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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무덤 파는 '조중동' /강준만교수
글쓴이: 이정호  날짜: 2003.05.05. 19:25:27   조회: 953   글쓴이IP: 211.207.65.112
자기 무덤 파는 '조중동' /강준만교수(전북대)

물량경쟁보다 지금은 '권위와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 5월 5일자 경향신문 6면 '시론'란에 실린 글-


세계적으로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웬만큼 언론을 아는 사람치고 미국 언론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소유 집중, 자본의 이익 대변, 광신적 애국주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죽하면 최근엔 CNN의 창립자이자 AOL-타임워너 부회장인 테드 터너까지 미국 언론 비판에 가세했겠는가. 그는“5개회사가 우리가 읽고 보고 듣는 것들의 90%를 장악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미국언론을 숭배하는 나라가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이다. 특히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다. 이들은 언론의 공정 경쟁과 여론의 다양성 보장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이 나오기만 하면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언론통제’며‘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묘한 버릇을 갖고 있다.

애써 이해하자면, 조·중·동은 미국식 시장논리를 지고의 선(善)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식 시장 논리를 적용하자면‘과거 청산’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언론자유를 주장하던 145명의 기자를 길거리로 내쫓은 건 시장 논리였는가? 12·12 쿠데타 이후 또 한번 수많은 기자들을 해직시키고 5공 찬양에 앞장섰던 것도 시장 논리였느냐 이 말이다.

공정경쟁 가로막는 억지 논리

미국식 시장논리를 예찬하는 조·중·동이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에 대해선 대단히 비판적이라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발행 부수의 크기가 독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신성하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왜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선택은 그렇게 깔보는 걸까? 신문 독자는 고상하지만 텔레비전 시청자는 저질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 그러나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에게 자전거 같은 경품은 주지 않는다. 시청자 끌어 모으겠다고 살인사건을 일으킨 적도 없다. 과연 누가 더 저질이란 말인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조·중·동, 그러면 안된다. 당신들은 지금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한국 역사상 불행했던 시절 지배층이 보여주었던 추태를 유감없이 구사하고 있다. 지금 한국신문은 큰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당신들이 그런 식으로 막 가면 이 나라 신문 다 망한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다른 신문들보다 조금 더 늦게 망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과연 업계의 리더로서 취해야 할 태도란 말인가?

온갖 뉴미디어가 활개치고 특히 인터넷이 가공할 파워를 자랑하는 이 때에 종이 신문이 살 길이 무엇이겠는가? ‘권위와 신뢰’다. 잘 알겠지만, 지금 서울 지하철 출근길 신문시장은 어느 무가지(無價紙)가 조·중·동을 큰 격차로 압도하고 있다. 앞으로 무가지들이 더 쏟아져 나와 기존 신문들을 다 죽일 수도 있다. 이미 생활정보지들에 짭짤한 광고를 다 빼앗기고 나서 무엇이 모자라 그런 최악의 비극을 자초하려 드는가?

‘권위·신뢰’ 회복만이 살 길

신문들마다 각자 색깔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아니, 그건 바람직하다. 지금 조·중·동에 필요한 건 색깔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건 바로 최소한의 상식과 양식과 품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력이나 사람을 비판하더라도 최소한의 이성과 논리와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 지금 조·중·동이 그렇게 하고 있는가? 지금 조·중·동은 ‘우리만 잘 되면 그만이다’라는 식의 저열한 이기적 선전·선동에 매몰돼 있다. 당신들의 그런 한심한 행태가 신문의 전반적인 권위와 신뢰를 죽이고 있다는 말이다.

신문고시를 강화해 경품 및 무료 구독 공세를 막자는 것도 신문의 권위와 신뢰를 살려 신문 잘 되게 하자는 건데 그걸 언론 통제니 언론 탄압 운운하면서 모략만 하면 어쩌자는 건가? 당신들이 오히려 독자들의 신문 구독 습관을 버려놓는 바람에 신문은 점점 정신이 없는 소비 상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러지 말자. 제 정신 바짝 차리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그러면 정말 큰 일 벌어진다.

조·중·동의 편에 서서 미국식 시장 논리를 역설하는 언론학자들께 호소한다. 그러면 안된다. 언론개혁은 이념이나 정치적 당파 싸움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양쪽에 어느 정도 가세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은 소수다. 언론에 대해 알만큼 아는 분들이 본말을 전도해 그걸 자신의 면죄부로 삼아선 안될 것이다. 조·중·동의 평기자들도 더 이상 조직인으로 침묵만 하지 말고 언론인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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