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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칼바람' 어디서 불어오나
[손석춘 칼럼] 노사 상생 외치면서 '노동 유연성' 강조
"샐러리맨, 위험한 겨울"
12월 1일자 <조선일보>의 1면 머릿기사다. 3면까지 펼쳐진 '위험한 겨울' 기사는 최악의 감원 한파를 전한다. 2005년에도 한파는 이어진다고 예보한다.
언뜻 보면 부자신문이 '구조조정'에 눈길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의 월급쟁이들에게 올겨울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는 기사의 첫 문장도 가슴에 와닿는다. 하지만 위험한 겨울 '기획 기사'의 결론은 엉뚱하다. "기업·근로자 상생(相生)의 길 찾아야"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면서 정부는 실직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가 상생(相生)을 위한 대타협을 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상생을 위한 대타협을 해야 한다며 화살을 노동조합에 겨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제의 기사는 기업들의 '정리해고 바람'을 부추길 수 있다. "한류(韓流) 열풍에 따른 관광 특수로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호텔업계"를 들며 "경영 환경이 좋을 때 조직을 최대한 슬림화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호텔업계만이 아니라 "올해 큰 폭의 흑자가 예상되는 은행·조선·일부 IT업체에서도 일반 직원부터 간부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로 명예퇴직을 실시했거나 계획 중"이라고 보도한다.
'흑자기업의 감원'에 비판은 없어
큰 폭의 흑자로 '구조 조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던 기업인들조차 이 기사를 보면 한번쯤은 구조조정을 검토하지 않을까.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까.
물론 신문 편집의 방향은 분명 그 언론사의 자유다. 문제는 큰 폭의 흑자와 호황을 누리는 기업에서도 '정리해고'에 나서는 야만적 현실에 있다. 언론이 존재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사회 감시'라는 데 동의한다면, 기사는 마땅히 그런 기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비판은 커녕 되레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사 상생'의 주장만 실었다. '사회안전망'을 강조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노무현 정권을 겨냥해 '분배와 복지 중심'이라고 사실과 다른 비난을 퍼부은 부라퀴들이 누구인지 돌아볼 일이다. 이 기사가 의도했든 아니든, 오히려 정리해고의 칼바람을 부추긴다고 판단하는 까닭이다.
그렇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니 '구조조정' 따위의 우아한 말 뒤에서, 이 땅의 노동자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보장이 유럽에 비해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공화국'에서 칼바람은 은유가 아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칼날이다. 그런데도 큰 폭의 흑자를 보고 호황을 누리는 데도 서슴없이 해고의 칼날을 들이대는 사회에 우리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찬찬히 짚어볼 일이다.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서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를 민주화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유럽에 비해 무력해서다. 그런데도 보라.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운동과 영세 자영업자의 이익은 일치
노동운동에 대한 마녀사냥은 비단 노동자들에 그치지 않는다. 이 땅의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불황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소득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노동자들이 해고의 칼바람 앞에서 불안해서다. 바로 그 점에서 노동운동의 활성화는 자영업자들의 이익과 일치한다.
정규직 노동운동을 '마녀 사냥'한 결과는 비정규직 확대로 이어진다. 흑자 기업까지 해고의 칼바람이 불어온다. 그 한파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에게 닥쳐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 2004년 겨울, 이 땅의 민중에게 불어오는 저 미친 바람의 진원지는 마녀사냥에 있다. 부자신문이 그 '주범'이다. 그 사냥에 동참한 사람들이라면, 어김없이 부메랑을 맞는 꼴이다.
그 미친 바람은 은폐하고 있다. 모두 고통을 받고 있는 한겨울에 오히려 부를 축적하는 자들을. 참으로 쓸쓸한 겨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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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칼바람' 어디서 불어오나 /손석춘
언론은 민족 자결 눈 떠라/김용옥
