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읽기
ADMIN 2020. 10. 20.
 평화통일의 적들(손석춘칼럼)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2.06.10. 11:02:54   조회: 471   글쓴이IP: 211.207.64.171
한겨레 신문 손석춘 칼럼(2000년 6월 13일자)을
우리 학생들을 위한 <비판적 읽기자료>로 적합하다 판단되어
옮겨 싣습니다.

역사적인 6.15선언이 이루어진지 1년이 지나도록
남북관계의 평화적 진전은 커녕 뒷걸음질치고 있는 요즈음
북한 및 통일문제와 관련한 기득권 수구세력의
반민족적 시대착오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잘 드러낸 글입니다.


평화통일의 적들
손석춘(한겨레 신문)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김정일 서울 방문시 그를 납치하여 유폐시킨 후 인민을 해방하고 남북통일을 하는 것이다.”

한 토론회의 끝자락이었다. 사회자로부터 마지막 문제제기를 주문받은 어느 박사가 거침없이 쏟아낸 `소신'이다. 뜨내기들의 토론회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명망깨나 있는 이들이 호텔에서 거창하게 연 자리다. `평화'와 `겨레를 생각한다'는 주최쪽의 자부가 익살스럽다.

상식을 초절한 평화주의자들의 엽기적 발언은 곰비임비 이어진다. 최근 한·미우호협회가 연 토론회였다. 발제를 맡은 유명 연구소의 수석연구위원은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남북한이 만약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혼성시킨 통일이 된 경우엔 한미동맹은 통일된 남북한에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김정일 납치'나 `사회주의적 요소의 완전 제거'를 살천스레 내뱉는 이들에게 통일은 과연 무엇일까. 평화통일과 멸공통일의 논리적 모순을 정녕 모르는 걸까. 아니 어쩌면 차라리 정직한지 모른다. 언죽번죽 민주의 이름 뒤에 숨어 멸공통일을 꿈꾸는 섬뜩한 파시스트들은 대한민국의 정치·언론계 상층부에 깊숙이 똬리 틀고 있다.

옹근 1년 전 오늘 평양 순안공항. 남과 북의 온 겨레가 김대중·김정일의 포옹을 보며 눈을 슴벅거렸다. 하지만 따뜻한 포옹 1년을 맞아 눈시울을 볼그레 적신 감동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공동선언을 정면으로 비트는 냉전세력의 발호 때문이다. 그들을 대변하는 신문권력들은 지난 1년 동안 쉼없이 남북관계의 발전을 가리틀고 나섰다.

기실 남북공동선언의 고갱이인 `연합·연방제통일'은 민족사의 큰 줄기에서 뜻깊은 합의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 국가로 거듭나는 방안에 처음으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 선언적 합의를 구체화하는 데 남과 북 모두 열정을 쏟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갔다. 신문권력들은 안보를 부르대며 남·북의 공존에 필수적인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미 자주화를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연계했다. 논의 구조 자체를 왜곡해 철저히 봉쇄했다. 김대중 정권 또한 그 여론몰이 앞에 슬그미 주저앉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연합·연방제통일 외에 평화적 통일을 이룰 길이 있는가.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정치의식이 보편화하지 않을 때 통일은 민족적 재앙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참으로 묻고 싶다. 국가보안법과 주적 개념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평화통일이 가능한가. 부시 정권 이후 한층 더 흔들리는 남북관계는 통일로 가는 길에 미국이 무엇인가를 단숨에 깨우쳐주고 있다.

환상은 금물이다. 통일공화국은 머나먼 과제다. 통일의 문 앞에서 지며리 풀 숙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다만 수구세력이 왜곡해온 `사상의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은 절박한 과제다. 사회주의라면 무조건 사다듬이를 서슴지 않고 미국과 동맹해 `완전 제거'하겠다는 이들은 자신들이 수구세력이라거나 반통일세력이라는 비판을 한사코 거부한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스스로의 언행이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가를 냉철하게 깨우쳐 줄 때다. 오늘의 천박한 정치의식과 여론구조를 개혁하지 못하면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다.

아직 오지 않은 통일 공화국은 마땅히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뿌리인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고 공존을 거부하는 수구세력은 평화통일의 적들이다. 수구세력이 6·25의 교훈을 자극적이고 독점적으로 해석해왔지만, 기실 수백만 명의 남·북 원혼들은 서로를 말살하는 식의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진실을 피투성이로 증언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적 경험들을 두루 녹여 새로운 통일공화국의 내일을 그려갔어야 할 지난 1년, 우리는 퇴행적인 소모전만 벌여왔다. 바로 그 중심에 여론을 왜곡해 온 신문권력이 가부좌 틀고 있다. 2001년 6월13일 아침. 그들을 역사의 법정에 거듭 고발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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