걸렸다. 한줌의 ‘부’는 병 앞에 무너졌다. 남편은 10년을 앓다 떠났고, 할머니는 농토와 배를 팔아 치료비를 댔다. 남편이 떠나자 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이 마을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노점상, 취로사업, 봉제공장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왔으나 치솟는 전세값에 몰려 여지껏 이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아들 김아무개(40)씨는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렸다. 목발을 짚고 구두공장에서 일해 한 달에 40만~5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지금은 합병증으로 더이상 일하지 못한다. 김씨의 소망은 검정고시로 2년제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3과목은 합격했으나 7과목이 남아있다. “컴퓨터와 참고서로 공부하는 사람들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김씨는 말했다.

송아무개(77) 할머니는 전북 부농의 딸이었다. 남편은 일본 유학생이었다. 남편은 한국전쟁 때 좌익활동을 했고, 전쟁이 끝난 뒤 경찰조사를 받고나서 죽었다. “온몸이 매에 흩어져 죽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남편이 죽자 농토도 흩어졌고,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못 견뎌 서울로 올라왔다. 60년대 초에 이 마을로 들어와 40여년을 살았다. 공사판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아들 문아무개(48)씨는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3년전 공사장에서 다리를 다쳤다. 그래서 이 집안에서 돈버는 사람은 할머니의 손녀(24)뿐이다. 딸은 미용기술을 배워 미장원에 취직했다. 이제 막 돈벌이를 시작한 딸에게 세습된 가난의 무게는 무겁다.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여생을 부양해야하는 일이 딸 혼자 책임져야 할 몫이라면, 딸이 가난을 극복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딸은 “컴퓨터가 있어야 이 세상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달 전 3백만원을 주고 컴퓨터를 구입했다. 또 아픈 이를 뽑고 임플란트 치아를 해넣는데 3백만원이 들었다. 카드로 결제했다. 앓아누운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6백만원 카드빚의 중압을 안고 딸은 매일 산동네를 내려와 미장원으로 출근한다.

자신의 노동수입으로 정부보조금을 겨우 물리친 사람들의 앞날도 한계선상에서 위태롭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주민 6명은 3년전부터 음식물 쓰레기 수거작업을 하고 있다. 자활지원기관의 보조를 받고 마을의 실직자들과 힘을 합쳐서 시작한 음식물 쓰레기 수거사업은 이제 자리잡혀가고 있다. 이들은 돈을 모으고 자활지원기관에서 융자도 받아 2.5t짜리 중고트럭 3대를 구입했다. 아침 6시부터 음식점 쓰레기를 수거한다. 한달 평균 1500만원 정도의 수거료를 걷는다. 한 달에 남자들은 120만원, 여자들은 8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이들은 정부보조금을 받지않는 자립노동자들의 최하위계층인 셈이다. 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김현수(63)씨는 지난 72년부터 아이엠에프 직전까지 연탄장사를 했다. 부인은 무거운 연탄짐에 뼈를 다쳤다. 난치성 류마티스다. 한 달 치료비는 30만원이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이들고 병들고 작은 사고라도 난다면, 아무 대책이 없다. ‘이나마라도 또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속에서 매일 뼈골이 빠지게 일하고 있다.” 김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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